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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한겨례21'에서 '신형철의 문학사용법'란을 꼭 챙겨본다. 신형철의 글을 읽다가 이 영화를 보아야겠다는 욕망이 일었다.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도 영화파일을 찾을 수 없다. 있는게 돈 밖에 없어서, DVD를 구입했다. 구태가 칙칙 흐르는 옛날 흑백영화다. 이런게 아직도 세상에 유통되고 있다는게 신기하다. 그럼에도, 확실히 그럴만 했다.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은, 엘리자베쓰테일러와 리차드버튼의 연기다. '명불허전'이 없다더니, 눈부신 이들을 두고 하는 말 같다. 세속의 삶은 철저하게 거짓에 지탱하고 있다. 허구 없이는, 한순간의 삶도 지탱할 수 없다. 이 영화는 그 핵심을 건드린다. 살을 발라내고, 뼈만 남아도 더 발라낼 거짓이 남아있다. 그건, 뼈속의 골순데, 가족제도다. 버튼이 테일러에게 우리 아이가 죽었다.. 더보기
용산문제 타결 포털에 용산문제가 타결됐다는 기사가 떴다. 마음속에 항상 찜찜함으로 있던건데 속이 뻥 뚫린느낌이다. 개인적으로 용산문제는 한국사회 문제의 종합적 상징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박정희의 '잘살아보세'라는 욕망에 뿌리를 둔 한국사회 전체의 자화상 같은 문제였다. 당사자들과 문정현 신부 같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용산문제의 죄책감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것이다. 그 비극성을 뻔히 알면서도, 우선 나 부터 살고 보자는 이기심때문에 모두가 용산문제를 외면해 왔다. 용산문제는 박정희가 깔아놓은 물질적 욕망의 메트릭스에 한국사회가 철저하게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노출시켰다. 개발이나 발전이라는 이름의 박정희식 근대화 모델은 사회전체를 물질적 욕망의 소용돌이에 빠트렸다. 물질적 욕망의 메트릭스로 부터 자유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