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07. 09
자전거 타고 놀기
11. 강릉-정동진-옥계-동해-삼척-원덕
동해안으로 나오니 길이 훨씬 편안해지고 마음도 평온해졌다.
강원도 산골에 묻혀있을 때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려는 욕망과,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달래느라 힘들었었다.
강릉을 돌아나오면서 이 여행을 끝까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반환점을 돈 마라톤 선수의 마음이랄까, 아니면 강원도 그 험준한 지형을 극복했는데 앞으로 그런 힘든 코스가 더 없겠지 라는 위안 같은 것이 생겼다.
설사 그런 지형이 또 있다 할지라도 얼마든지 돌파해 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함께 따라왔다.
마음속에 커다란 자신감이 생기니, 동해안의 아름다운 경치가 눈과 몸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느낌이었다.
안인진에서 부터 시작된 해변을 쭉 따라가는 길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몇년전 아프리카 대륙 케이프타운 근처 해변을 따라가면서 느켰던 그런 아름다움에 대한 감동 같은 것들이 있었다.
해외여행을 하면서 마음 한구석에 죄책감 같은 것들이 있었다.
그건 나를 낳아주고 키워준 내 땅의 공기와 숲과 바다를 제켜놓고 남의 땅에 와서 돈 낭비하고 시간낭비한다는 생각이었다.
대한민국의 교육과 매스미디어가 만들어 놓은 애국주의적 광기가 내 몸에 새겨놓은 정서에 사로잡히곤 했었다.
그런데 내 두다리힘으로 자전거의 한바퀴 한바퀴를 굴려서 한반도 전체를 크게 밟아 봤다는 느낌이 그런 정서로 부터 나를 자유롭게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여행을 마치고 든 제일 큰 생각은 한국에서 해방되었다는 느낌이었다.
정동진을 지나면서 길은 내륙으로 들어가면서 강원도의 전형적인 고갯길과 내리막길이 반복 되었다.
차량통행이 적어서 정말로 한적하게 맘껏 변하는 경치를 즐기면서 자유롭게 달릴 수 있었다.
옥계를 지나면서 다시 해변도로로 나왔다.
조산, 망상, -----, 끝 없이 해수욕장들을 지나쳤다.
다리 근육에 아무런 저항감 없이 자유로운 속도감을 만끽하며 해안도로를 시원하게 내 달렸다.
근덕 해수욕장 근처에서는 길을 잘못들어 길이 막힌 어느 외로운 항구로 잘못 들어섰다.
다시 돌아나왔다.
길을 다시 찾아 나온 안도감에 길거리 수퍼에서 500원 짜리 하드를 사서 맛있게 쪽쪽 빨아먹고 있는데, 내 자전거 옆에 근사하게 생긴 자전거가 서 있었다.
호기심에 자전거를 유심히 살펴 보고 있는데, 자전거 주인이 나타났다.
나보다 한참이나 나이가 먹어 보이는 제대로 된 바이커 복장을 갖춘 노인이었다.
'자전거 좀 타봐도 돼요'
'그러세요'
'기막히게 좋네요. 브레이크도 잘 잡히고, 구르는 감각도 부척 부드럽고 ---, 비싸지요?'
'그닦 좋은거 아녜요, 300만원 짜린데, 훨씬 더 비싸고 좋은 자전거 많아요'
'오늘 어디까지 가나요 '
'울진 까지는 갈려고 하는데, 짐 때문에 자전거 속도가 안나서 그럴지 모르겠네요, 시속 25km는 나와야하는데, 지금까지 겨우 20km도 못되는 속도로 온거 같아요,'
'코스가 어떻게 되는데요'
'강릉에서 부산'
15만원짜리 브레이크도 잘 작동이 안되고, 기어 변속도 덜컥거리면서 애를 태우고, 림도 완전한 원형을 상실해서 매 바뀌마다 한번씩 브레이크에 내 다리의 근육힘을 빼았기는 감각을 발생시키고, 반바지 반팔 일상복에 샌들을 신은 내 모습이 갑자기 조금 우스꽝스럽게 느켜졌다.
그래도 내가 아마 더 잘달릴거야라는 오기 비슷한 생각이 들면서, '가시지요'라고 말하고, 내가 냉큼 앞서서 출발했다.
그러나 20분도 못달리고 나는 이 노인에게 추월을 허용할 수 밖에 없었다.
자기보다 젊은 사람을 추월해서 미안하다는 몸짓을 애써 숨기는 그가 더 미웠다.
그날 내내 달리면서 좀더 좋은 자전거에 대한 욕망이 사그러들지 않았다.
자전거에 대한 불만이 생기니 그전의 한가하고 여유로운 맘을 잃었다.
빨리 자전거 여행을 끝 마치고 싶다는 맘이 다시 들었다.
그래서 무리하게 달려서 애초 목적지 였던 삼척을 한참이나 더 지나 원덕까지 달렸다.
원덕에는 찜질방이 없단다.
이왕 모텔에서 잘 거면 깨끗한 곳에서 자고 싶어서 좀 그럴듯한 모텔을 가보니, 오만원 주란다.
피서철이라 그 이하로는 방을 내 줄 수 없단다.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구시렁거리며 지나치는 경찰차량을 붙잡고 원덕에서 가장 싼 숙박 업소를 가르쳐 달라고 말했다.
터미널 근처로 가란다.
터미널 근처에서 지나가는 아저씨에게 잘곳을 물어보니, 자기는 시외버스운전기산데 터미널 바로 앞 기사들 숙소 여관을 가보란다.
그곳에서 기사님 소개로 왔다고 말하고 이만원에 값을 타결했다.
여관 주인이 엄청 생각해주었다고 호들갑스럽게 굴었다.
12. 원덕-울진-평해
아침에 터미널 앞 식당에서 밥을 먹고 다시 자전거를 보니, 어제의 자전거에 대한 불만이 많이 사라진걸 느켰다.
다시 달린다는 것에 대한 생각이, 여기까지 나를 싫고 온 자전거에 대한 고마음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울진에 가까워지면서 하늘이 시커멓게 변하는가 싶더니, 금방 장대비를 쏟아붙기 시작했다.
이번 여행중 위험한 상황은 늘 빗속을 주행하는 동안에 발생했다.
비가 오면 적당한 곳에서 비를 피해야하고, 절대로 1시간 이상 쉬지않고 내리는 비는 없다는 것을 몸으로 알았다.
지속적으로 내리는 비 때문에 자전거 여행을 통째로 중단해야할 일은 절대로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다행이 바로 코 앞에 주유소를 찾아서 들어갈 수 있었다.
주유소 처마 밑에 있는데 주인이 안으로 들어오란다.
커피를 타주면서 이런 저런 묻지도 않은 말들을 쏟아 놓으면서 호의즐 베풀어 주었다.
같은 연배의 남자들이라 대화가 금방 정치로 넘어갔다.
나 민주노동당 당원이다.
앞으로 민주노동당 지지해라.
억지스럽게 내 정치적 지향을 강요했다.
씨알도 안먹히는 말인줄 뻔히 알기는 했지만, 그에게 언젠가 언젠가 내말이 씨알이 될 날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빗 줄기가 약해질 기미가 보이지않았다.
그렇다고 그 주유소 사무실에서 죽치고 기다리자니 그게 더 힘들것 같았다.
빗줄기 속을 헤집고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자전거 여행 중에 아무리 편안하고 좋은 나무그늘이나 휴식처를 만나도 30분 이상을 쉴 수 없다.
조금만 쉬면 금방 몸이 자전거를 욕망하게된다.
비를 맞으며 울진 중심가에 도착했다.
점심 시간이 훨씬 지나있었다.
중심가 바로 근처에 재래시장이 있었다.
재래시장 바로 안쪽 노변에 국수집이 있었다.
작은 재래시장을 구경하고 국수 한그릇 말아달라고 주문 했다.
언뜻 보기에도 엄청 많은 양의 국수를 한그릇 내어 놓았다.
국수집 아줌마의 마음 씀씀이가 느켜졌다.
맛있게 맞바람에 게눈 감추듯 먹고 값을 물으니, 1500원 이란다.
좀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
1500원이면 누군가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그리고 누군가를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배려해 줄 수 있다는 생각을 미처해보지 않았었다.
한달 술값으로 백만원 가까이 쓰면서 살아온 그 동안의 기름진 생활이 나를 돈에 대한 둔감한 감수성만 엄청 키워놓았던 걸 들여다보게 했다.
돈과 관련 없이도 때때로 세상은 다양하고 따뜻할 수 있다는걸 예전에는 알지 못했다.
생활공간을 농촌으로 옮기고 나서 도시생활에 길들여졌던 불필요한 낭비적 생활양식이 결코 인간을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게 되었다.
그래도 이런 경험에 부딪히면 그런 감각이 더욱 새로워진다.
1500원을 치르고, 자전거 까지 보아달라고 맞겨 놓고, pc방으로 놀러갔다.
한참 놀고 나면 날씨가 걷히리라고 기대하고, 엎어진 김에 쉬었다 가자고 생각했다.
PC방에서 잠깐 앉아 있던것 같았는데 나오면서 보니 3시간 가까이 있었다.
아마 의자에서 노곤한 낮잠에 골아 떨어져 있던것 같았다.
다행이 빗줄기가 걷히고 하늘이 맑게 개어 있었다.
다시 자전거에 몸을 싫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많이 달리 수 없었다.
평해라는 곳에 8시가 다 되어 도착했다.
원덕 비슷한 소읍이었다.
읍내 중심가에 여인숙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큰길에서 조금 안쪽에 치우쳐 조그만 숲이 있는 언덕 아래에 있어서 조용하고 시원했다.
단번에 맘에 들었다.
오늘은 잘 곳을 찾는데 에너지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니 더욱 기분이 좋았다.
15000에 값을 흥정하고 샤워하고 밖으로 나왔다.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동네 사람들이 길모퉁이에 나와 앉아 놀고 있었다.
조그만 소읍의 다정한 여름 풍경이 좋았다.
13. 평해-영덕(고래불-강구 해안도로)-포항(화진-칠포 해안도로)
해안선을 따라 아름답게 펼쳐진 도로는 오늘도 계속되었다.
평탄한 코스에서는 속도감을 만끽하면서 내달릴 수 있었다.
고래불-대진-영해-축산-오보리-강구 방향으로 영덕을 우회하는 해안선 도로도 동해안의 절경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국적인 강구항의 풍경은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날씨가 찌는 듯이 더웠다.
영해 해수욕장 노변에서 파는 시원하고 달디 단 팥빙수의 맛이 기가 막혔다.
나는 팥빙수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인줄 미처 알지 못했다.
자전거 바퀴가 굴러가는 곳에서 마주친 팥빙수 가게들을 지나치기 힘들었다.
이번 여행 중 팥빙수와 500원짜리 얼음과자는 필요한 에너지와 수분과 열량을 그때 그때 보충해 주는 중요한 보급품이었다.
500원짜리 얼음과자는 거의 모든 휴식자리를 동반해준 소중한 친구 같은 역할을 했다.
살을 태우는 듯한 태양을 막아주는 그늘 아래서 온몸을 땀에 축축히 적신채로 먹는 얼음과자는 이 세상의 어느 음식과도 비교할 수 없는 달콤함과 시원함을 준다.
처음 한입 베어 물었을 때의 그 시원함과, 좀 물렁해진 마지막 입에 전해져 오는 달디 단 맛은 종아리와 장딴지 근육을 삽시간에 탱탱하게 물이 오르도록 만드는 힘이 있었다.
강구에서 7번 4차선 국도로 잠깐 올라왔다.
우리나라 어느 도로든 4차선 국도 주변은 항상 음식점들이 넘쳐 난다.
이곳 도로 주변에도 음식점들로 넘쳐 났다.
뜰에 앵두나무 비슷한 활엽수가 빼곡히 들어선 중국집에서 짜장면으로 배를 채우고, 월포 쪽 해안도로로 다시 내려왔다.
월포-칠포-포항에 이르는 해안도로는 좁은 왕복 2차선 구도로이고, 갓길도 거의 없었다.
게다가 오르막 내리막이 아주 심한 도로 였다.
주변 경관은 정동진 근처처럼 높은 절벽을 이루는 해안선이 시원하게 동해쪽으로 시선을 트여주어서 아름다웠지만 자전거 주행으로는 지금까지 지나온 어느 코스 못지않게 험악했다.
특히 포항에 접근하면서 거의 갓길이 없는 상태에서 덤프트럭이 양방향에서 교행하는 지점 길가에 내 자전거 주행 공간을 확보해야하는 상황에 부딪히곤 했다.
좁디 좁은 곡선 도로에서 양차선을 덤프트럭이 채우고 그 빈틈을 확보해서 내 자전거 주행 공간을 확보하는 일은 덤프트럭 운전수에게 위험한 곡예운전을 하든, 아니면 나를 치고 가든 알아서 하라고 주장하는 거와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아찔한 순간들을 몇번이나 경험하고, 그런 위험한 상황에서 내 자전거 주행 공간을 고집한다는 것이 부질없는 어리석은 짓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아예 뒤에서 덤프트럭이 접근하면 반대 차선에 차가 있든 없든 무조건 덤프트럭이 최대한 편하게 지나가도록 공간을 터 주었다.
이 더운날 땀흘려 일하는 그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라는 생각도 들었고, 다른 한편으로 내 안전을 확보하는 길은 그것 밖에 없었다.
이렇게 하자 짜증나던 덤프트럭들에 호의가 생기면서 앞 뒤로 지나치는 덤프들에 손을 흔들어 주게 되었다.
대신에 자전거는 한 시간에 겨우 5-6km 정도로 진행하는 것 같았다.
포항 한동대 진입도로를 지나면서 덤프트럭들을 더 이상 만나지 않게 되었다.
크게 안도감이 들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지금까지 보다 훨씬 험준한 절벽 길 해안도로가 나타났다.
그래도 덤프트럭들과 교행하는 것 보다는 심리적으로 훨씬 편안했다.
땀을 흠뻑 흘리며 해맞이 공원이라는 절벽 정상에 올랐다.
정동진 해변 보다도 더 절경처럼 느켜졌다.
노변에 포장을 치고 장사하는 아줌마한테 1500원에 시원한 냉커피를 사서 마시고, 물통을 들이밀며 시원한 보리차 물 좀 채워달라니 선선하게 응해 주었다.
언제나 내게 호의를 베푸는 걸 거절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누추하고 남루한 사람들이었다.
내 피속에는 그것을 언제나 확인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다.
언제나 시장 뒷골목 같은 곳이 좋고 편안하고 정겹다.
누가 이런 나를 보고 양아치 체질이라고 말했다.
이런 시장 체질은 나이가 먹을수록 더 강화되는 것 같다.
해맞이 공원에서 포항시내 까지는 비교적 주행하기 편안했다.
길도 굴곡의 각도가 훨씬 부드러워졌고, 포항에 근접할 수록 평탄해 졌다.
비교적 이른 시간에 포항 중심가에 도착했다.
포항역 앞 파출소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땀에 절은 몸을 그대로 한채로 중심가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들어갔다.
마침 '화려한 휴가'를 시간에 맞추어서 볼 수 있었다.
옆자리 관객이 내몸에서 나는 땀냄새를 의식하는 눈치여서, 좀 떨어진 자리로 옮겨 앉았다.
광주를 멜로-유머-액션을 뒤 섞어 블록버스터 영화장르 양식을 빌어 말할 수도 있다는게 신기했다.
다큐멘타리 양식의 진실 알리기 광주 이야기에 인이 밖혔었는데, 이런식으로 광주를 가볍게 다루어도 좋은지 좀 의아했다.
나레이션이나, 실화 사진 몇개라도 화면에 담아서 좀더 진지하게 광주를 얘기해도 상업적 흥행을 훼손하지 않을텐데 라는 유감이 잔상으로 남았다.
영화관을 나서서, 밥먹으며 소주를 두병이나 반주로 마시고 찜질방에서 잠에 골아 떨어졌다.
14. 포항-경주-부산-김해
포항 근처 해안도로에서의 아찔했던 경험들 때문에, 더 이상 해안도로를 타고 싶지 않았다.
부산에 접근할수록 어느 도로나 교통량이 넘쳐날 테고, 갓길이 잘 정비되지 않은 해안도로는 어제처럼 덤프나 대형트럭들과의 아귀다툼 속에서 위험의 극대치까지 견디면서 주행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정나미가 떨어졌다.
그래서 편안하게 잘 정비된 국도를 타기로 결정했다.
국도주행은 갓길이 확보 되어 있으니 최소한의 안전은 보장 받는 거와 같았다.
포항에서 경주 구간은 7번 국도를 주행하고 점심 전에 경주에 도착했다.
경주 도서관이 인상적이었다.
완전한 한옥 건물이었다.
공공 건물이 완전한 한옥인 것은 처음 봤다.
시간이 있으면 안에 들어가 보고 싶었다.
얼음과자 하나를 사서 먹으며 도서관 나무 그늘 아래서 좀 빈둥거리며 놀았다.
거대한 왕릉들이 많이 있는 동네를 돌아서 경부고속도로 진입로 가까이에서 35번 국도로 들어섰다.
경주에서 부산까지 35번 국도는 지금 까지 주행한 도로 중에서 가장 편안했다.
왕복 4차선 국도로 갓길도 잘 닦여 있었고, 오르막 내리막을 최소화 해놓은 평탄한 길이 언양까지 계속 됐다.
경주-언양 구간은 교통량이 거의 없어서 한적한 도로를 여유롭게 달릴 수 있어서 좋았다.
언양을 거치면서 교통량도 늘어나고, 갓길도 확연히 좁아지는가 싶더니 양산을 지나면서 확연하게 도로조건이 나빠졌다.
그래도 페달을 돌리는 다리에 힘이 붙어 도로쪽 차선 하나를 차지하고 비교적 빠른 속도를 유지해서 차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자전거에 속도가 붙으니 내가 차를 운전하고 있다는 감각으로 도로 한차선을 차지하고 주행할 수 있었다.
부산 도심에 도착할 때 까지 이런 주행을 유지했다.
어둑해질 무렵 부산에 도착했다.
110km 정도를 주행했다.
부산 아무데서나 잘 생각이었다.
부산 이라는 도시를 하루 쯤 빈둥거리며 구경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부산은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갓 20살의 나이에 1년 정도 살아 본 곳이다.
집을 떠나 처음 살아본 객지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부푼꿈을 안고 시작했던 첫 번째 꿈이 처절하게 좌절하도록 만든 도시다.
그래서 애증이 있다.
근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내가 지도를 잘 못 읽었다.
구포에서 2번 도로로 갈아타면 남해안 동쪽에서 서쪽으로 진행한다고 생각했다.
2번 도로는 구포보다 훨씬 아래쪽 낙동강 거의 끝 부분에서 시작한다는 걸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구포에서 크게 우회전으로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니 더 이상 번화한 부산의 거리는 나타나지 않았다.
밤이 너무 깊어 길가는 사람에게 찜질방 있는 곳을 물으니, 시내로 되돌아가던지, 아니면 김해 까지는 가야 한단다.
낮 동안의 속도감 있는 주행의 관성이 나를 앞으로 내 밀었다.
되돌아 가는 것은 어쩐지 패배적으로 느켜졌다.
그렇게 김해 인제대학교 근처 찜질방에 도착했다.
10시가 훨씬 지난 시각이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130km 이상을 달린거 같다.
제주도 일주가 보통 120km 정도다.
예전에 제주도를 3박 4일에 걸쳐서 두 번 일주한 경험이 있다.
오늘은 하루에 130km 이상을 주행했다.
믿기지가 않았다.
뿌듯한 포만감 같은걸 느끼며 인제대 정문 오르막 꼭대기 근처 음식점에 들어가 돼지고기 고추장 삼겹살을 시켰다.
1인분에 2000원 이란다.
미안해서 2인분을 달라고 했다.
‘3인분 부터 주문 받아요’.
얍상한 상술에 놀아난 불쾌함이 들었지만, 따지고 싶지 않았다.
피곤하기도 했고, 마음속에 여유로움도 있었다.
맥주 1병, 소주 2병, 공기밥 한그릇, 삼겹살 조금 남김.
찜질방이 엄청 호사스러웠다.
옷장에 열쇠를 채우고 얼큰하게 술이 취한 채로 담배를 피워 물고 어슬렁 어슬렁 샤워장에 가는데, 찜질방 사장이 나를 보고 질겁을 했다.
공포스런 표정으로 담배를 핑계로 거칠게 시비를 걸었다.
정중히 사과하고 담배 끄고 샤워장에 가서 샤워하고 골아 떨어져 잤다.
다음 날 아침 사장에게 어제 밤의 일에 관하여 항의하니, 부분적으로 시커멓게 탄 내 모습이 너무 흉측해서 과잉반응을 했다고 사과했다.
체제에 잘 길들여진 사람들은 정상성에서 조금만이라도 이탈한 모습에 질겁한다.
정작 현실 기득권을 위협하는건 자신들의 관성적 가치관이나 행위양식이란 걸 그들은 알지 못한다.
그런 성찰의 부재가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약화시킨다.
외부의 타자성에서 현실의 위협 요인을 찾으니 내부적 성찰의 기회를 상실한다.
그게 현실이 무너지는 과정이다.
이건 나만의 허황된 상상일까? 라고 생각하며 나서는데 그가 말했다.
‘대단하십니다. 좋은 자전거 여행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도 나 만큼이나 유들유들하고, 다른 한편으로 남을 잘 조롱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가 진심으로 내 여행을 칭찬해 주었다는 느낌이 전달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