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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대기

닥치고 김어준

< 시간이 쫌 지나 뒷 북치는 느낌이 있다. 그러나 그냥 담아 두기에는 땁땁하다. 그래서 뒷 북이라도 쳐야겠다. >

보름여간 떠났다가 돌아오니 김어준에 대한 이런저런 말들이 무성하다.
처음에는 시차적응 처럼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자세히 쳐다봐서 새롭게 적응해야할 하나의 과제처럼 보였다.
돌아가는 뽄세가 비판이 대종이다.
내 감수성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김어준에 대한 비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품위가 없다'는 말이다.
애정어린 몇몇 진보진영의 비판들도 대부분 '한국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매체가 되었으니 이제는 그에 합당한 품위를 갖추라'는 말이다.

근데 대체 한 사회에서 '품위'라는게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
그건 주류적 아우라를 가리키는 말이다.
기득권적 가치와 행동규범이 품위라는 말이다.
이건 김어준에게 투항하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이제 갖출만큼 갖추었으니, 그리고 충분히 니 하고싶을 만큼 했으니 고만하고 우리진영으로 투항해 오라는 협박이다.
이러면 김어준에게 남는건 무엇일까?
아무것도 없다.
깔깔거리고 조롱하고 비웃으면서 현실을 지분거렸던 모든 힘을 상실하고 만다.

생각해 보라 김어준이 근엄하게 갑빠에 힘을 주고 뭐라고 주절거린다.
그러면 이게 김어준인가?
아마 세상에 흔해 빠진 또 다른 꼰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된다.
그래서 김어준에게 품위를 유지하라고 주문하는건 비판이 아니라 음흉한 협박이다.
김어준이라는 존재 그 자체가 주는 낮설면서도 위협적인 다른한편으로는 엄청난 대중친화적인 매력을 제거하려는 간교한 계략이다.

나는 어떤 비판이든 내부자의 시선을 확보하고 있어야 비판의 최소한의 정당성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그런점에서 품위를 기준으로 김어준을 비판하는건 내부자의 시선 또는 김어준에 대한 눈꼼만큼의 이해나 애정도 없는 조-중-동류의 저열한 가치관에 오염된 거들떠 볼 필요도 없는 교언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지나치게 논리적 정합성에만 주목한 편협한 시각일 것이다.
논리적 정합성은 단지 우리의 습관에 불과하다는건 이제 낡은 진리다.

또 다른 비판은 페미니즘 진영에서 나온다.
김어준이 실어 나르는 메세지가 지나치게 남성 중심적이라는 비판이다.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한다는 비판이다.

사회적 약자로서 여성의 입장이라는 스탠스에서 나오는 비판이니 무시하기 힘들다.
우선 당장은 약자의 시선이라는 정당성의 배경을 갖추고 있으니 움찔해진다.
무조건 일단은 '잘 못 했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봐라.
이 세상에 남녀로 성별화된 스테레오 타잎의 성적 가치관이나 취향 또는 언어로 부터 자유로운 인간이 가능하기나 한가?
그런 한계를 극복한 사람도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득시글거리고,그렇지 못함에도 매력적일 수 있는게 세상이다.
그걸 극복해 달라고 요구할 수는 있지만 그렇지 못하다고 내다 버릴수는 없는게 세상이다.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이런저런 비판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넘길 일이다.
그 이상은 지나침이다.

그래서 일부 페미니즘 진영에서 나온 성명은 정당하지만 적절하지 않다.
나는 김어준의 마초성 넘치는 남성성이 만들어 내는 생산성에 차라리 주목하자고 말하고 싶다.
김어준의 마초성이 없었다면 아직도 세상은 뻔한 MBC나 KBS가 제공하는 정보에서 자유롭지 못할것이다.
김어준이 만들어 내는 현실비판능력의 대부분은 그의 마초적 캐릭터에서 나온다.
그걸 그것대로 따로 분별해서 칭찬하고 격려하는 포용이 오히려 필요한 지혜다.
정색하고 김어준의 마초성을 비판하는건 너무 옹졸하다.

부연해서 김어준의 넘치는 마초성을 이제야 알았다면 그건 무지의 소치에 다름 아니다.
한 개인의 정체성은 그의 말 한마디 눈빛하나 옷 매무새한자락에도 다 들어있다.
김어준은 자신의 마초적 남성성을 한 순간도 풀풀 품어내지 않은 순간이 없다.
아주 오랜 옛날 딴지일보 시절 부터 그런 마초성은 차고 넘쳤다.
이제와서 그걸 시비거는게 뜬금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