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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과 쪽팔림 그리고 부끄러움

일상의 경치 | 2012/01/21 20:18
Posted by 디오니스트
'쪽팔림'이라는 우리말을 영어로 번역하는 건 불가능하다.
어느 영문학 교수는 영어로 된 문맥에 '쪽팔림'이라는 단어를 그냥 사용한다.
물론 그 강의를 듣는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이다.
그녀는 영어로 번역되지 않는 우리말은 그대로 사용해야 한다고 믿는다.

살아 오면서 만난 드문 우리말에 대한 정체성을 가진 영문학자 였다.


이런 경우에 진짜로 쪽팔리는데, 대신에 스타일을 얻는다.
가령 나는 위에서 그녀가 '드문 우리말에 대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서술했다.
그녀는 쪽팔림 또는 부끄러움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쳐서 자기만의 스타일을 얻었다.
그렇다면 쪽팔림은 스타일에 대한 댓가라고 해야 하나?

새로운 스타일이란 언제나 현실이라는 구심력 자장의 동심원에서 빗겨 나가는 접선이다.
구심력을 현실을 지배하는 주류적 전통이라고 해석한다면, 접선은 그것에 접하면서 빗겨 나가는 특이점이다.
그러니 이게 쪽팔리지 않고는 배길 도리가 없다.
모든 스타일은 그래서 쪽팔림을 댓가로 치뤄야 한다.
쪽팔림을 넘어서면 그것에 대한 대중적 승인-인정과 이어서 모방이 따른다.
이런 모방은 스타일이 하나의 새로운 양식으로 자리잡아 현실을 규제하는 새로운 현실적 전통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자기만의 스타일이 없는 이런 모방은 일종의 부끄러움 인데, 이런 부끄러운 키치적 모방을 부끄러움 없이 수 없이 반복하도록 가능하게 만든게 현대의 정보기술 사회다.

그래서 나는 부끄럽다.

cf) 김영민의 '공부론' 중에서 '스타일과 양식'을 번역해서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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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스타일

기질(disposition)

일상의 경치 | 2012/01/18 16:26
Posted by 디오니스트

누군가의 말대로 요즘은 술독에 빠져 허우적 대느라 정신이 없다.
지난해는 나름으로 균형잡힌 생활을 했는데, 새해 들어 모든게 술독에 빠졌다.
옛날 버릇이 죄다 되 살아난 느낌이다.
몸이 뻔한 아저씨들과 어울리니 별 수가 없다.
문제는 내 몸과 맘이 편안하고 익숙하게 그리고 빛의 속도로 그런 관계에 재빠르게 젖어간다.
'오래 묵은 습이라 그렇겠지'라고 말하기가 겁난다.
'결국 이게 내 인생살이 방식인가 보다'고 거의 자포자기 수준이다.

결국, 문제는 마음이 아니라 몸이다.
임의대로 몸의 기울기(disposition)를 조정할 수 있다면, 그때야 뭔가 좀 공부를 한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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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기울기

2011년 정리 : 꽝꽝

일상의 경치 | 2012/01/12 18:37
Posted by 디오니스트
꽝연수

올해 내가 가르친 학생중에 연수라는 여학생이 있다.
20여년이 넘는 내 교직생활에서 미모가 제일 두드러진 학생이다.
세속의 언어를 빌려 뻥을 까자면, 형광등 100 x 100 정도로 자체 발광한다.
이목구비가 어찌나 섬세한지 만화에서 금방 뛰어나온 모습이다.
근데 수업을 5분만 진행하면 확 깬다.
말귀도 더디고, 수업에 대한 집중력도 전혀 없다.
그래서 붙여준 별명이 '꽝'연수 다.
그래도 이 아이는 맹한 표정으로 헤헤거린다.
'꽝'은 삭제하고 오직 '예쁘다'는 말에만 집중한다.
비난을 했는데, 상대가 그걸 칭찬으로 받아들이면 대책이 안선다.
그럴때, 뒷통수를 '꽝'하고 얻어맞는 기분이 든다.
한마디로 표리가 일치하지 않아서 쫌 당혹스런 아인데, 그래도 항상 긍정적이고 낙천적이고 명랑해서 좋다.


꽝만수

작년에 제일 속을 많이 썩였다.
나는 학년초에 '어떤 경우에도 체벌이 없습니다'라고 선언한다.
실업계 학생들은 초-중학교 과정에서 체벌에 인이 박혀있다.
칭찬한번 들어 본적도 없고, 자신을 제대로 긍정하는 체험 한번도 없다.
오직 알고 있는 경험이란 자신이 찌질하고 못나고 바보라는 비난뿐이다.
만수는 여기에 가족해체라는 고민까지 있으니,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감정상태였다.
언제나 수업을 방해했고, 네가 어디까지 견디나?보자고 매시간 마다 시험을 걸었다.
그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여러번 꼬꾸라진 경험이 있다.
그래서 만수에게는 애정보다는 진절머리가 나는 감정이 더 강하다.
근데 이 아이가 가슴벅차게 다가오는 사건이 '꽝'하고 터졌다.
사건이란 어떤 경험을 전후로 세상이 다르게 변화되는 질적 변곡점을 말한다. 
만수가 학교 축제 무대에서 밴드를 거느리고 '비와 당신'이라는 노래를 부르는데 그게 기가 막혔다.
어찌나 감동적인지 꼭 안아주고 싶었다.
괜히 콧등이 시큰해졌다.
'살다보니 이런 경험도 다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꽝'하고 터진 사건에 충격을 받아 만수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지난 연말 '비와 당신'이 내 애창곡의 하나가 되었다.

http://www.youtube.com/watch?v=JyjdGgoNkVU&feature=related

두사례를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은 2011년은 어느 해보다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자랑이다.
괜히 내 행복을 자랑질하고 싶은 기분이 들어서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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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와 카디쉬만

책읽기-영화보기 | 2012/01/08 15:49
Posted by 디오니스트

<역사비평> 겨울호을 읽다가 아래 그림들을 보게 되었다.
그림들이 인상적이어서 블로그에 그대로 퍼 담았다.
글과 그림이 빈틈없이 결합하고, 그래서 그림들을 어떤 맥락에서 읽어야 하는지 알겠다.
근데, '노회한 불사조'라는 그림은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지 도통 모르겠다.

아뭏든 멋진 글에 대해서 감사한다.
멋지다는게, 단지 글을 기술적으로 휼륭하게 잘 썼다는 말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태에 대한 깊은 통찰과 진정성이 베어있는 태도가 멋지다는 말이다.

이렇게 평론질 말고, 나도 깊은 통찰과 혜안이 있는 그러면서도 내 삶의 땀이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다.

http://blog.aladin.co.kr/rororo/5188326



클레, <공포의 발생(Angstausbruch )>


클레, <날개 달린 영웅(Der Held mit dem Flügel)>, 1905, 에칭, 257×161mm.



클레, <노회한 불사조(Greiser Phoenix)>, 1905, 에칭, 263×192mm.
cf) 후기 : '노회한 불사조'는 글자 그대로 그냥 노회한 '불사조'다. 근데 이게 왜 처음에는 안보였을까? 아무래도 '날개 달린 천사'와 대비해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아마도, 현실을 보수-재점유하려는 관성적 힘을 표현하는 이미지가 아닐까?



클레, <줄 타는 사람(Seiltänzer)>, 1923, 석판, 434×270mm.


 클레,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 1920, , 수채, 318×242mm, 이스라엘 박물관, 예루살렘.


메나슈 카디쉬만, <낙엽(Shalekhet)>, 1997~2001, 철제주물, 유태인박물관, 베를린. ⓒ破


메나슈 카디쉬만, <기억의 공백(Leerstell des Gedenkens)>, 유태인박물관, 베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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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클레

김영민 빠

일상의 경치 | 2012/01/04 14:44
Posted by 디오니스트
"역사에서 보수는 당대의 진보를 뒤엎으며 재등장했고, 진보는 그런 보수성을 뛰어넘기 위해서 재구성과 탈선의 형식을 되풀이해 왔다."

어디선가 읽은걸 수첩에 적어 놓았는데, 이게 눈에 번쩍들어온다.
간명하게 이해하면, 보수건 진보건 현실을 재구성할려고 노력한다는 거다.

내가 이해하는 한국사회 정치지형은 '수구보수-보수-새끼보수-진보'다
요 몇년간 내 정치적 지향은 진보에서 새끼보수로 이동했고, 요즈음은 새끼보수에서 보수로 자꾸 옮겨간다.
나이가 되었건 물건이 되었건 가진게 많다보니 완고한 노인이 되는걸 피할 수가 없나 보다.
아니면 원래 기질이 그런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결국 뻔한 노인네가 되겠지! 라는게 요즘 내 생각이다.
그래서 그런지 김영민이 너무너무 잘 읽힌다.
아마도 김영민 빠가 되지 않나 싶다.

김영민의 공부론을 다시 읽고 있다.
원래 그의 글이 그렀기는 하지만, 읽을 수록 좋다.
할 수 없다.
김영민에 빠져 지내는게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재미다.

몸의 김영민식 재구성, 이러면 이게 보수적 재구성이 되는가?
아니면 얼치기 김영민이 될까?
그도 아니면, 김영민의 스타일을 양식으로 소비하는 자본주의적 김영민의 소비일까?

하여튼 분명한 것은 내 귀가 너무 얇다는 것이다.
지난 여름은 한창훈에 빠져지냈는데, 이번 겨울에는 김영민을 모셔봐야겠다.

cf) 구글에서 김영민의 공부론을 이지미로 검색해 봤다. 내가 이해하는 한 이 셋의 이미지가 김영민의 공부론을 가장 잘 표현하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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