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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경치

선거가 끝나고

선거가 끝나고 여기저기 축하한다는 메세지를 받는다.
한 마디로 황당하다.
이런 낮선 느낌은 무엇 때문일까?

혼신을 다하여 지지할 특별한 대상이 없는 현실에서 오는 일종의 거리감 때문일 것이다.
몇년전 지지정당을 진보신당으로 옮겼다.
궁벽한 시골인 이곳에는 그런 정치적 감수성을 현실에서 관철할 통로가 없다.
그러다 보니 비판적 지지 비슷하게 현실정치에 개입할 수 밖에 없다.
그런 간접성이 현실정치의 결과에 대해서 뜨악하게 반응하게하는 원인일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현실에 좀더 효율적이고 확고하게 개입하고 싶은 욕망은 있다.

현실속에서 제대로 대변되지 못하고 있는 이런 정치적 욕망이나 감수성은 어떻게 통로를 확보해야 하나?

아마도 진보의 형식이 지금보다 더 다양하고 풍부해야 한다.
민주대연합 같은 흘러간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라면 흥이 안나는걸 어떻게하나?
그런 정치적 감수성은 소수에 불과하니 무시해도 그만이라면 할말은 없다.
그러나 건강한 사회란 그런 소수자적 욕망들도 함께 춤추게 하는데 있을 것이다.

선거가 끝나고 여기저기 축하한다는 인사말이 꺼림칙하고, 느끼하다.
축배 보다, 지금은 진보의 내용을 더 벼르고 다듬어야 한다.

보편적 합리성을 제고하면서 개별적 차이들이 흘러넘치게 해야 한다.

보편적 합리성이란 한반도의 분단체제에 근거한 봉건성을 극복하면서 성취될 것이다.
개별적 차이들은 그 과정에서 포착되지 않는 환경문제 인권문제 노동문제 다인종사회 같은 의제들일 것이다.
때때로 모순적이고 갈등하는 이런 의제들을 관리하고 공유할 새로운 연합과 협력의 틀이 만들어지지 않는 다면 더 이상의 진보는 불가능하다.
당장 7월 보선에서 부터 그런 갈등이 노정될것이다.

cf) 민주당이나 민주노동당에게는 과거로 역행하는 MB STOP이 중요할 것이다. 그런 문제의식을 산출하는 민족문제가 중요하겠지만, 다른 누군가는 지금 당장의 노동환경이 목숨을 위협한다. 그 사람에게 노동환경의 문제에 좀더 집중하는 진보신당에게 투표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또 다른 강자의 폭력이다. 주변에 선거가 끝나고 한명숙의 실패를 아쉬워하면서 노회찬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즐비하다. 그런 문제의식에 부딪히면 좀 절망감이 든다. 진보신당을 비난하는 에너지를 진보의 연대와 협력의 틀을 좀더 정교하고 폭 넓게 구축하는데 쏟는게 더욱 생산적이다. 아쉬운 실패의 원인이 결국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성찰한다면 다음에 조금 이길 수 있다. 그러나 아위순 실패의 원인을 내부의 누군가에게 돌린다면 다음에도 또 조금 진다. 그래서 진보신당을 비난하는 손길들이 게으르고 거만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