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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 : 타자성 김영민에 따르면 "신을 보는(아는) 자는 죽는다"는 말이 있다. 그는 이 구절을 타자성을 살피고 헤아리는 공부의 원형적 체험으로 해석한다. 건널 수 없는 간극을 넘어 타자의 지평에 이른다는 말은 결국 내 정체성이 죽어야만 가능하다. 없는 간극을 넘었으니 살아서는 그게 불가능하다. 타자의 지평에 다가간다는 말은 나를 죽여서만이 가능하다. 그러니 신을 보는(아는) 자는 죽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고 반복해서 두려워할 일이다. '모른다 '고 극진하게 공경해서, 타자의 지평으로 틈입하고, 넘어간다. 결국 죽기는 매 한가진데, 그게 가능하기는 할까? 나는 대체적으로 안다고 말하고, 대충 내 아이덴티티로 흡수해서 넘어가 버린다. 그러면 내가 남는데, 그.. 더보기
변명 요즘 일이 쫌 있다. 연말로 갈 수록 돌보아야 할 일이 늘어난다. 내가 자처한 일이니 그것에 대한 불만은 없다. 오히려, 일을 통해서 이런저런 다양한 만남의 기회가 있었고, 관념에 치우친 내 자신을 교정할 수도 있었다. 몸을 끄-을-고 세상에 나가봐야 진짜 현실이 보인다. 책상에 대가리 처박고 아무리 이러니 저러니 주저리 주저리 씨부러 봐야 결국 그게 관념의 성채을 벗어날 수는 없다. 관념의 성채를 벗어나서 현실을 티끌 만큼이라도 미동시키는 건 결국 몸이 세상으로 나옴으로 시작한다. 올해는 그래서 세상에 나가는 버릇을 많이 만들었다. 근데 그게 지나쳤는지 어쨌는지 책읽고 영화보는 버릇이 겁나게 사라지는 걸 느낀다. 나이 든 완고한 보수적 아저씨가 되어가는 걸 피할 수가 없다. 책 읽기에도 영화 보기에도 .. 더보기
외딴방(신경숙) 신경숙의 외딴방을 빌려서 '글 쓰기'란 행위를 정의한다면. '자기고백' '과거와의 화해' '과거의 상처 치유하기' '과거를 정리하고 새롭게 살아가기' 같은 말들로 정리할 수 있다. 글을 쓴다는게 상처의 치유과정인 것은 분명하다. 쓰면서 과거의 경험들을 객관화하고, 그걸 토대로 과거를 정리해서 과거속에 단단하게 매장한다. 과거가 현실속으로 무분별하게 분출하여, 현재를 지배하지 못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글 쓰기는 일종의 궂거리 장례의식이다. 죽은 자의 한을 풀어 그를 편안히 봉인하고, 산 자는 죽은 자로 부터 풀려나온다. 죽은 자와 산자의 이별여행 같은 것이, 외딴방이다. 특별히 재미있었던 것은 신경숙의 섬세한 마음 씀씀이다. 오빠, 외사촌, 공장친구들에 대한 애뜻함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신경숙이 여성 .. 더보기
황당한 아침 월요일 아침은 늘 바쁜 시간이다. 이것 저것 하다보면 쫌 정신이 없다. 황망중에 누가 나를 찾는다고 저편에서 말한다. 어째 예감이 안좋다. 사람의 직관이란 오묘한데가 있다. 나가 보니, 봉두난발에 수염도 덥수룩하고, 연신 머리를 앞 뒤로 끄덕거리는, 틱 증상이 역력한 중년의 사내가 있다. 뭔 일 인지, 이름이 누군지를 물었다. 이름은 버린지 오래고, 그 이유는 외조부 때문이라고 뭐라 주절거리는데 도무지 말이 안된다. 참 한심한 사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막 돌려보내려고 하는데, 옛날에 서로의 피를 빨면서 겨우겨우 하루 하루를 지탱해주던 친구들의 이름을 죽 늘어놓는다. 비가 주적주적 내리는 아침에 갑자기 그 사내가 안타까웠다. 어떤 인연인지는 모르나. 나를 아는건 분명하다. 요구하는게 무언지 똑바로 말하라.. 더보기
대책없이 해피엔딩 글이 재미있고 편해서 날마다 조금씩 읽었다. 소설가 김연수와 김중혁이 번갈아 가면서 쓴 영화평이다. 그러니 번갈아 가면서 서로를 갈구는 설정이 불가피하다. 근데 이런 서로에 대한 비아냥이 너무너무 재기발랄하다. 네게도 이런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문득문득 정색하고 들이데는 현실비판의 칼이 날카롭다. 그럼에도 끝까지 유머를 날린다. 그런 유머는 김중혁과 김연수가 자신들의 찌질함을 가식없이 드러내면서 나온다. 네게도 이런식으로 어깨에 힘 빼고 유머를 즐길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좋겠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