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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대기

바보가 쓰는 편지

누구라도 그렇겠지만 일하는 직장의 체계에 맞춰 산다는게 쉬운일이 아니다.

자기만의 고유한 느낌-판단-가치관들을 조직의 그것들에 일치시키는 일은 항상 마찰열 비슷한 통증을 일으킨다.

오랜기간 동안 한 직종에 머물면 그런 마찰열이 수반하는 통증이 사라지겠지만, 반드시 그런것 만도 아니다.

올해 학생과 업무를 맡으면서, 좀더 학생친화적인 분위기 조성을 생각해 봤다.

그런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먼저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깐다는 생각으로, 무언가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는 신호로 아니면 니들과 똑 같은 콤플렉스 덩어리 인간에 불과하다는 아부-위로의 뜻으로 아래의 편지를 썼다.

이걸 학생들에게 편지글의 형식으로 전달하고자 했다.

사전에 동료교사들이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너무 무리한 면이 있다는 의견을 내 놓았다.

김영민에게서 배운건데 '알면서도 모른체하기'가 현실을 뚫고 나가는 방법이란다.

그래서 애초의 의도는 깨끗이 접었다.

그럼에도 누군가와는 이런 생각을 나누고 싶다.

물론 아래 내용은, 아이들에게 딜레마로서 작용할 여러가지 현실을 고려하고 개인적인 경험을 뒤 섞은 픽션이다.

 

 

 

1. 바보가 쓰는 편지

 

아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서정주 - 자화상)

 

유년의 한자락을 펄치면 보이는 풍경입니다.

머슴이었던 아버지는 가정에 무능했고, 사소한 일에도 폭력을 밥 먹듯 일삼았습니다.

가슴속에 분노의 싹이 돋았습니다.

중학교 이래로 절대로 아버지 같은 사람은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별로 잘하는 것도 없고, 공부도 그저 그렇고, 공손하지도 않았던 나는 조용한 반항아였습니다.

대놓고 말썽을 부리지는 않았지만 이런저런 쌈질을 끊임없이 하면서 성장기를 보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또래의 아이들에 대한 쌈질로 대신한 셈이지요.

두둘겨 맞은 경우가 태반이었습니다.

또래 중에서 쎈놈과는 어떻게든 쌈질을 벌였던 것 같습니다.

대들지 못하는 아버지를 쎈놈이 대신했던 셈이지요.

 

대가리가 커지면서 아버지에게 대들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무조건 아버지로부터 독립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았습니다.

몇 번의 독립 시도들이 실패하고 비굴하게 아버지 밑으로 기어들어가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소년이 어른이 되었습니다.

 

교사 발령을 받고 첫해에 학생을 비오는 날 먼지 나게 두둘겨 팼습니다.

그 아이는 정신과적 질환으로 고통 받던 학생이었습니다.

그 학생에 대한 배경지식도 없었고, 아이들의 도발적인 문제 행동에 적절히 대처할 만한 능력도 없었던 나는, 그 상황을 나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했습니다.

교사로서 아이들에 대한 이해능력이 현저히 부족했던 나의 일방적 폭행이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아이들의 행위에 대한 내 해석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아이들을 매로 다루는 일은 계속되었습니다.

 

10여년이 흐른 어느 날 어떤 경우에도 아이들을 매로 다스리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자 나는 호구 또는 바보 교사가 되었습니다.

호구 또는 바보가 되자 가르치는 일이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편해졌습니다.

뭔가 나쁜 짓을 그만둔 것 같은 막연한 느낌 때문이겠지요.

바보로서의 교사가 옳은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정리된 건 아니지만, 매를 놓고 나니 아이들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아이들과 말로 소통하려고 노력해 볼 수 밖에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참고 기다리는게 가르치는 일의 전부가 아닐까?라는 어줍잖은 깨달음 비슷한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무언가를 얻을려면 먼저 무언가를 잃어야 하는 게 어김없는 세상의 이치입니다.

모든 걸 다 가질 수 있다면 인생이 참으로 불공평하겠지요.

뒤 돌아 보면 무언가를 잃었다고 생각했던 그 때 나는 항상 새로운 무언가를 얻었습니다.

 

오늘도 바보인 나는 여러분에게 제일 만만한 호구입니다.

여러분도 누군가에게 언젠가 바보였고 앞으로 바보가 될 겁니다.

인간이 타인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바보라는 건 피할 수 없는 존재조건입니다.

타인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다면, 인생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무수한 오해와 오인으로 얼룩진 게 세상입니다.

인간이 서로에게 바보인건 피할 수 없는 숙명입니다.

그래서 서로 바보인 우리는 눈꼼 만큼의 소통이라도 만들려면 상대를 극진하게 대접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우연한 시간과 공간에서 선생과 학생으로 만났다는 게 그냥 흔한 인연은 아닙니다.

서로 미워하면서 인연을 버린다면 너무 억울합니다.

내가 바보라고 생각하면서, 여러분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몸에 익었던 모든 선입견을 내려놓고 여러분을 진심으로 존중하겠습니다.

통하지 않는 타인으로서 선생님이겠지만, 여러분도 진심으로 선생님을 존중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2013. 03. 16.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