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1
지난 6.13 선거국면에 여한 없이 덤벼들었다.
충분히 때 묻을 만큼 오래 살아서 그리고 어쩔수 없는 불완전한 인간인지라, 이런저런 눈치를 봐야할 대목도 있었다.
정치활동이 금지된 공무원으로 살아온 관성으로 인해, 공중에 민낯을 노출시키는 정치적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한 주저함도 있었다.
그럼에도 현실을 박차고, 카톡으로, 문제메세지로, 블로그로, 전화로 그리고 술자리를 억지로 만들면서 맘껏 선거운동을 했다.
이제 막 20살을 넘긴 제자들도 최대한 연줄을 복원해서 선거에 동원했다.
느그들도 이제 건전한 시민으로서 올바른 정치적 소양을 길러야 한다,고 다그쳤다.
용기2
지지한 정당은 정의당이다.
세속을 살아온 연조도 있고, 현실적으로 민주당에 연줄을 대면 권력의 떡고물이라도 나눌 기회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리고 그런 기회주의적 속성이 나의 일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고 순수하게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관점에서 정의당을 선택하자고 결심했다.
교육감 선거에는 과거의 해직 동지가 있었음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
그냥 내 한표 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겠다고 주변에 공표했다.
변명1.
정의당을 지지한 행동에는 조금의 변명의 여지가 없다.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했던 한줌의 올바른 일중 하나였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교육감 선거에서 최소한의 역할만을 마지못해 수행한 점에 대해서는 자꾸 변명의 욕망이 생긴다.
아마도 시기와 질투를 숨기려는 욕망이, 변명의 욕망에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더하여, 속좁은 처신을 포장하려는 욕망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변명하자면, 서로 진보교육감 후보라고 주장했던 '두 Jee'들 사이에서 차이를 구분할 수 없었다.
하나는 그냥, 해직교사 출신이고, 하나는 엘리트코스를 쭉 살아온 교수라는 차이 말고, 다른 차이가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해직교사였던 그도, 네게는 너무 뻔한 엘리트적 감수성을 지향했던 과거 말고 다른 기억이 없다.
자신을 던져 잘못된 교육현실을 깨뜨리려 애쓴 뚜렷한 족적이 없다.
불구하고, 선거 결과를 보니 한편으로 마음이 흡족하고 좋다.
한편으로는 그의 뻔한 과거가 결국 뻔한 그의 직무수행을 결과하리라는 우려도 있다.
그래서 제안을 하나 하고 싶다.
제안1 : 기억과 희망
기억 - 새로운 현실은 과거에 대한 철저한 기억과 그것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한다.
일본제국주의 잔여물인 군사문화와 그것에 뿌리를 둔 파시즘적 봉건성을 해체하고 근대적 합리성에 기반한 민주주의를 구축하는 것이 한국사회의 총제적 과제라고 설정한다면, 교육에서 과거에 대한 철저한 기억은 일제의 군국주의적 교육체제의 변형인, 한줄 세우기식 입시위주 교육에 대한 반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일주일에 한명의 청소년들이 자살하는 현실은 한줄 세우기식 파시즘적 교육체제가 만들어 낸 일종의 홀로코스트와 같다.
말이 자살이지 정확한 언어로 말한다면, 타살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교육현실에 대한 통렬한 반성의 의미로서, 과거의 잘못된 교육체제에 대한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조형물을 설치하자는 제안을 하고 싶다.
카디쉬만의 '기억의 공백' 비슷한 조형물은 더이상의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반성물로서 의미있게 사용할 수 있을것이다.
물론 조형물은 다양한 종류의 텍스트들과 같이 공존해야 한다.
입시위주 교육을 명시적으로 지목하면서 삶을 던져 저항한 희생자들, 삼성의 황유미나 제주의 이민호 같은 희생사자들, 멀게는 유신이나 군사독재 교육에 대한 희생자들에 대한 꼼꼼한 기록과 기억의 텍스트들을 새롭게 만들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런 조형공간이나 텍스트들은 학교현장의 교사나 교육관료들에게 직무의 표준 출발점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배치할 수 있을것이다.
교육관련 모든 직무 수행의 출발점으로 기능하도록, 언어적-물리적-행정적 조형물로서 구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희망 - 다른 하나는 희망의 메세지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이땅에서 살아갈 아이들에게 가장 큰 희망의 메세지다.
이걸 어떻게 물질적 오브제로 만들지에 대한 아이디어는 전무하다.
아마도, 건축가나 미술가들에게 요구한다면 얼마든지 구체적 오브제가 나올 수 있을것이다.
마찬가지로 그것들은 평화로운 한반도라는 다양한 텍스트들과 함께 존재하도록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오브제와 텍스트들은 교육관련 모든 직무 수행의 최종적 지향점으로 기능하도록 배치하여야 한다.
그래서 기억과 희망의 공간과, 그것에 대한 구체적 디테일을 현장에 구축해가는 것으로 진보교육감의 시대를 열어간다면, 한시대를 감당할 교육적 시대정신 비슷한 무언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제안을 한다.
물론, 아이디어가 현실이 되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하지만 독일의 유대인학살에 대한 기억과 반성에 대한 연구들을 충분히 검토하면 지금의 한국사회 교육에 참조할 만한 많은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을것이다.
독일의 제국주의 청산작업은 인류가 찿아낸 소중한 역사청산의 범례적 유산이고, 한국사회의 문제는 결국 일본제국주의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cf1) 카디쉬만의 '기억의 공백' : 내부에는 감성적 체험이 극대화되는 특징적인 공간적 장치가 있는데 바로 “공백의 기억(Memory of Void)”입니다. 바닥에는 이스라엘 현대미술가인 메나쉐 카디쉬만(Menashe Kadisgman)의 작품이 있습니다. 희생된 유대인 얼굴의 형상을 한 원형의 강철 조각은 각기 다른 형태의 얼굴을 나타내며 바닥에 불규칙하게 깔려 있습니다. 관람객이 밟고 지나갈 때 강철 조각들의 마찰음은 마치 유대인들이 학살당할 때의 비명소리처럼 좁고 깊은 공간에서 공명하며 울려퍼집니다. 공간을 지나게 되면 이 닫힌 공간에서 모든 방문자는 고요한 적막과 더불어 과거의 회상에 잠시 빠지게 됩니다.
출처) http://blog.rightbrain.co.kr/?p=4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