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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대기

10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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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여럿히 같이 술을 마시다 '인생의 목표가 뭐냐?' 비슷한 주제가 화두가 되었다.
다들 아는거겠지만 술자리 대화가 그래도 가장 솔직하다.
인간이란게 원래 본성적으로 위선적이기는 하지만, 술자리에서는 비교적 솔직하다.
그 자리에 있던 누군가가 10억이 자기 인생의 목표란다.
그러자 너도 나도 비슷한 생각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맞장구를 쳤다.

한번 생각해 보자!

10억이 자기 인생의 목표라는게 도대체 어디에서 부터 나온건가.

어느날 동네 목욕탕엘 갔다.
거기서 일하는 어떤 아저씨가 책을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생경하기도 하고, 책에 대한 호기심도 생겨서 무슨책이냐고 물었다.
씩 웃으면서 책 겉 표지를 보여주었다.

'---- 부자 되기 -----'라는 책이었다.

아마도 그날 술자리에서 거의 모두가 동의한 '인생목표 10억'이라는 생각이 생긴 맥락은 아마도 대략 이런 경로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그날 같이 술마신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는 세속적 기준으로 대충 빵빵했다.
그들은 거개가 가장 안정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고, 자기 사회집단에서 일정정도 오피년리더정도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큰 탈 없이 직장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면(아마 대개 그럴것이다) 저절로 10억 정도의 재화는 확보할 위치에 있었고, 지금 현재도 그 정도의 재화를 확보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이 모두 10억이 자기 인생의 목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들은 10억이 자기 인생의 최소한의 안전과 풍요한 미래를 보장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10억이 삶의 목표가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이들은 자기 삶을 10억에 귀속시킨다.
자기 직업도 10억을 위한 수단으로 존재한다.
직업활동을 통해서 무언가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내고, 무언가 창의적인 성취를 이룰려하지 않는다.
그저 직업은 10억을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10억 벌이가 직업활동의 중심축으로 기능한다.

이렇게되면 물신화된 10억이 삶을 지배한다.
자기가 삶의 주인이 아니고 10억이 삶의 주인으로 등장한다.
직업활동 속에서 무언가 의미를 발견하고 그것을 성취할려는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이 소멸한다.

이들은 10억을 위해서 자기 에너지의 상당부분을 기꺼이 주식투자와 같은 재테크에 쏟아 붇게 되고, 그러면서 직무활동은 자연스럽게 최소한으로 줄어든다.
설사 직무활동이 증가하더라도 그게 돈으로 유인될 때로 한정된다.
이때 유인되는 재화는 기존 직무활동의 강화를 목표로하므로, 시스템 강화적인 보수적 직무활동 만이 증가한다.

이걸 좀 풀어서 말하자면 이렇다.
시스템이 현실재생산형인 경우 이 시스템에 반응하는 두가지 방식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직무활동을 최소화해서 재테크 같은 재화취득에 자신의 에너지를 많이 할당하는 거다.
이길은 자멸의 길이다.
시스템은 시스템에 최소한으로만 접근하는 사람을 즉각 알아챈다.
시스템을 속일 수 있는건 일시적이다.
시스템은 언제나 시스템의 강화를 위해서 이런 사람을 희생양의 번제라는 재단에 올린다.

다른 하나는 시스템의 목표와 자기의 목표를 일치시키는 사람이다.
시스템이 이걸 재화(권력)라는 수단으로 유인한다.
이럴 경우에도 재화가 직무활동의 중심으로 기능하는걸 피할 수 없다.
재화로 유인되는 방향은 기존 시스템의 강화이다.
결국 직무활동의 증가가 새로운 차이를 만들어내는 능동적 측면이 있다할지라도, 그것은 결국 기존 시스템을 강화하는 재생산적인 활동으로 제한된다.
재화중심적인 직무활동으로 전락하기는 마찬가지다.
재화로 지속적으로 직무활동을 강화 받으므로, 삶의 주인이 재화로 등장하는걸 피할 수 없다.
이런 사람들은 모든걸 재화의 양으로 평가하는 행동양식과 세계관을 가진다.
자기 주변의 잘 나간다는 사람들을 한번 관찰해 보라.
거의 대부분이 이런 부류의 사람들일거다.
재화에 지배당한 이들은 삶의 공허함을 끊임없이 재화의 양을 증대시킴으로서 채울려고 하는 순환고리리 속에서 허우적 댄다.
더 큰 재화의 취득을 통해서 삶의 공허함을 일시적으로나마 채우기 때문에, 철저하게 재화중심적인 행동양식만을 생산한다.

그러므로 시스템이 현실재생산형인 경우 그 체제속에서 창의적인 차이가 발생하는 직무유형은 그 시스템과 지속적인 불화를 일으키는 직무형태 뿐이다.
이런 직무형태만이 시스템이 10억과 같은 물신으로 직무수행자의 삶을 잠식하지 않고, 자신의 고유한 차별적 삶을 생산한다.

그렇다면 시스템이 현실변화형인 경우는 어떨까?
예를 들어 시민사회단체 같은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경우 시스템의 목표와 내 삶의 목표를 일치시키는 것이 내 직무활동을 통해서 현실속에서 새로운 차이를 발생시킬 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 현실재생산적 시스템과 차이가 나는 시스템의 목표가 새로운 물신으로 기능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물신화된 그 목표가 다른 차이들을 억압하는 기능을하게 될거다.
그래서 시스템의 목표가 현실에서 새로운 차이들을 발생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차이가 물신화되면 그것도 또 다른 억압으로 전락하는걸 피할 길이 없다.

결국 혁신적 조직이라할지라도, 그 구성원이 시스템의 목표에 억압당하지 않을려면 그 시스템과 구성원의 접속이 새로운 차이를 발생시킬 때이다.

10억에 관한 썰이 너무 많이 샛길로 가 버렸다.

샛길에서의 이야기는 최근에 읽고 있는 진은영의 책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의 영향으로 쓰여진 것이다.
책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두번째 읽고 있는데도 전체적으로 진은영의 생각을 독해해 내지못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샛길 이야기가 좀 엉성하다.
두번째가, 세번째가 ---- 열번째가 되었건 그녀의 생각을 기필코 따라잡을거다.

다시 10억 얘기로 돌아와서, 10억을 삶의 목표로하는 사람들을 보면 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렇게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돈에 영혼을 내주고 살다보니 자기 존중감도 형편없이 낮다.
부딪혀보면 너무 쉽게 현실에 굴복하니 금방 밑바닥이 들어난다.

10억이 자기삶을 지켜줄 안전판이라는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세속적 현실이 만들어낸 허구적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이게 의구심이 간다면 스프츠신문, 경제신문, 일간지 같은 매체들 한부씩만 당장 구입해서 비교해 보라.
아마 스포츠신문이나 경제신문 같은 신문들에서 그런 선전들을 눈에 뛰게 많이 발견할 수 있을거다.

그렇게 많은 식민지를 획득하고도 알렉산더는 자기 삶을 겨우 30살까지 밖에 보존할 수 없었으며, 그의 사후 3년이 못되어 그의 자식들이 모두 죽어나가는걸 막지 못했다.
한국에서 제일간다는 어느 재벌가의 그 많은 재산이나 권력도 사랑스럽고 발랄해야할 20대의 자식이 불행한 비관적 자살이라는 길로 가는걸 막지 못했다.
부토가의 그 많은 권력이나 재산도 부토가 사람들이 불행한 피살의 피해자가 되는길만을 열어놓았다.
예를 들자면 한도 끝도 없다.

설사 10억이 마련되었다 할지라도, 그것 자체가 인생의 구원이 될 수 없다.
그 10억으로 어떻게 행복하고 풍요롭게 살지 알지 못하는 한, 그것은 오히려 그의 삶을 옥죄는 억압으로 되돌아 올거다.

차라리 어렸을적 부터 세상과 풍부하게 감응하고, 자신의 순수한 욕망에 대한 성찰이 잘 되어 있는 사람들이 비록 10억을 못 가졌다할지라도 훨씬 행복하게 살 줄 안다.

나는 돈 한푼 가지지 못하고, 변변한 현실적 지위를 갖지도 못했으면서도 하고 싶은 일 다하고 사는 사람들을 발견하곤 한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진심으로 존경심이 생긴다.

이런저런 근거를 제시하지 않더라도,
그냥 맨땅에 헤딩하기로 말해도,
10억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삶은 쫌 거시기하지 않은가?

아이고 피곤하다. 뻔한 얘기를 그럴듯하게 말할려고 폼 잡고 이러는 내가 우스워보인다.

사실은 직접 대놓고 내 주변 누군가에 대한 적대감을 표출할 수없어서 이리저리 에둘러서 말하려다 보니 이렇게 말이 비비꼬였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한미디만 더 할련다.
이왕 나온거 직빵으로 내 뱉어야 속이 후련해질거 같다.

 형님 그렇게 살지 마쇼. 쪽 팔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