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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먹기 또는 놀기

호모바이크스 4 : 남해안

2007. 07. 14

자전거 타고 놀기

15. 김해-진영-창원-마산-함안

애초에 상상했던 2번 국도가 아닌 길을 달리자니 왠지 더 힘든 것 같고, 도로 환경도 안 좋은 것 같았다.
수원에서 샀던 전국 상세지도도 잃어버렸다.
할 수 없이 가는 곳마다 길을 물어 갈 수 밖에 없었다.
김해-진영-창원-마산-진주로 진행하면 된단다.
경상남도 내륙 깊숙이 가로지르는 코스였다.

여행을 시작한 이래로 날씨가 최고로 무더웠다.
진영에 도착해서 경남은행 바로 옆 가로수 그늘에서 한참을 쉬었다.
경남은행 정수기 물을 두 번이나 물병에 채워 담아 와서 갈증을 풀었다.
pc방이 보이면 낮 더위를 피할 생각이었는데 그 마저도 보이지 않았다.


낮선 외국인 두명이 내 옆자리에 와서 앉았다.
부자지간처럼 보였다.
한사람은 나처럼 중년의 냄새가 났고, 한 사람은 20대의 풋풋함이 보였다.
호기심이 일었다.


‘어디서 왔냐’

‘우즈베키스탄. 부산에서 일하는데 일요일이라 놀러 나왔다.’

‘니 사장 돈 잘 주냐’

‘잘 준다’

‘얼마나 더 있을거냐’

‘1년 반 있었는데 3년 반 더 일해서 5년 채울거다’

‘그후에는 돌아갈거냐’

‘돌아간다’

‘한국에서 좋은 일 만 있기 바란다’


순박하고 선한 눈빛을 가진 그들이 진심으로 한국에서 좋은 일 만 있기를 바란다.
외국인 노동자를 작취하는 악덕 기업주를 만나지 않기를, 그리고 제삼세계 노동자들을 천시하는 한국인들에게 상처 받는 일 없었으면 좋겠다.

잘 있으라고 말하고 폭염 속으로 다시 나왔다.
얼마 안가 체력이 바닥나는 걸 느켰다.
어제 너무 무리한 것 같다.
힘들게 창원을 지나 마산에 도착했다.
창원과 마산은 고가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쓸데없는 시 구분처럼 보였다.
마산은 생각했던 것 보다 큰 도시였다.
마산시내 중심가 시장 쪽 한구석에 있는 중국집에서 늦은 점심으로 콩물국수를 시켜먹었다.
주인에게 진주까지 얼마나 걸리냐고 물어 보니 굉장히 먼거리란다.

마산에 머무를까 생각하다가 조금 더 가보기로 했다.
마산에서 함안을 거쳐 진주 쪽 방향을 사람들이 추천했다.


마산을 벗어나니 도로 폭이 좁아지면서 체력이 쭉 쭉 내려가는게 느켜졌다.
다행스럽게 마산에서 함안 까지는 20km도 안되는 거리였다.
함안에 여장을 풀었다. 모텔 3만원


16. 함안-진주-하동

전형적인 산지 내륙지형을 가로질러 진주에 들어왔다.
진주에 들오니 시원하게 남강이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것이 운치 있게 보였다.
내가 달리던 도로와 남강의 강둑이 교차하는 비교적 높은 언덕 꼭대기 같은 지점에 시원한 숲이 있었다.
땀을 식히기 위해 자전거를 세우고 보니, 그 숲속에 산림연구소라는 곳이 있었다.
계단을 따라 좀더 올라가니 숲에서 불어 나오는 바람이 정말로 상쾌했다.
주변을 살펴보니 아무도 없는 후미진 장소인거 같아, 바지 앞자락을 들추고 시원하게 숲을 향해 오줌을 갈겼다.
막 뒤돌아 나오려는데 바로 머리 위에 무인 카메라가 있었다.
다 찍혔을 거라고 생각하니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조그만 숲속 길모퉁이 하나 조차도 감시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강박적 의심 환자가 우리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을하며 얼른 그 자리를 떴다.

진주는 강과 숲이 잘 어울린 아름다운 도시였다.

진주 중심가 식당에서 처음으로 백반을 시켜 먹으면서 생각했다.
인간의 편협한 편견에 대해서.
전라도를 벗어난 이래로 백반을 시켜 먹지 않았다.
전라도 아닌 곳에서의 백반이라는 음식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게 뻔한 편견이라는 것을 이때 알았다.
나물 중심으로 이루어진 음식이 푸짐하고 정갈하고 맛있었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하동으로 향했다.
진주에서 하동으로 진행하면서 처음에 마음에 두었던 2번 국도로 비로소 올라설 수 있었다.
2번 국도를 달린다고 생각하니 길을 잘못 들어서 쓸데없이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서 비로소 편안한 상태를 회복했다.
거의 해질 무렵에 하동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동 읍내 파출소에 자전거를 세워 두고, 여행 중인 다른 패거리의 차에 합류해서 지리산 계곡을 찾아 갔다.
지리산 계곡에 도심속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빈 숙박 업소를 찾을 수 가 없었다.
할 수 없이 구례읍내로 나와서 빈방을 찾을 수 있었다.
6만원(완전바가지).
방을 잡고, 모처럼 만에 걸고 푸짐하고 잘 읽은 전라도 김치를 곁들인 삼겹살 구이에 소주를 진탕 먹고, 노래방 가서 까무라칠 때까지 미친놈처럼 실컷 놀았다.


17. 하동-광양-순천

어제 너무 심하게 놀았는지 다리근육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
겨우겨우 광양을 거쳐서 순천에 도착했다.
오늘은 광양 직전에 한번 순천 직전에 한번 두 번이나 펑크를 수리해야 했다.
자전거의 삐걱거리는 소리도 유난하게 느켜졌고, 자전거의 굴림이나 기언변속도 부드럽지 못했다.
15만원 짜리자전거가 지금까지 버티어 준 것 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좋은 자전거에 대한 욕심이 더욱 간절했다.
다음 번에는 꼭 돈을 모아서 좋은 자전거를 끌고 다녀야지 라고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다.

순천에 도착했다.
오늘이 이 여행의 마지막 밤이다.
내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해남까지 완주를 끝내고 집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자고 결심했다.


18. 순천-벌교-보성-장흥-강진

해남까지 대략 110km의 거리이다. 포항-부산-김해 코스보다 더 짧다.
오늘이 대한민국 국토를 한 바퀴 크게 돌아 자전거 여행을 마치는 완주의 날이다.
아침 일찍 출발했다. 기세 좋게 내 달렸다.
얼마안가 태풍 뒤끝에 불어오는 맞바람이 말 그대로 내 주행에 맞서 있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왠만한 오르막길 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벌교에 도착하니 벌써 체력이 다 소진된 것처럼 피곤했다.
게다가 이도로는 워낙 익숙한 도로라 주변경관이 주는 감흥도 없었다.
그냥 달려서 목적지 까지 도착해야할 목표로 내 앞에 던져진 길처럼 느껴졌다.
내리막 길에서도 도저히 속도를 낼 수 없었다.
바람의 저항이 브레이크처럼 진행을 가로 막았다.
보성에 도착하니 거의 탈진 상태가 되었다.
국도 변에 있는 보성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고, 한바가지도 더될 만큼의 물을 먹고 한참을 쉬었다.
그나마 보성 휴게소의 시원한 경치가 휴식을 취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보성-장흥 구간에서는 터널을 3개나 통과해야 했다.
고역이었지만 터널을 피하기 위해서 다른 길로 우회하자니 너무 주행거리가 늘어나고, 시간도 많이 낭비할 것 같아 그대로 터널을 통과하기로 했다.
다행히 터널을 통과하는 차량이 많지 않고, 터널이 아래로 경사진 형태라서 차선 끝으로 붙어서 맹렬한 속도로 터널들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장흥에서 강진 구간은 맞바람이 더욱 세졌다.
비구름을 잔뜩 몰고 오는 맞바람이었다.
이번 자전거 여행은 강진에서 끝마쳐야 할 것 같았다.
지난번 해남에서 강진까지 연습 삼아 한번 주행한 적이 있으니, 강진 까지 주행하면 전국 일주를 완성하는 것이라는 변명 꺼리를 보성 지나면서 마음속에 이미 준비해 놓고 있었다.

장흥에서 강진 거리가 그렇게 멀게 느껴졌다.
차로 다닐 때는 5분도 안되는 거리였는데, 맞바람을 받으며 가자니 한바퀴 한바퀴가 내 근육을 부풀어 오르게 하는 걸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국도에서 강진 읍내로 진입하는 교차로를 내려와서 길가에 자전거를 세우고 만세! 만세! 만세! 세 번 외쳤다.
어둑해진 길가 밭에서 일하던 아주머니가 왠 미친놈 쳐다보듯이 넘겨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