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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대기

인문학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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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떠다닌지 10년 이상이 된 것 같다.
대학교수들이 인문학을 살리자고 성명서도 내고, 떼거리로 정부에 대책을 요구하기도 한걸로 안다.
노무현 정부에서 그런 요구를 받아서 대학들에 수백억을 투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요즈음은 인문학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예 논의 자체가 없다.
아마 깔딱거리며 숨을 연명하고 있는게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어떤 학문이 위기라는 말은 그것의 현실적합성이 소멸했다는 말이다.
모든 죽은 것들은 다시 태어난다.
인문학이 위기라면 그 안에 새로운 생성의 숨결이 들어있다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 숨결의 방향은 어떤 것들이어야 할까?

인문학은 글자 그대로 인간에 관한 학문이다.
인간에 대한 학문이 죽는다는 말은, 지금까지의 인간에 대한 이런저런 이론들이 현실에서 먹히지 않는다는 말이다.
왜 먹히지 않을까?

인문학의 대표선수들을 뽑자면 대충 철학-역사-문학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지금까지 철학-역사-문학의 주류적인 이론 생성이 자본주의사회에 대한 문제제기와, 분단체제라는 문제에 집중해 있었다.

인문학이 위기라면, 이 문제설정이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제기 방식은 다양한 사회주의적 체제를 중심으로 사유되었다.
이런 문제제기가 위기에 봉착했다는 거다.
자본주의의 대안은 사회주의적 어떤것이다,라는 사고방식에 갇히지 않은 더 폭 넓은 상상력이 필요해 보인다.
인간의 자유롭고 행복한 삶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 차원의 사유가 필요하다.

두번째로 분단체제라는 문제제기는 통일된 민족국가 형성이라는 대안을 중심으로 이론이 구성되었다.
통일된 민족국가라는 대안이 이론구성의 중심으로서 적합성에 대한 의문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범민족주의 현실세력이 워낙 강고하고, 진보 보수 양진영에서 현실권력으로 존재하다보니, 문제가 있다는 언명만 있었다.

분단체제에 대한 사유가 통일된 민족국가라는 결론으로 수렴되는 틀이 아닌 다른 사유가 필요하다.
남한과 북한이 독립국가로서 개별국가로 서로 상정되고, 국가대 국가의 관계로 어떻게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지를 중심으로 이론구성을 하는게 올바른 방향이 아닐지 생각해 본다.

민족국가라는 사고가 필연적으로 제국주의적 행태로 발전할 거고, 한국 사회의 주류자본주의를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한다면, 그런 통일된 민족국가는 단지 자본의 운동만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자본을 중심으로 통일된 민족국가는 오히려 현재 남한사회가 심화-확장된 재현이 아닐까?라는 의구심을 떨치기 힘들다.

마지막 하나는 지금까지의 인문학이 너무 사회체제나 국가라는 거시적 차원의 문제설정에 매몰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을 어떻게 해석하고 구성해야하는지에 대한 미시적차원의 이야기가 부족하다는 갈급함에 대한 대답이 있어야 한다.

이런 미시적 수준의 실천이론들은 사회주의적 상상력의 범주와, 통일된 민족국가로서 근대성의 완성이라는 상상력의 범주를 동시에 해체해야할 것 같다.
그러면서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일상의 삶을 만들어 낼 만한 이론이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자본이나 국가라는 것에 휘둘리지 않고, 개별적 개체들이 순수한 욕망에 반응하면서 보다 자유롭게 살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본다.

너무 무거운 생각에 빠졌다!
어디 가서 술이나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