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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고흐와 교회 : 누가 먼저 버렸나? 어느 쪽이 맞을까? 고흐가 교회를 버렸을까? 아니면 교회가 고흐을 버렸을까? 나는 어느쪽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교회는 고흐의 시대를 앞서가는 감수성을 따라잡지 못했다. 모든 위대한 삶들이 그렇듯이, 개인 고흐는 집단 교회 보다 더욱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다. 집단의 감수성보다 앞서가는 예민한 개인들은 모두 시대로 부터 참수를 당한다. 고흐는 그걸 피할수 없었고, 그러고 싶지 않았을거다. 그게 고흐가 짊어져야할 삶이었다. 고흐는 그 무게를 온 몸으로 지탱했다. 동생 테오에게 꼬질꼬질하게 얹혀 살아야하는 누추함을 그는 끝까지 버팅겨 안았다. 고갱을 꼬드겨 세속적 성공이라는 열망을 추구했지만 그는 결국 자기의 그런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권총으로 자신을 쏘고 죽어가면서, 그는 동생 태.. 더보기
화려함에서 단순함으로 : 진짜 나이를 먹었나 ? 에이 아니겠지! 마티스. 블루 누드. 1952. 마티스가 말년에 프랑스 니스 지방에 살때 그렸다. 색을 칠한게 아니고 색종이를 오려 붙였다. 말년의 마티스는 늙고 병들어 더 이상 붓을 들수 없었다. 그림에 대한 욕망을 그는 가위와 색종이로 대신했다. 그러자 선과 색에 대한 자유가 더욱 충만해졌다. 단순하면서도 경쾌한 이미지가 탄생했다. 마티스는 사실의 재현이 아니라 오직 선과 색의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사실적 구도나 형태의 사실적 재현에서 자유로워지고자 했다. 당시는 마티스의 그림을 보고 짐승 같은 야수의 그림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를 야수파라고 한다. 마티스의 그런 그림들은 현대 추상흐름의 한 지절을 만들었다. 라는 책을 읽다가 이 그림을 발견했다. 그 책에 있는 많은 그림 중에서 이게 한순간에 나를 .. 더보기
선택 : 노예되기 색다른 음식 나는 내일 모래면 50대가 되는 노털이다. 시골에서 성장했고, 젊었을 때 몇년간의 서울 생활을 제외하면 나머지 모든 시간을 전라도 궁벽한 곳에서 보냈다. 그러다 보니 내 음식 취향은 맴고 짜고 골골하고 시큼털털하다. 이런 음식 말고 다른 음식은 거의 상상하지도 않고, 시도하지도 않는다. 외국에 나갈 때에도 고추장이나 된장 같은 것들을 잔뜩 싸가지고 가야 안심이 된다. 얼마전에 나하고는 음식 취향이 다른 사람이 퓨전서양음식점을 가잔다. 처음에는 당연히 싫다고 버텼다. 쪼잔하지 않은 사람은 색다른 음식에 개방적이라는 설득에 결국 굴복했다. 그때 내부에서 한국남자들의 전형적 속성인 마초적 기질이 작동해서, 쪼잔하다는 평가를 듣기 싫어서, 나는 할 수 없이 낮선 퓨전서양음식을 거절할 수 없었다.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