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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클루니 조지클루니가 경찰에 체포됐다는 기사가 포털에 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여서 바로 클릭을 했다. 내용인즉, 클루니가 수단인권 상황 관련 집회에 참석했고, 경찰의 폴리스라인을 침범했다는 문제로 체포되었다. 유치장에 3시간 정도 구금되었다가 100달러의 벌금을 내고 석방되었다. 별 시덥지 않은 기사다. 하지만 나에게는 매우 재미있는 기사다. 우선은 클루니가 내가 지향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속적인 부와 명성을 다 가지고 있음에도, 뻔한 할리우드 스타들과는 달라 보인다. 수단의 인권 상황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이 헌신적인 인권운동가 같은 아우라를 만들어 낸다. 누군가는 가식적이라고 말하겠지만, 나는 그만큼이라도 하는게 대견하다고 말하고 싶다. 나이를 먹으면서 그리고 가진게 점점.. 더보기
옹색한 대답 사회-인문학적 성찰능력이란 무엇일까? '김영민 빠'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몸의 습관에 대한 성찰능력이라고 말해야겠다. 몸의 기울기를 살피고, 몸의 기울기를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태에 도달했다면, 체계에 휘둘리지 않은 자기배려를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런 기준에 비추어 본다면, 나는 내 몸의 기울기는 살필줄 아는 것 같다. 그러나 몸의 기울기를 조정할 능력은 없다. 여전히 몸의 습에 번번히 굴복하는데, 특히 술에 대해서는 할말이 눈꼼만큼도 없다. 내 삶에서 이걸 극복할 날이 오기는 할까? 몸을 다른 관계들에 배치한다면 어떨까? 이런 생각은 아마도 내가 보지 못하는 더 큰 내 습의 하나일까? 더보기
자기배려 신자유주의 시대에 자기배려는 무슨 의미일까? 신자유주의에 대한 무비판적 투항일까? 자기를 배려한다는게 이기적 욕심에 대한 복종일까? 거꾸로 신자유주의가 요구하는 욕망의 코드를 벗어나는 자기배려는 없을까? 신자유주의 시대의 자기배려는 코드적 욕망에서 자유로운 삶을 의미한다. 세상이 아니고 자신의 내면으로 부터 기원하는 욕망에 충실한 삶을 의미한다. 그런데 외부가 또는 세상이 주입한 욕망이 아니고 자신으로부터 기원하는 욕망이란게 뭔가? 궁극적으로 사회적 또는 관계적 존재인 인간에게 그런게 가능한가? 다른 방법이 없다. 사회-인문학적 성찰능력이 신자유주의적 코드로부터 자유로운 자기배려를 가능하게 한다. 쫌 심각한 질문에 대한 너무.. 더보기
닥치고 김어준 보름여간 떠났다가 돌아오니 김어준에 대한 이런저런 말들이 무성하다. 처음에는 시차적응 처럼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자세히 쳐다봐서 새롭게 적응해야할 하나의 과제처럼 보였다. 돌아가는 뽄세가 비판이 대종이다. 내 감수성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김어준에 대한 비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품위가 없다'는 말이다. 애정어린 몇몇 진보진영의 비판들도 대부분 '한국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매체가 되었으니 이제는 그에 합당한 품위를 갖추라'는 말이다. 근데 대체 한 사회에서 '품위'라는게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 그건 주류적 아우라를 가리키는 말이다. 기득권적 가치와 행동규범이 품위라는 말이다. 이건 김.. 더보기
빌린책, 산책, 버린책 - 장정일의 독서일기 장정일의 가장 생산적인 글 쓰기는 '독서일기'인 것 같다. 과문해서 잘 모르지만, 아마도 장정일이 '독서일기'라는 글 쓰기 양식을 이렇게 재미있고 풍성하게 만든 최초의 글쟁이가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다시 김영민을 빌려서 장정일의 글 쓰기를 말하자면 이렇다. 장정일은 '독서일기'라는 글 쓰기 스타일을 만들었다. 이런 글 쓰기 스타일은 문학적으로 고급스런 글 쓰기 스타일로 간주되는 '소설'이나 '시'에 견주면 어줍잖은 글 쓰기 스타일이다. 그래서 이런 글 쓰기는 세속적으로 말하자면 쪽팔리는 글 쓰기다. 최초의 '독서일기'라는 글 쓰기 스타일 생산자는 이런 쪽팔림을 댓가로 지불하지 않을 수 없다. 엄격하고 고급스런 글 쓰기 양식 '시 또는 소설', 그것보다 저급한 글쓰기 '기타 잡문'으로 위계화된 현실에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