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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경치

노회찬 2

노회찬, 심층근대성 그리고 민주주의

 

노회찬의 삶을 어떻게 설명해야 적절한가?

개인적으로 한국 사회의 가장 큰 과제는 심층 근대성을 성취하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형식적인 사회적 근대성은, 교과서적인 입법-사법-행정의 균형잡힌 상호견제 체제가 가동하는 민주주의일 것이다.

이런 일반론적인 시각으로는, 주어진 사회의 역사적 발전과정에 해당하는 특수한 국면들을 놓치기 쉽다.

역사적인 특수한 국면들을 사고하기 위해선, 구체적인 현실의 사례에 초첨을 맞추어야 한다.

현재국면에서 그런 사례는 노회찬의 죽음이다.

 

한국 사회에 형식적 민주주의가 확정된 87년 체제 이래로, 민주적인 통제를 벗어난 괴물이 새롭게 등장한다.

하나는 재벌이라는 괴물이고, 다른 하나는 검찰로 대표되는 법률가들이라는 괴물이다.

둘다 선출되지 않은, 다시 말해서 국민들에 의한 통제 장치의 구속을 받지 않는 자의적 권력이다.

검찰(법부)과 재벌이라는 자의적 권력이 87년 체제에도 불구하고, 지난 30년 동안 한반도 분단체제를 유지시켜온 힘이다.

한줌의 정의나 합리적 정당성도 없이, 민주주의를 농단하면서 소수의 기득권 지배체제를 굴려온 실질적 힘의 근거였다.

검찰(법부)권력, 재벌권력이 수구꼴통 정치권력과 결탁하여, 87년 체제의 민주적 합리성을 말아 먹은 것이 지난 30년의 역사다.

한국사회의 근대성 또는 이성적 민주주의의 정당성은 이들 세력이 강고한 만큼 훼손되었다고 말해야 한다.

노회찬이 현실에서 가장 치열하게 대결했던 조직은 재벌과 검찰과 수구꼴통의 정치였다.

단적으로 삼성X파일 폭로는 재벌-검찰-정치권력의 야합에 대한 노회찬의 목숨을 건 결투라고 보아야 한다.

그때 이미, 노회찬은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직감으로 알았을 것이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을 적절하게 해석하려면, 이것 말고 다른 무엇이 있을까?

노회찬을 죽인건 그러므로 재벌-검찰-수구꼴통정치권력의 연합체제다.

그렇다면, 노회찬을 제대로 계승하는 길은 무엇일까?

지난 30년을 말아먹은 재벌-검찰(법부)-수구꼴통정치권력을 근본적으로 손보는 일일 것이다.

그건 어떻게 가능할까?

국민들을 대의할 수 있는 정치권력을 강화하는 길 밖에 무엇이 있을까?

수구꼴통이 과거의 정치권력의 주류이다 보니, 국민들은 무의식적으로 대의적 정치권력을 제약하는 성향을 발전시켜왔다.

정치를 제약하고 약화시킨 그런 관행 속에서, 대의적 정치권력이 약화된 빈 자리에, 대의되지 않는 검찰(법부)권력과 재벌권력이 창궐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점잖게 말해서 수단이 목적을 잠식한 것이다.

거칠게 말하면 개가 주인을 물어 뜯어 먹은 것과 무엇이 다른가?

길은 하나다.

대의되는 민주적 정치권력을 강화하고, 그런 정치권력이 검찰과 재벌을 규제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87년체제를 극복하고, 한국 사회의 근대성을 심화시켜 안정시키는 길이다.

그런 과정에서 분단체제의 해소도 그리고 새로운 민주성도 제고될 것이다.

결국 노회찬을 계승한다는 건 한반도의 민주적인 정치적 대의시스템을 강력하게 구축하여, 국민들에 의하여 통제 받지 않는 검찰(법부)이나 재벌과 같은 예외의 영역을 삭제해 나가야 한다.

이건 일종의 근대적 민주주의의 합리성을 하나씩 하나씩 쌓아가는 일이다.

민주적인 정치적 대의시스템이 재벌이나 검찰(법부)권력을 규제할 수 있어야 한국사회의 근대성이 내용적으로 심화될 수 있다.

그러므로 정치의 강화, 다시 말해서 민주적 정치권력의 강화가 노회찬의 죽음이 남긴 질문에 대한 응답이다.

 

검찰로 대변되는 법률시스템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재벌에 대한 민주적 개혁은, 대의제 정치의 강화로 주어져야 한다.

그걸 시작하게 할 수 있는 입구는 선거제도의 개혁으로 가능할 것이다.

민주적 대의성이 강화된 선거제도는 대의정치 영역에 새로운 노회찬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들이 노회찬이 멈춘 그 자리에서 다시 앞으로 전진하게 하는게, 한국사회의 근대성을 심화 발전 시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