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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경치

나비

 

김영민의 책들에 빠져 지낸지 거의 5년이 되어간다.

김영민이 쓴 텍스트들을 닥치는 대로 이것 저것 찾아 읽었다.

그럼에도 아직도 못 읽은 글들이 허다하다.

그가 이미 세상에 보낸 텍스트들이 만만찮고, 내가 애써 읽어 내는 속도가 그가 써대는 텍스트들을 따라가지 못한다.

처음 '동무론'을 펴 들고, 이건 평생에 걸쳐서 읽어내야 할 숙제라고 생각했었다.

그걸 겨우 겨우 읽어냈다.

처음 그걸 펴들고 느켰던 낮선 외계인의 언어수준을 겨우 돌파했다는 말이다.

모든 독서는 오독이고, 그리고 그런 오독이 새로운 생산적 사유의 실마리가 된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최소한 암호코드를 해석하는 지경이어서는 곤란하다.

겨우 그런 지경을 통과했다.

그걸 기념해 주는 우연적 사건이 발생했다.

김영민 동무론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 '비평의 숲과 동무공동체' 다.

그 책 제일 앞페이지에 빨간색 간지가 있고, 다음 페이지에 책 제목이 인쇄되어 있다.

그 빨간색 간지의 빨간색이 책제목 페이지에 나비모양으로 베어나와 물이 들었다.

책 갈피에 흘린 침이나 커피 같은 물방울이 이런 결과물을 만들었을 것이다.

'나비'는 '군주'와 짝을 이루는 김영민에게 핵심적인 개념장치중의 하나이다.

군주가 현실을 지배하는 '체제'라면. 나비는 그것에 예상할 수 없는 어긋남의 동선을 그리는 아름다운 '탈주선'이다.

쉬운 역사적 비유를 들자면 '정조'가 군주라면 '박지원'은 나비라고 할 수 있다.

동무의 길은 체제라는 군주와 그것에 대한 어긋남이라는 나비의 동선 사이 어딘가 이다.

군주와 나비의 사잇길 이다.

그 길은 군주의 길도 아니고, 나비의 길도 아니다.

군주와 나비 사이의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그는 동무의 길이라고 말한다.

내 책에 나비의 이미지가 우연히 데칼코마니 처럼 물든 것은 내가 아직 나비의 길 밖을 모른다는 어떤 예시 같다.

군주와 나비의 사이길을 아직 모른다는 사실을 무의식이 현실로 표현한 상징처럼 보인다.

무의식의 능동적 자기표현 아니면 우연한 현상을 그렇게 읽어내는 내 자의식의 작동일 것이다.

무엇이 되었든, 체제를 빗겨가는 나비의 길 외부를 알지 못한다는 고백이다.

그 길을 안다면 진즉에 술에 메인 생활은 청산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최소한 군주의 길, 체제의 길에서 빗겨갈 줄은 안다는 말이니 그것만으로도 참 대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