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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경치

남아프리카공화국 - 마크

2004년도에 남아공에 가서 놀았다.
그때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근데, 뭔가 여운이 남았다.
영어도 서툴고, 생소한 흑인들에게 쫄아 있었다.
겨우 백인들 동네만 빙빙 돌다가 돌아왔다.
아프리카에 가서 백인들 사는 모습만 주로 경험했으니, 미진한 여운이 남는게 당연하다.
진짜 아프리카, 백인들에 오염되지 않은 흑인 원주민들 모습이 뇌리에 있었다.
조금 훔쳐봤던 그들 모습이 매혹적인 잔상으로 남았다.

그런 갈증을 이번에 다소 해소했다.

남아공 원주민인 친구 마크에게 감사한다.

마크는 특이한 존재다.
영화배우 뺨치게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고, 세속적으로 선망받는 회계학과 건축을 전공했다.
조건으로만 보면, 잘 나가는 금융회사 직원으로 딱 마춤하다.
그런 일을 금융산업의 중심인 영국에서 그것도 런던에서 몇년이나 군소리 없이 하다가 어느날 짐싸들고 도망 나왔다.
그 이후로 방랑끼를 자신의 제일 소중한 천성으로 즐긴다.
지금까지 돌아다닌 나라가 40여개나 되고, 안해본 일도 없다.
영어선생, 청소부, 일용잡부, 금융업알바 등등 파란만장하다.
채이고 차버린 여자들도 부지기 수다.
런던에서 한 때는 13명의 여자를 동시에 관리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 뻥까지 마라!고 다그쳤다.
엑셀로 관리했는데, 그래도 수 없는 실수는 불가피하더라,고 말하면서 낄낄거렸다.
한국에 들어와서 일주일 만에 애인 티나를 동반한걸 후회한다고 고백했다.
타고난 바람돌이다.

무언가 위반을 저지르려고 항상 안달한다.
대개 그 위반이라는게, 세속에 대한 저항이기는 하지만, 대안적 삶에 대한 탐구여서 그나마 갸륵한데가 있다.
멀쩡하게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음에도, 자신의 정체성을 흑인에 가깝게 생각하는 취향도 독특하다.
아프리카에서 나고 자랐으니 자신은 '아프리카너'라고 생각한다.
백인 '아프리카너'를 곧바로 흑인이라고 규정하는게 무리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흑인정체성에 가깝다.
반유럽과 반미국에 대한 정서가 철저하다.

새로운 것을 금방 몸에 새기는 능력도 뛰어나다.
작년에 채식을 선언했는데, 지금까지 잘 지킨다.
인도에 가서 명상을 배워 오더니, 가끔씩 혼자 산속에 들어가서 명상을 한다.
한번 배운 버릇을 잘 못버리는 내 눈으로 보자면, 마크는 한마디로 신출귀몰하다.
가끔 그게 부럽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