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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먹고놀기

미국여행(플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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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로리다주립대학 인문대 건물 야경이다. 주로 이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런곳에 비하면 우리나라 대학은 건물로는 세계 최고다. 그러나 정작 세계 100위 안에 드는 대학이 하나도 없다. 이곳이 자기들 주장으로는 세계 50위 안에 드는 대학이다. 대학에 등급을 매기는 것 자체를 신뢰하지 않지만, 우리나라 대학이 진짜 학문하는 곳이 아니라는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인맥장사와 인맥구매하기가 우리나라 대학의 전부다.)

내가 원래 기회주의적 기질이 있다.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이니 미국으로 가야한다,라는 젊은시절 부터의 욕망이 있었다.
한때는 유학에 필요한 Tofel 이나 GRE 같은 영어자격 시험에 빠져지낸적도 있다.
그런 한편으로 제국으로서 미국에 대한 반감도 엄청많다.
오랫동안 미국에 대한 분열증적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언젠가 플브라이트가 후원하는 두달짜리 미국연수 프로그램에 지원했다가 실패한적이 있다.
어찌해서 시험은 통과했는데, 인터뷰에서 실패했다.
전날 동틀녁까지 술먹고 헤롱거리는 정신이었다.
원래 좀 무대포기질이 있다.
인터뷰에서 세계의 중심 '제국'을 보고 싶어 지원했다고 말했다.
왜 미국이 제국이냐고 묻길래, CNN같은 매체를 보면 알 수 있지 않냐고 응수했다.
그랬더니, 오히려 BBC같은 채널이 전세계적인 영향력이 더 크지 않냐고 반문했다.
아뭏든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이고, 그런 미국이 어떤 곳인지 직접 체험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반미감정을 그대로 노출했다.
그것 때문에 인터뷰에 실패했다는 내 나름의 그럴듯한 핑계거리를 가지고 있다.

미국에 대한 증오는 시대가 부여한 당위성에서 나오는 심리다.
미국에 대한 선망은 인정투쟁에서 승리하고자하는 권력의 욕망이다.
이게 언제나 내 마음속에서 교차한다.
그러던 중 영어교사 6개월짜리 연수프로그램이 있어서 거기에 지원했다.
그 프로그램에 한달짜리 미국연수프로그램이 패키지로 붙어 있었다.

여러곳이 연수장소로 제시되었다.
플로리다 주립대학에 대한 선호도가 압도적이었다.
지원자가 넘쳐 결국 뽑기로 결정했다.
재수가 좋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는 재수가 나빴다고 해야한다.
나중에 확인한건데 제일 인기가 없었던 샌디에고로 간 사람들이 제일 재미있고 의미있는 연수를 했다.
요즈음은 인생이 원래 그런거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서 삶을 기획해봐야 너무나 많은 우연성들에 삶은 흔들릴 수 밖에 없다.

국적기 대한항공을 타고 애틀란타로 갔다.
거기서 국내선으로 게인즈빌이라는 곳에 내린다.
플로리다 주립대 관계자가 버스를 대기하고 기다리고 있다.
대학으로 직행해서 오리엔테이션 받고, 간단한 환영 만찬도 하고, 한달동안 머물 호텔로 간다.
말이 호텔이지 우리나라 모텔보다도 후지다.

5일 동안 빡세게 수업하고, 주말에 논다.
다른 사람들은 차를 렌트해서 여기저기 철새처럼 원정을 다녔다.
나는 삶은 철새형이지만, 여행은 텃새형이다.
차분하게 한지역에 눌러 않아 자세히 보는 스타일이다.
그렇게 미친놈처럼 흭흭 날아다니면 뭐가 보인다는건지 이해가 안간다.
그저 수박 것핧기 식으로 어디어디 가봤다라는 것만 기억에 남는 여행은 여행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도착 다음날 자전거 구입이 가능한지 알아 보았다.
대학 관계자가 자전거가 여기서는 가장 빈번한 도난 대상품이란다.
젊은 대학생들이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쓰고 있으니,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겨우 한달 있을건데 비싸게 새자전거 구입하는게 낭비 같아서 중고 자전거를 알아보니 학생회관 근처에 가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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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회건물. 내부에 각종 공연장이 있고, 영화관도 있다. 이곳 식당 음식이 싸고 양도 많다)

학생회관 건물 모퉁이 자전거포에 덴젤 워싱턴처럼 잘 생긴 흑인 학생이 열심히 자전거를 수리하고 있었다.
"야 뭐하냐?
자전거 수리중이다.
학생이냐?
그렇다.
돈 받냐?
땡전 한푼 안 받는다.
그럼 순전히 재미로 하냐?
그렇다.
공부는 언제하냐?
시간 되는데로 돌아가면서 클럽 멤버들이 일한다."

젊은 놈이 정말 예뻐보였다.
"나 자전거한대 줄 수 있냐?
20인치 짜리 앞바퀴 사오면 한대 조립해 줄 수 있다."

그로 부터 자전거 부품가게가 있는 장소를 소개 받았다.
거기 가서 앞바퀴가 아니라, 중고 40달러짜리 정말로 튼튼한 자전거를 샀다.
자전거 앞바퀴들고 학생회관까지 갈걸 생각하니 그게 까마득했다.
더구나 앞바퀴 한개나 싸구려 중고 자전거 한대나 비용이 비슷했다.
그렇게 만나게 된 이 자전거가 구식이라서 브레이크 시스템이 독특하다.
따로 브레이크가 없고, 자전거 회전 방향을 거꾸로 돌리면 브레이크가 작동한다.
자전거에 비해 정작 비싼건 자전거 자물쇠였다.

아뭏든 이 자전거를 타고 호텔과 학교를 오갔고, 시간이 날때마다 게인즈빌 곳곳을 돌아 다녔다.
게인즈빌 버스는 플로리다대학생들에게 공짜다(연수생들에게도 임시 학생증이 지급된다).
근데 모든 버스 앞부분에 자전거 거치데가 달려있다.
여기에 자전거를 싣고 적당한 곳에 내려서 돌아 다니면 어디든 갈 수 있다.

어느날 학생회관 앞 자전거 포에서 그 예쁜 젊은놈을 다시 만났다.
그에게 내 자전거 자랑을 했다.
'어쨌든 여러 가지로 도와줘서 고맙다.
뭐! 나는 한게 아무것도 없다. 네가 만족한걸 보니 오히려 내가 기쁘다"

이게 미국의 모습이다.

어느날 버스 자전거 거치대에 자전거를 싣기 위해서 애를 쓴다.
처음 해보니 버벅거린다.
뭐라고 운전기사가 빠르게 말한다.
못 알아 듣는다.
잔뜩 짜증을 섞어 버럭 화를 내며 큰소리로 말한다.
겨우 무슨 말인지 알아 듣고 진땀흘리며 자전거를 거치대에 싣고 버스에 오른다.
말도 제대로 못알아 듣는 노랑둥이 조그만 놈에 대한 경멸의 시선들이 역력하다.
물론 자격지심이 일부 작용했겠지만, 미국에서의 생활중에 인종차별적 모멸감을 무시로 느키지 않을 동양인이란 없을거다.

이것도 미국이다.

미국을 방문한게 2004년 겨울이다.
9.11 테러가 발생한지 채 2년이 지나지 않았다.
미국인들의 무슬림들에 대한 증오가 아직도 이글이글 불타고 있다.
어느날 대학 캠퍼스 사람들의 왕래가 가장 분주한 곳에 터번을 쓰고 차도로를 입은 이슬람교도들이 캠프를 차려 놓고 열심히 선교활동을 한다.
아무런 제지 없이 평화롭게 그런 캠프가 몇일이나 진행된다.

이것도 미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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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올랜드의 디즈니랜드. 바로 옆에 유니버셜스튜디오와 씨월드가 있다. 올랜드는 전세계에서 가장 큰 휴양지라고 한다. 디즈니랜드는 다 아는 대로 원조 놀이 공원이고. 유니버셜 스튜디오는 가상체험공간이고. 씨월드는 커다란 호수 주변에 각국 세트장이 있고, 각국 현지 기념품을 구입할 수 있다. 밤에 호수위에서 펼쳐지는 불꽃 놀이가 환상적이다)
 
어느날 단체로 디즈니월드, 유니버셜스튜디오, 씨월드가 있는 올랜드로 놀러간다.
숙소에 여장을 풀고 바에서 혼자 술을 마시다 우연히 타고온 버스기사와 조우한다.
그에게 아는체를하고 같이 술을 마신다.
술이 거나하게 취하고, 술취한 조그만 동양녀석에 대한 호기심으로 몇명의 등치가 산만한 백인들이 합석한다.
유명한 휴양도시라 다 놀러온 놈들이다.
TV 진기한 아시안가 뭔가하는 프로그램에서 봤다며 너희들 진짜 산낙지 먹느냐고 눈을 둥그렇게 뜨고 물어온다.
먹었다고 하면 한순간에 조롱거리로 전락할거고, 안먹었다고 하면 마음이 찜찜해질 순간이다.
잠깐 망설이다가, 오기가 발동해서 많이 먹었다고 말한다.
모두가 떼굴떼굴 구르고 웃으면서 '제 산낙지 먹었데'라고 원숭이 놀리듯 한다.
버럭 화를내고 너희들도 별 희한한 음식 다 먹더라고 말해봐야 상황이 진정되지 않는다.

이것도 미국이다.

어느날 무식한 백인 부부와 식당에서 우연하게 자리를 같이한다.
'어디서 왔냐?
한국에서 왔다.
너희들 왜 핵무기 만들고 그러냐?
2004년이니 북핵갈등이 비등점을 향해서 끓어 오르기 직전이다.
아! 그건 북쪽 한국의 일이다.
그럼 너는 착한 남쪽 한국출신이냐?
그렇다.
자기부인에게 소개한다.
얘는 착한 남쪽 한국 출신이야!

이것도 미국이다.

어느 나라나, 어느 사람이나 마찬가지지만 미국을 일면적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분명하게 제국주의 미국이 존재한다.
그걸 반대하고, 경계해야하는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미국 전체를 그렇게 보는 시각은 너무 단편적이다.

제국주의 미국만 반대하자!
좀 현실을 미시적으로 보자!
너무 무식하게 어떤 대상을 뭉퉁그려서 보는 짓은 이제 고만하자!
그런 지혜를 가질만큼 나이 먹지 않았냐?
제발 무식한짓 이제 고만하자!
주류의 천박함도 지겹지만, 소위 진보진영이라는 사람들의 무식함도 참아내기 힘든건 마찬가지다.

그들은 내 안하무인적인 무정부주의적 래디컬리즘이 참아내기 힘들까?

cf) 미국을 떠나는 날 자전거에 '필요한 아무나 가져가세요'라는 표식을 붙여서 길거리에 내어 놓았다. 그게 아직도 굴러 다니고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