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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대기

학교와 정보화 체제 - 안녕못하지요

안녕하십니까?라는 대자보가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고있다. 형식은 구태한데, 어투나 내용은 완전히 새롭다. 이게 인터넷이라는 매체와 결합하면서 단 몇일만에 완전히 새로운 문체로 등장했다. 이런 실험이 구태하고 느려터진 학교에서도 가능할까? 급하게 얼마전 조그만 모임에서 중언부언 발표했던 글을 발췌해서 올려본다. 이런 일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안녕하냐?'에 대한 질문을 자신에게 묻는 일이고, 그 질문에 나름의 대답을 궁리하는 것이다. 

 

 

정보화된 학교의 통제체제를 통과하는 방법에 대한 시론.

1. 배경

학교현장의 정보화가 지난 십여년간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그런 정보화는 교사와 학생의 개별화를 통한 관리-감독체계를 유연하고 세련되게 강화시켰다. 결과로, 현장의 교사나 학생들은 모두 개별화 파편화 되어 서로 경쟁하도록 요구 받고 있는 상황이 도래하였다. 물론 사회경제적 시스템들이 그런 변화의 주요 동력이지만, 기술적으로는 학교현장의 정보화가 교사와 학생의 개별화 관리도구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구성원들 간의 협동에 기반한 교육실천 모델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졌다. 그런 시작은 걱정과 우려와 고민과 상처와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는데, 이글은 그런 고민에서 출발한 하나의 시도이다.

문제는 네트워크의 세분화된 관리-감독 체제를 넘어 새로운 집단적 협동적 교육활동 실천사례들의 창출을, 그 네트워크 또는 정보화라는 조건에서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문제를 시간을 거꾸로 돌려 과거로 회귀시켜 해소할 수는 없다.

 

2. 결론

1-1) 다중의 힘은 제국의 심장부에 필연적으로 남게 되는 빈 곳 속에서 물질화한다. <네그리-하트. 제국 / 김영민. 동무론. 재인용>

cf) 대중 : 자본주의적 교환체계속의 소비대중 / 민중 : 생산관계에서 착취당하고 있는 계급적 동질집단 / 다중 : 후기산업산회 또는 정보화 사회의 현상인 인종-문화-생산관계 등이 다변화 되면서 나타나는 차이들이 넘치는, 동일한 균질성이 없는 피억압집단.

1-2) 마치 궁정의 추억만을 씹으면서 일없이 시장의 언저리를 잉여인으로 배회하는 13세기의 기사처럼, 우스꽝스런 위엄을 잃지 않은채 --- 신화적 낭만주의와 시적 명예를 신경질적으로 지키면서 --- 스스로를 어둠속에 유폐시키는 기사가 되어 --- 산문을 잃어버린 채 노을처럼 네 주변을 돈다 < 김영민. 동무론 >

cf. 1-2)에 대한 해석) ‘’ 그리고 ‘기사’ : 고루한 진보진영의 전형성이 여실한 그리고 전통을 고수하려는 경향성에서 자유롭지 못한 지사적 엘리트 삶의 양태(우리 자신들의 모습) / 산문 : 자본주의적 교환체계(네트워크의 관리-감독 체계)로 부터 빗겨나 있지만, 이질적으로 다양하여 동일성으로 포섭할 수 없는 삶의 양태 : 이런 삶의 예시가 박지원의 북학파 구룹이다. 성리학적 체계로 통일된 조선시대를 빗겨간 서로 다른 이단아들인 이들의 실패가 조선사회 근본적 쇄신의 마지막 기회였다. 이들이 시도한 것은 정형화된 성리학적 문체에서 이탈하여 다양하고 잡다한 소품체라는 새로운 글 쓰기였다. 이게 문체반정이라는 정조의 공격으로 꺽이면서, 조선사회 쇄신의 기풍도 함께 소멸했다,는게 김영민이나 고미숙 등의 평가다.

결론1 : 글로벌화 정보화의 결과인 삶의 다양한 형태를 수용하면서, 그런 다양성이 일상과 네트워크에서 끓어 넘치게 해야 한다. 손쉬운 예를 들자면, 단위학교의 쿨메신저, 전국의 모든 교육수행들을 표준화시켜 관리 감독하는 업무포털 등은 전유-변용하면 뒤집기 공간이 될 수 도 있다.

 

2) 찌라시는 형식의 말석(末席). 아니, 지위 자체가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일본어인 찌라시는 흩뿌리다(らす)의 명사형. 책의 기본인 권(), 묶인 것도 아니고 뿌리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내가 읽은 글 중 가장 재미있고, 유익하고, 공동선을 위한 글은 찌라시였다. ---. 비범죄화할 것을 엄숙하고 거룩하게 선포하는 바이다. 다만 선언하고 선포할 뿐, 설득하지 않을 것이다. 원래 선언은 그런 거니까. ---. 곰팡이와싸우는세입자연대, 남성연대반대하는남성모임, 딸자식이뭘하고돌아다녀도지지할학부모회, 목소리작고아름다운꼴페미연대, 목소리크고못생긴꼴페미연대, 명절날엄마의파업을꿈꾸는일안돕는딸년모임, 반성매매인권행동[이룸], 야근칼퇴근직장문화확립추진위원회, 서로비난안하는부모자식연합, 성구매할생각없는한줌의남성모임, 성욕의총량을측정계량중인연구자(개인), 시급만오천원시대를꿈꾸는알바인연합, 애국국민이기싫은국민연합, 한국에와서여성우월주의로변질된페미니즘연구회(우리 졸라 많지?). (정희진. 한겨레신문 칼럼 중 일부. 2013-07-05)

결론2 : 문제는 텍스트인데, 정희진이 예시한 이런 식의 생소한 문제의식들에 대한 공감-이해를 넘어 어떻게 새로운 문제의식들을 생산해 낼 것인가에 달려 있다. 그런 산문-텍스트들이 넘칠 때 학교도 활력을 되찾고, 조직도 새롭게 갱신될 것이다. 젊은 조합원들이 그런 발칙한 문제의식들을 표출하고, 원로조합원들이 그런 분위기를 지지하는 모습이 그나마 가장 가능한 상상이다.

cf) 벌떡교사들의모임. 입시에영어폐지를요구하는영어교사연합. 야자보충적극지지약간반대교사모임. 장래성없어보이는분야로만진로지도에뛰어난진로교사연합. 모두가교장이되는학교는절대불가능하다는신념를쪼끔만지지하는교사연대회의. --- 등등에서 나오는 수많은 다양하고 재미있고 말도 안되는 텍스트들이 여기저기 난무하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