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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영화보기

장정일 삼국지

 

한국 문단에서는 왠만큼 명성을 얻으면 곧바로 삼국지를 쓴다.

그 이유는 '삼국지'라는 소재의 대중성 때문이다.

아마도 집집마다 삼국지 한질 쯤은 모두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러니 상업적 성공에 접근하기도 용이하고, 독자를 찾아내기도 쉽다.

출판사 입장에서건 작가 입장에서건 이런 소재는 마르고 닳도록 울궈 먹을 수 있는 마르지 않는 샘물이다.

그래서 장정일이 삼국지를 썼다는게 개인적으로 뜨악했다.

그래도 무언가 새로운게 있겠지.

장정일 특유의 새로운 시선이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장정일을 벗겨 보고 싶은 가당치 않은 욕망도 작용했다.

장정일의 삼국지 9권, '북벌.북벌.북벌'을 읽어 봤다.

도대체 다른 삼국지와의 차이가 무언지 모르겠다.

남성 중심의 서사를 극복했다는데, 내 눈에는 하나도 그게 안보인다.

중국 중심의 중화론을 극복하고 변방의 소수민족들을 존중했다는 해설도 말도 안된다.

이문열 보다 한발짝 더 여성주의적이고 , 동아시아적이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다.

내 상상이 너무 앞서 갔나?

모든게 그렇기는 하겠지만, 삼국지는 어떤 식으로든 재서술이 가능한 소재다.

남성 영웅 캐릭터를 싹 지우고 철저하게 여성캐릭터 중심으로 쓰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여자 입장에서 권력에 눈먼 유비의 느글느글하고 치졸한 모습을 그리면 아마도 통렬할 것이다.

제갈공명의 남만 정벌을 확 비틀면 아마도 반중화주의적인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게 삼국지 재서술의 의미일것이다.

그런점에서 장정일의 삼국지는 기존의 삼국지를 그냥 조금 새롭고 화사하게 치장한 것에 불과하다.

소재의 무게에 눌려 그런지 장정일의 삼국지는 너무 안이하다.

나갈려면 장정일 답게 팍 나가든지, 아니면 애초에 손을 안대는게 그 답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