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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적 글 쓰기 지남 봄 자전거로 고천암호 주변길을 배회하다가 딸기 무데기를 만나곤 했다. 길을 멈추고 무데기를 들추면 금새 한웅큼 씩의 딸기가 손에 잡혔다. 그걸 한잎에 털어 넣고 우적 베어물면, 그 안에 상큼한봄이 아득한추억이 그리고 달콤한햇살이 목울대를 타고 넘어갔다.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가 모퉁이에 운동장이 하나 있다. 해남에 머무는 날, 해질녁 집에 오는 길에 이곳에서 운동을 한다. 여기는 평소에도 고즈넉 하고, 저녁 시간이면 적막하다. 텅빈 운동장에서 혼자 노는게 무슨 재미가 있으랴 싶겠지만, 그것도 사람의 일이라 익숙해지면 거르기 힘들다. 거르고 싶지 않을 만큼 재미있다. 해가 쨍쨍한 여름 뒤 끝에 흠뻑 땀을 흘리고, 운동장 귀퉁이로 해지는 모습.. 더보기
도덕과 윤리 도덕과 윤리 자연과학에서는 어떤 특정한 용어에 대한 개념정의가 명확하다. 이에 비해서 사회과학-인문학 일반에서는 어떤 특정한 용어에 대한 개념정의가 천차만별이다. 사회-인문의 용어가 이렇게 혼란스러운 것은 세상의 본질에 대한 반영일 것이다. 이런 혼란이 오죽 성가셨으면, 비트겐슈타인이 모든 철학용어를 수학적 언어로 치환해보자는 망상을 꿈꾸었을까? 그럼에도 어떤 특정한 용어에 대한 상식적 수준에서의 개념정의가 존재하는데, 그건 사회적 힘들에 의해서.. 더보기
발 - 나르시즘 자전거 여행을 끝내고, 제일 고생한 검게 그을린 내 신체-'발'을 포스팅하고 싶었다. 게을러서 차일 피일 미루다가, 햇빛에 그을린 피부가 점점 희미해져 더 이상 미룰 수가 없게 되었다. 이런 욕망은, 아직 죽지 않았다고, 생생하게 살아있다고, 수컷의 냄새를 폴폴 풍기고 싶은 마초적 나르시즘의 소산일 것이다. 찬찬히 살펴보면, 이건 블로그가 타자와의 소통 매체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탐닉의 매체라는 증거에 다름 아니다. 근대가 발명한 정보기술적 소통매체가 실제로는 자기애로 함몰하는 나르시즘의 거울로 작동한다,는 주장은 썸뜩한 면이 있는 진실이다. 여럿이 모여, 대화를 따 돌리고, 자기만의 핸드폰에 빠져있는 풍경을 떠올려 보라. 현대사회가 나르시즘의 거울 사회라는 주장에 무어라고 변명할 수 있을까? 근.. 더보기
바보가 쓰는 편지 누구라도 그렇겠지만 일하는 직장의 체계에 맞춰 산다는게 쉬운일이 아니다. 자기만의 고유한 느낌-판단-가치관들을 조직의 그것들에 일치시키는 일은 항상 마찰열 비슷한 통증을 일으킨다. 오랜기간 동안 한 직종에 머물면 그런 마찰열이 수반하는 통증이 사라지겠지만, 반드시 그런것 만도 아니다. 올해 학생과 업무를 맡으면서, 좀더 학생친화적인 분위기 조성을 생각해 봤다. 그런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먼저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깐다는 생각으로, 무언가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는 신호로 아니면 니들과 똑 같은 콤플렉스 덩어리 인간에 불과하다는 아부-위로의 뜻으로 아래의 편지를 썼다. 이걸 학생들에게 편지글의 형식으로 전달하고자 했다. 사전에 동료교사들이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너무 무리한 면이 있다는 의견을 내 놓았다.. 더보기
촛불시위 : 면피성 참여 방학 내내 잔차질로 한량짓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잔차질을 끝내고 뉴스를 검색해 보니 촛불이 활활 타올랐다. 얼굴이 뜨뜻해지면서 좀 쪽 팔렸다. 내가 누리는 이 알량한 민주적 권리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와 희생에 터를 두고 있는지 잘 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촛불집회에 참가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몸이 게을러서 차일 피일 미루다가 어제야 겨우 면피성으로 서울 시청앞 광장에 갔다 왔다. 사람들 참 많았다. 누군들 자기 시간을 버릇이 된 익숙한 일상에 묻고 싶은 개인적 욕망이 없으랴. 그런 개인적 욕망을 접고, 시대착오적으로 민주적 절차마저 뭉게버린 현실을 바로잡자고 나선 모든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8.15일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일까? 한때는 근대성의 완성 - 통일된 한반도라는 근대적 민족국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