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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함에서 단순함으로 : 진짜 나이를 먹었나 ?

에이 아니겠지!


마티스. 블루 누드. 1952.
마티스가 말년에 프랑스 니스 지방에 살때 그렸다.
색을 칠한게 아니고 색종이를 오려 붙였다.
말년의 마티스는 늙고 병들어 더 이상 붓을 들수 없었다.
그림에 대한 욕망을 그는 가위와 색종이로 대신했다.
그러자 선과 색에 대한 자유가 더욱 충만해졌다.
단순하면서도 경쾌한 이미지가 탄생했다.
마티스는 사실의 재현이 아니라 오직 선과 색의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사실적 구도나 형태의 사실적 재현에서 자유로워지고자 했다.
당시는 마티스의 그림을 보고 짐승 같은 야수의 그림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를 야수파라고 한다.
마티스의 그런 그림들은 현대 추상흐름의 한 지절을 만들었다.

<곽아람, 그림이 그녀에게>라는 책을 읽다가 이 그림을 발견했다.
그 책에 있는 많은 그림 중에서 이게 한순간에 나를 사로 잡았다.



고흐. 옷을 입은 마하. 1805년.
고흐는 수 많은 초상화를 그렸다.
그 중에서 이게 내 눈에는 가장 아름답다.
당시 스페인 재상이었던 고도이 백작의 짚시 애인이 그림의 모델이라는 설이 있다.
그건 그거고, 눈길을 끄는건 환한 빛의 효과다.
그거 때문에 눈이 부실 정도로 그림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런 충만한 아름다움이 누군들 그립지 않겠는가?
이 그림을 보면서 내게도 저렇게 환하게 아름답던 시절이 있었겠지,라는 쓸쓸함 같은 걸 느꼈다.


나이을 먹으니 단순한 것의 아름다움이 보인다.
옛날에는 화려하고 으리으리한 것이 좋았었다.
그 시절에는 번쩍 번쩍 도시의 야경이 살아나는 어스름이면 엉덩이가 근질거렸다.
할 수 없이 누군가를 불러내서 밤을 세워 술을 마셔야했다.
동쪽 하늘이 환하게 밝아야 겨우 숨을 고르는게 가능했다.
이제 그런 젊었던 시절이 다 가버린게 확연하게 느껴진다.
그게 아마 마티스의 '블루 누드'가 네게 한순간에 꽂힌 이유일거다.
눈이 부신 화려한 것의 아름다움에 매혹되는걸 피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단순한 것의 경쾌한 아름다움도 좋다.
그게 나이를 먹는 즐거움 중의 하나일거다.
늙고 병든 마티스가 '블루 누드'를 오려 붙이며 이런 감정이었을까?


모자를 쓴 여인. 1905. 마티스.
마티스가 야수파(fauvisme : 짐승파)라고 불리게 된 젊은 시절 30대에 그린 그림.

노년기의 '블루 누드'는 차분하고 냉정하다.
간명하게 이미지를 만듬으로서 경쾌한 아름다움을 느끼게한다.
거기에 비해서 '모자를 쓴 여인'은 마티스의 펄펄 끓는 피가 느껴지고, 마티스의 거친 심장박동 소리가 들린다.
화려함을 극단까지 밀어 부쳤다.
그건 그거고, '모자를 쓴 여인'은 '블루 누드'와 마찬가지로 회화의 기본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대상의 사실적 표현이라는 고전적 회화의 명제를 개무시하는 그림이다.
형태들이 뭉텅이로 된 면들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색은 현실의 상식에서 한참이나 벗어나 있다.
얼굴에 사용한 파란색도 도발적이고, 한쪽 머리는 빨강이고 다른쪽은 검정이다.
형상의 정확한 재현이 아니라, 마티스는 단지 색과 면들을 가지고 화려한 아름다운 물건(오브제)을 만들고 싶었다.
이걸 조금 더 밀어 붙이면 형태를 그냥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으로 구성하는 입체적 추상회화 비슷한 '블루 누드'가 나타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