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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경치

레전드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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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은 축제 시즌이다.
거의 모든 학교들이 12월 초순에 2학기말 시험을 끝낸다.
시험 뒤 끝에 일상적인 수업으로 짜인 지루한 교육과정 운영하기가 여의치 않다.
잔머리를 굴려서, 시험 끝나고 널부러진 학생들을 축제하자고 꼬드긴다.
그게 12월 중-후반에 학교축제가 몰리는 이유다.

학교 교육과정에 축제라는게  도입된지 겨우 20여년이다.
지금도 교사들간에 축제 같은 비교과적 활동을 두고 의견이 갈려있다.

의미를 부여하는건 소수고, 뜨악하게 그냥 바라보는게 주류다.
의미를 인정하더라도, 그 내용을 어떻게 채우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학교라는게 그렇듯, 대부분의 학교 축제가 대중매체의 일반화된 코드를 흉내낸다.
그런경우 밴드공연은 축제의 메인디쉬, 앙뜨레다.

밴드 지도교사로서 내가하는 일이란 그냥 가오잡는 얼굴마담 비슷하다.
대부분의 경우 가만히 있어도 공연 섭외가 온다.
적당히 후까시 잡고 공연요청에 응한다.
한적한 시골지역이라 제대로 된 연주가 가능한 락밴드공연 팀이 드물다.

그런 저런 이유로 아이들 몰고 다니면서 교외공연을 최소한 20여 차례는 한것 같다.

대부분이 도심광장이나 해수욕장 같은 탁트인 야외 무대다.
야외 공간에서 앰프로 소리를 증폭시켜 관중들에게 전달하는게 밴드연주의 힘이다.
소리의 크기로 승부하는게 락밴드 연주다.
보컬이 부르는 노래도 대부분 소리의 크기를 최대한으로 올리는 내지르기 발성이다.


그런데 얼마전 이웃한 군의 눈꼼만한 시골중학교 축제에서 초대가 왔다.
조건이 조금 허무했다.
모든 비용을 우리가 부담하고, 자기들은 그냥 밴드 아이들 군것질 값을 대겠단다.
밴드가 움직일 때는 악기를 옮길 트럭과 연주자들 교통비만 잡아도 수월하게 20만원을 넘긴다.
같은 군내에서 이동할 경우에도 그렇다.

아이들에게 말하니 가잔다.
어이가 없었다.
돈이야 학교에 요청해서 어떻게 해결할 수도 있다.
하지만 30여명의 관중을 앞에 두고 무슨 신명으로 공연하지?
공연장도 교실 한칸 반 짜리 도서관이라는데 괜찮겠어?

아무 문제가 없단다.
예전에 그런 공연한적 있는데 재미있단다.

실질적 기능이 없는 얼굴마담 지도교사란 자기 판단을 신뢰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의 판단에 당연히 무게가 실린다.
아이들에 등 떠밀려 학교에 예산요구하고, 공연을 갔다.

코딱지만한 작은 시골학교 도서관에 악기를 셋팅하니 공간을 반 이상 차지한다.
한쪽 구석에 옹기종기 중학생들이 손님처럼 앉아있다.
공연이 시작되니 상황이 돌변했다.

앰프로 증폭된 소리들이 작은 도서관 공간을 울렸다.
연주자들의 섬세한 동작 하나하나가 가까이에서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달되었다.
처음에는 어색하게 교감하다가, 나중에는 다들 소리에 취해 들어갔다.
드럼치는 아이의 씩씩거리는 거친 숨소리가 위험스럽게 들렸다.
큰 무대에서는 실수하지 않을려고 애쓰던 아이들도 편안해 보였다.
2-3학년 팀이 번갈아 돌아가면서 맘껏 놀았다.
아이들이 선뜻 공연에 응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돌아오면서 정말로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칭찬했다.
아이들이 레전드가 좀 약해서 자기들은 실망했단다.
무슨 말인지 따져 물었다.

아무리 작은 시골학교라도 전설로 전해질 인물이 꼭 한명씩은 있단다.
작은 시골학교 공연에는 그런 인물을 만나는 재미가 있단다.
사회보던 예쁜 여학생이 그 학교 레전드인데 그 포스가 좀 약하단다.


아이고!
꾸밈없는 아이들의 그 창창한 호기심이 부러웠다.
결국, 세속에 상처 받을 그들의 미래가 안타까웠다.

그러거나 말거나 레전드를 찾아서 연말 공연이 두개나 더 잡혀있다.
나도 열심히 레전드를 찾아 봐야겠다.
시선이 다르니 레전드가 서로 다를거다.
내가 본 레전드는 아이들이 본 레전드와 어떻게 다를까?

cf1) 김영민의 책들을 읽으면서 새삼스럽게 몸의 의미를 실감한다.
예전에는 머리로 표상되는 관념이나 이성이 인간이라는 육체의 주인이라고 생각했다.
일종의 정신주의자 비슷한 생각을 했던것 같다.
요즈음에는 몸 또는 육체가 창백한 정신에 비해서 얼마나 풍부한지를 자꾸 생각하게 된다.

cf2) 누군가 락의 정신은 '주류적 가치에 대한 저항이자 전복이다'라고 말했다.
전체학생수 45명 3학급 짜리 전문계고 학교에서 근무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에 음악선생이 없어서 상치로 음악을 가르쳤었다.
지금 생각하면 코메디도 그런 코메디가 없다.
정작 음악을 모르니 음악 주변적인 것들을 잔뜩 풀어 놓고 놀던게 전부다.
노래방 기기로 노래부르기, 음악교육 사이트 서핑하기, 음악 관련 영화보기 등이다.
'school of rock'을 그때 보았다.
이 영화의 서사는 전복적이면서도 보수적이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락밴드의 저항과, 동시에 또 다른 고급한 체제적 포섭장치 라인을 따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