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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에필로그 --- 김언희

너는 네가 몇 살인지 모른다. 너는 너무 늙어 가죽이 다

벗겨지고 뼈가 살을 뚫고 나와 있다. 찌그러진 젖퉁이에 좆
까지 합쳐 단 노파 놈. 너는 네가 노인인지 노파인지도 모
른다. 네 원수는 벌써 너를 잊었다. 네 성기조차도 너를 잊
었다. 너는 가공의 하늘에 떠 있는 가공의 구름이다. 마술
사는 너를 무대 위의 허공에 둥둥 떠 있게 하고는 그냥 가
버렸다.
< 요즘 우울하십니까? p.99 >


네가 누구인지 나는 모른다.
내가 누구인지도 나는 알지 못한다.
정체성은 무너졌고.
남아 있는건 썰렁한 자의식 밖에 없다.

그에게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고집만이 추하다.

cf) 아이고, 분위기 확 처진다.
쓴 비극은 어딘가 달콤한데가 있다.
그게 이런 시가 읽히는 이유일까?
이런 시에 꽂히는 그리고 이런 시를 읽어 내는 내 감수성을 탓해야 하나?
쪼록 쪼록 비가 내리는 몬순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