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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영화보기

즐거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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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심란한 마음을 달래려 영화를 보러갔다.
이준익 감독이 만든 '즐거운 인생'이다.
여기저기 매체에서 이준익 감독 인터뷰를 읽으면서 참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학교다닐때 공부하기가 죽도록 싫었단다.
학력고산가 뭔가 하는 시험에서 총점의 반도 안되는 점수로 대학을 갈 수 가 없었단다.
이리 저리 빈둥대다가 재수좋게 어디 미대에 들어갔단다.
그것도 중간에 때려 치고 영화간판 그리다가, 영화 수입업자 일까지 하게 되었단다.
그게 흥행에 실패해서 수십억대의 빚을 지고 있었단다.
그걸 값을려고 필사적으로 영화를 만들었고, 몇번 더 실패하다가 운좋게 '황산벌''왕의남자' '라디오스타' 같은 흥행작을 줄줄이 만들었단다.
그래서 빚을 다 청산했단다.
빚이 자기의 에너지 였는데 이제는 그게 없으니 허전하단다.

영화를 만들때 자기는 아무런 의견이 없단다.
그저 배우들이 하자는데로 한단다.
배우가 배역에 관해서 자기보다 훨씬 전문가일텐데 자기가 웬 꼽사리 낄일이 있냐는거다.
그저 하자는데로 자기는 한단다.

자기는 책 읽는걸 싫어한단다.
친구들이 애써서 5시간 동안 독서한거, 자기는 그 친구로부터 5분이면 자기거로 만들 수 있는데 왜 힘들여서 독서하냔다.
그냥 공부 많이한 친구들만 있으면 된단다.

황산벌, 왕의남자, 라디오스타, 즐거운인생 등 이준익이 만드는 영화는 모두 다 남자들끼리 연애하는 영화라고 지적하자, 혹시 동성애자 아니냐고 질문하자.
자기는 여자가 무섭단다.
여자를 잘 알지도 못하고, 때지어 몰려 다니면서 남자들과만 놀다 보니 자연히 그런 영화가 나온거지, 동성애자는 아니란다.

항상 정해진 예산을 남겨서 영화를 만드는데 그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저 필요한 것만 대충 찍어서 그렇단다'

여기저기 매체에서 읽은 이준익 감독 인터뷰 내용 중에서 대충 기억에 남는 것들이다.
내가 아는 이준익 영화는 실패자, 주류가 아닌 소수자에 대한 항상 따뜻한 위로가 있다.
그게 아마 대중을 이준익표 영화로 끌어들이는 것 같다.
그게 이준익 영화가 시장에서 실패하지 않는 이유인것 같다.

이번 영화도 마찬가지 였다.
스토리도 엉성하고, 화면도 엉성하고, 심지어 음악도 엉성하게 느켜졌다.

그러나 가족으로부터 쫒겨난 눈물겨운 40대 남성들이 좌절하지 않고 현실을 딛고 일어서는 모습, 그것도 체제에 영합하는 서사가 아니라, 체제를 전복하는 것 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모습으로 일어서는 마지막은 7,000원을 아까워하지 않고, 영화관을 나오도록 한다.
그 점에서 이준익은 영악하다.

그러나 가족에 대한 서사를 그렇게 많이 다루면서도, 기존의 가족주의 이데올로기에 너무나 쉽게 투항해버린 결말은 너무 허접했다.

왕의 남자에서 보여 주었던 치열한 현실과의 대결의식이 증발해 버린 허접함을 보면서 이준익의 한계를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해피엔드의 결말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40대 남자 가장들의 남루함에 짜증이 느켜진다. 대신 그 남루한 40대들 사이에서 탱탱하고 빛나는 장근석은 정말로 휘황찬란하다.
장근석의 그런 휘황한 빛이 없었더라면, 이 영화는 아마도 진짜 짜증나는 영화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어느 매체에서 읽었는데, 이 영화를 찍으면서 장근석 캐릭터가 나머지 배우들의 캐릭터를 너무 많이 잠식할까봐, 다른 배우들이 소모품처럼 보이지 않도록 무지하게 애썼단다.
카메라도 장근석에게 최소한으로만 가도록 작위적으로 엄청 노력했단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영화보는 내내 장근석이만 눈에 들어왔다.

그의 휘황찬란한 빛나는 젊음의 빛은 무엇으로도 감추어지지 않는다.
결국 이 영화는 나 같은 늙은이를 위로하는게 아니고 기죽게 만든다.

서사는 실패한 40대 늙은이들을 위로하지만, 머리에 잔상으로 남는 이미지는 그들을 더욱 주늑들게 한다.

영화의 서사와 이미지가 서로 어긋나 있다.
대중적 상업영화를 지양하는 그가 실패한 것 처럼 보인다.

그건 그거고 나는 젊음이 이렇게 압도적으로 아름답다는 것을 새롭게 발견했다.
나에게도 그런 빛나는 시절이 있었을거다.
내 자의식에 그게 남아있지 않은걸 보면, 젊은 시절에 무겁고 진지한 열등감에 꽤나 시달렸나 보다.

이제라도 정말 젊고 빛나게 살고 싶다.
과거는 어짜피 현재 속에서 새롭게 쓰여지고, 새롭게 탄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