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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 Empire 1

cf) 네그리는 이탈리아 출신의 혁명가이자 저술가다.
하트는 네그리의 프랑스 망명시절 파리대학에서 네그리에게 수학한 제자다.
하트는 미국에서 영문학을 공부했고, 이후 프랑스에서 공부했다.
네그리가 이 책의 주 저자이고, 하트가 네그리의 사상을 영어로 번역했다고 보아야 한다.
이 책에서 네그리가 그리는 제국에 대한 이미지는 로마제국을 닮았다.
로마제국에 대한 이해를 풍부하게 제국에 대한 설명에 차용하고 있다.
로마제국이 지속적인 혼종으로 제국의 지배 경계를 넓혀가는 것도, 미국이라는 제국과 유사점이 있다.
이에 비해서 중국은 중화라는 중심을 세우고 차이를 소멸해가면서 영토적 제국 지배를 확립했다.
미국이 제국으로서 중국모델 보다는 로마모델을 닮았다는 설명이 설득력이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간주곡 : 대항제국

1. 미국이란 ?

네그리가 미국을 보는 시선은 특이하다.

미국이 처음부터 인종적 혼종으로 출발했다는점에 주목한다.
미국의 헌법체계가 단일민족국가에 근거를 둔 근대적 민족국가로서 출발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속적으로 혼종을 역동시키는 헌법체계를 가지고 있다.
탈현대에 나타나고 있는 혼종적 성격이 처음부터 미국이라는 국가의 지배적 존재양태였다.

탈현대의 전지구적 특성인 혼종은 미국의 전지구적 존재로의 변화를 나타낸다.
한국의 이주노동자가 200만을 넘나든다고 말한다.
이들의 논리에 따르면 한국이 미국이라는 말과 동일하다.
서울을 제삼세계의 어느 지역이라고 말하는 건 현실에 대한 무지와 같다.
서울은 뉴욕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거다.

미국이라는 제국이 전지구에 편재한다.
이런 제국적 지배에 저항하는 다중도 또한 전지구적으로 편재한다.
실존하는 국가로서 미국 내부도 제국으로서 미국과 다중으로 선분이 그어져 존재한다.

과거 제국주의론 처럼 제1세계, 제2세계, 제3세계로 지역에 따라 구획하는건 불가능하다는 거다.

전지구가 미국이라고 네그리는 해석한다.

A) 미국은 제국주의라는 악마의 더욱 발전된 형태인가 ?

제국주의인가?  제국인가?

제국주의 : 단일한 주권국가가 다른 주권국가들을 물리력을 통하여 지배하는 형태. 근대적 국가기구의 전형성이라고 간주한다.

제국 : 근대적 주권국가의 개념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탈근대적 국제질서 또는 삶의 생산형식. 제국은 탈근대적(탈현대적) 현실체제로 이에 상응하는 잠재영역은 다중이다. 네그리에게 제국과 다중은 서로를 지속적으로 규정해 나가는 일종의 짝이다. 들뢰즈의 vertuality <---> actuality 라는 서로 상응하는 짝의 개념을 거의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


네그리는 제국주의의 발전 형태로서 '제국'인 미국을 훨씬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소수의 열강들이 벌이는 제국주의적 경쟁구도가 인간의 자유와 해방에 대해서 훨씬 억압적인 체제라고 인식한다.
대문자로 표현하는 'Empire : 제국'은 'emperialism : 제국주의'을 구성하는 'empires : 제국들'이 가지는 착취, 억압, 폭력성을 일정 부분 극복하고 있다고 본다.

자본주의와 연결해서 설명하면, 제국주의 체제가 자본의 재생산을 용이하게하는 몇개의 강력한 국가권력들의 경쟁체제라면, 제국체제는 자본의 재생산을 용이하게하는 권력들의 협업체제라고 본다.
이 과정에서 제국은 전지구적 권력을 구성한다.
제국으로서 미국이 일국적 존재가 아니라는 거다.
미국은 지구 전체라고 설명한다.

미국이라는 제국이 전지구적 지배체제로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동원하는 이데올로기는 '평화-인권-민주주의-반테러리즘'  등과 같은 인류보편적 가치다.
1980년대 이후 미국이 전쟁에 개입할때는 모두 이런 명분이 동원되었다.
군대도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기는데 동의하는 다국적군을 구성한다.
이런 이데올로기 들은 제국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윤리 도덕적 명분으로서 동원되기 때문에 위선적이다.
제국의 이익을 미화하고 제국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기능을 한다.

그렇다고 제국이 동원하는 인류보편적 가치나 이데올로기들이 나쁘다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제국의 전사인 제국주의시대의 벌거벗은 폭력체제 보다는 순화되었다고 본다.
미국이라는 제국이 동원하는 이데올로기를 살펴보면 더 이상 미국이라는 제국이 전쟁제국이 아니라고 본다.
경찰이나 사법체계와 같은 것들이 내세우는 이데올로기를 제국으로서 미국은 동원한다.

B) 미국이라는 제국은 어떻게 출현하는가?

인류보편적 가치를 존재 이데올로기로 제시하는 미국이라는 제국은 왜 출현했는가?
네그리는 그 이유가 자본주의 발전과정의 산물이라고 본다.
자본의 운동이 그런 역사를 만들었다는 거다.

네그리는 자본주의를 중립적으로 본다.
역사발전의 한 양태일 뿐이라는 거다.
들뢰즈와 같이 자본주의를 붕괴시키는 것은 자본주의의 발전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본다.
맑스가 자본주의 생산력 발전이 사회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라고 해석하는 것과 같은 입장을 취한다

네그리의 기본 입장은 자본주의는 철저하게 자본에서 이탈하려는 탈주의 선을 쫒아가면서 발전한다고 본다.
자본주의 발전의 동력이란 반자본주의 운동이라는 거다.
모든 생산관계 변화, 좁게 말해서 생산성 혁신은 노동자들의 노동파괴의 산물이라고 본다.
노동자들의 노동파괴는 자본으로 하여금 새로운 생산관계 혁신의 압력으로 작용한다.
이것이 지속적으로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기술혁신의 주요한 힘이라는 거다.

노동자들의 혁명적 정치운동은 반자본 운동이다.
이것에 대응해서 자본은 새로운 축적기제를 만들어낸다.
자본은 탈주를 재빨리 재영토화해서 자기를 강화한다는 들뢰즈의 설명을 네그리는 총실히 따르고 있다.
자본과 반자본주의 노동운동이 상호관계적이라고 파악한다.

그런데 프랑스68혁명은 자본의 일국적 존재형태를 불가능하게 했다.
일국적 체제 안에서 노동과의 길항관계로서 발전하던 자본은 프랑스 68혁명 이래로 축척의 위기에 직면한다.
68혁명 이전까지 자본은 노동의 대가를 가부장인 남성 노동자에 지불하고 있었다.
가부장인 남성 산업노동자를 통해서 여성, 학생, 농민 등과 같은 사회적 소수자를 대리 통치하였다.

68혁명은 잠재해 있던 사회적 소수자들이 사회에 전면적으로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자본은 새롭게 등장하는 사회소수자들을 더 이상 가부장인 남성 산업노동자를 통해서 관리할 수 없게된다.
이런 국면은 프랑스 68혁명이 영국, 이탈리아, 미국 등으로 퍼져나가면서 전세계적인 현상으로 확인된다.

자본이 이러한 위기 국면을 타개하는 것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혁명의 운동을 자기화하는 것이다.
68혁명의 기본적인 이데올로기는 국민으로 호출되는 주체성에 대한 거부다.
'노동자에게 조국이란 없다'라는 구호로 대표되는 세계혁명의 이데올로기다.
자본은 이런 탈주선을 재빨리 가로챈다.

일국적 자본의 지배적 형태였던 제국주의 열강체제가 무너진다.
자본의 국경을 넘어선 운동이 시작된다.
'자본에게 조국이란 없다'는 현실이 나타났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출현했다.

세계화체제 속에서 자본은 더 이상 제국주의 국가간의 경쟁체제를 유지할 필요성을 상실한다.
자본은 전지구적으로 원활하게 활동하고, 그 결과로서 지속적인 축적이 가능해야 한다.
이걸 가능하게하기 위해서는 인류보편적 가치의 확립이 필요하다.
제국주의 열강들을 통한 자본간의 경쟁구도가 이제는 무용하게 되었다.
오히려 자본간의 전세계적 협력체제가 요구되었다.
전지구적인 지배체제로서 제국의 출현이 필요하다.
그게 미국이고, 미국은 전지구에 편재하는 제국(Empire)이다.
G7, WTO, IMF, GATT, UN, 다국적 인류보편가치를 추구하는 NGOs, 다국적군, 다국적기업 등이 전지구적 제국인 미국의 하위체제다.

결국 국민국가의 주권은 급속히 약화되고 있다.
제국의 협력체제로 국민국가 역할의 많은 부분이 이행하고 있다.

C) 두 개의 얼굴 ?

결국 제국으로서 미국은 자본주의의 더욱 발전된 형태이다.
네그리는 이런 자본주의의 발전이 해방과 억압의 두 측면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네그리가 보기에 식민지 제국주의에 대한 민족해방 투쟁과 같은 문제설정은 과거로의 회괴를 기획하는 낡은 문제의식이라는 거다.

네그리는 전지구적 제국속에서 억압과 해방의 두 얼굴을 동시에 본다.
 
cf) 네그리가 이탈리아 공산당 운동의 최전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호의적인 태도를 견지하는게 신기하다.
네그리는 결국 미국을 통해서 세계가 변화할거라는 태도를 견고하게 유지한다.
이탈리아 공산당 운동이 전통적으로 구소련의 사회주의체제에 대해서 비판적이다.
그런 전통을 그는 충실하게 계승하고 있는것 같다.


2. 사회주의체제란 ?

구 사회주의 체제를 이들은 철저하게 자본주의의 한 형태라고 해석한다.
국가자본주의라고 규정하다.
생산양식에 있어서도 자본주의와 동일한 포디즘을 채택하고 있음을 주목한다.

구 사회주의체제가 몰락한 배경을 이들은 인구이동에서 찾는다.
동구권의 대탈출이 동구국가 자본주의체제 몰락의 결정적 이유라는 거다.

3. 이주노동자들(야만인들) 이란 ?

이 낙원이 지상을 순례하는 동안, 낙원은 모든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그래서 각종 언어를 말하는 이방인들의 사회를 가져온다. ---- 성 아우구스티누스 ---

제국(p.275)에 나오는 말이다.
이들은 제국에 대한 대항 제국이 결국은 사람들의 이동에 의해서 만들어질거라고 생각한다.

아우구그티누스는 몰락하는 로마제국에 대한 대안으로서 카톨릭 교회공동체를 상상했다.
그가 상상한 교회공동체는 모든 이방인들과 이질적 언어를 결집시킬거라고 생각했다.
그걸 위한 순례여행이 그는 몰락하는 로마제국에 대한 대안적 길이라고 보았다.
 
아우구스티누스를 탈현대적으로 새롭게 번역하면 제국적 지배질서를 넘어서는 힘은 사람들의 이동에서 나온다.
제국적 지배질서가 강요하는 규제와 분리의 선을 넘어 사람들이 무차별적으로 이동한다.
이런 이동 또는 탈주는 새로운 생산을 기획하는 다중의 평면이다.
네그리와 하트는 결국 새로운 인종적 혼종이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변혁을 낳는 중요한 계기라고 본다.

4. 인간이란 ?

탈현대 사회에서 인간이란 역사발전의 양태속에서 진화한 새로운 잡종이라고 본다.
이들은 특히 인간과 기계의 결합에 주목한다.
이것도 들뢰즈의 생각에 영향을 받은거다.
기계와 결합한 인간은 그 전의 인간과는 확연하게 다른 변이종이라는거다.

기계와 결합한 인간의 특이점은 성의 경계를 흐트러트린다는 점이다.
성의 경계의 불분명함은 사회의 재생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기계와 인간결합의 더욱 깊은 형태는 신체의 기계화다.
자본에게 기계는 생산을 위한 수단이다.
자본이 점유하고 있는 불변자산이다.
인간이 기계와 결합함으로서 인간 자체가 생산을 위한 자본의 점유재산으로 출현한다.
자본이 인간을 생산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걸 네그리는 생체적 삶의 생산이라고 말한다.
탈현대사회는 생체적 삶이 모든 영역에서 편재한다고 본다.

자본과 인간 삶과의 대결 국면이 더욱 전면적으로 펼쳐져 있다는거다.
이런 인간의 삶은 자본의 지배영역이면서, 동시에 자기해방의 역능을 더욱 풍부하게 가진 존재이다.
결국 네그리는 자본주의의 발달이 인간해방 역량을 점점 증대시킨다는 관점을 견지한다.
 
cf) 유전공학의 발전은 자본이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영토화의 영역일 수 있다.
유전공학은 제국의 인간 재생산에 관한 새로운 기획의 장이다.
자본은 유전공학을 통해서 인간에 대한 새로운 지배관계를 상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5. 역사의 종말 ?

역사의 종말론은 자본주의가 역사발전의 최종적 형태라는 전제를 깔고있다.
헤겔이 절대정신의 구현체로서 민족국가의 절대왕정체제를 상정하던 사고 방식과 닮았다.
실제로 이런 논리를 주장한 대표적 인물인 푸랜시스후꾸야마도 헤겔주의자라고 말한다.
90년대 동구권 몰락이후에 이런 논리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네그리도 이런 입장을 인정한다.
선형적인 역사발전의 형태라는 역사는 자본주의의 전지구적 지배 형태인 제국의 성립으로 종결되었다는 거다.

그렇다고 역사의 새로운 발생을 이들은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후꾸야마류의 자유주의적 역사종말론과 다르다.
이들은 제국이후의 대항제국적 형태의 발생을 상정한다.
그게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는 결코 언급하지 않는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말하는 목적론적 사고에 대한 비판을 네그리는 분명하게 수렴하고 있다.

네그리는 대항제국이라는 언어 이상의 어떤 언어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대항제국을 구체화하는 순간 모더니즘의 목적론적인 사유체계에 빠진다고 생각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 시기의 모든 폭력이 목적론적인 사유체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다중의 실체화 과정 속에서만 새로운 역사적 기획이 모습을 드러낼거라고 본다.
이론이 실체화 과정에서 검증된다는 점에서 맑스를 충실히 계승한다.
대항제국을 구체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맑시즘과 확연히 갈라지는 모습을 보인다.
전통 맑시즘은 사회주의를 자본주의 대안으로 구체화했다.

네그리에게 다중은 실체로서 분명하게 존재하지만, 현실권력의 시선으로는 포획되지 않는 탈주선이다.
대항제국은 이런 탈주의 잠재영역들이 현실화-실체화 되는 과정에서 성립한다는 거다.

한국사회에서 최근에 그 실체를 드러낸 잠재 영역에 분명히 존재하나, 권력의 시선으로 포획되지 않았던 다중의 하나는 10대 학생들일 것 같다.
권력의 어떤 시선으로도 포착되지 않았던 그들이 실체화하면서 무소불위일것 같은 현실권력을 단번에 전복하는 결과를 낳았다.
10대가 좀더 장기적으로 어떤 실체화 과정을 보일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cf) 이진경은 '철학과 굴뚝 청소부'에서 '이론의 실체화 과정을 통한 검증'이 맑시즘의 핵심이라고 본다.
맑스의 실천이론이 맑시즘이 모더니즘의 한계를 벗어나고 있는 사유의 증거라고 말한다.
맑스의 실천이론을 과도하게 해석하면, 대중을 이끄는 전위 같은 목적론적 운동이론을 낳는다.
실천을 단지 잠재된 영역의 실체화 과정이라고 소극적으로 해석해야 할 것 같다.
실천을 과도하게 해석하면 또 다른 계몽주의적 관점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