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의 스타일(문체) : 씩씩한 여자들
김애란의 씩씩함은 어디서 오는가?
아마도 생명을 낳아 가르는 여성성에서 오지 않을까?
아니면 사회적 규제로 부터 자유로운 젊음에서 오는가?
혹은, 그 둘이 합해진 것일까?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는 삶에 결코 좌절하지 않는 여자들의 이야기다.
굴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김애란이 그리는 여자들은 '그리스인 조르바'를 닮았다.
그렇게 보면 '달려라 아비'는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소설로 번역한 것이다.
삶을 긍정하고 그걸 또 긍정하는 김애란의 도저함은 어디서 오는가?
김애란을 읽으며 구김살 없이 항상 명랑한 새롭고도 신선한 젊음의 힘을 느낀다.
드물지만 그래도 의존할 만한 역사적 사실이란 '장강의 뒷물은 앞물을 밀어낸다'는 진실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누가 뭐래도 젊음의 경이로움을 찬양한다.
김애란에게 그런 경이로움이란 삶에 대한 새로운 감각인데, 그 감각은 삶을 무한히 긍정하는 태도다.
어머니는 농담으로 나를 키웠다. 어머니는 우울에 빠진 내 뒷덜미를, 재치의 두 손가락을 이용해 가뿐히 잡아올리곤 했다. 그 재치라는 것이 가끔은 무지하게 상스럽기도 했는데, ----- P.15
어머니가 내게 물려준 가장 큰 유산은 자신을 연민하지 않는 법이었다. 어머니는 내게 미안해하지도, 나를 가여워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가 고마웠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게 '괜찮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정말로 물어오는 것은 자신의 안부라는 것을. 어머니와 나는 구원도 이해도 아니나 입석표처럼 당당한 관계였다. ----p.16
어머니는 택시운전을 힘들어했다. 박봉, 여자 기사에 대한 불신, 취객의 희롱. 그래도 나는 어머니에게 곧잘 돈을 달라고 졸랐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새끼가 속도 깊고 예의까지 발라버리면 어머니가 더 쓸쓸해질 것만 같아서였다. 어머니 역시 미안함에 내게 돈을 더 준다거나 하는 일 따윈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가 달라는 만큼만 돈을 줬지만, "벌면 다, 새끼 밑구멍으로 들어가 내가 씨발, 씨발, 하면서 돈번다"는 생색도 잊지 않았다.-----p.20
어머니는 택시요금 할증이 다 풀릴 즈음이 되어서야 들어왔다. 나는 딸의 잠을 깨우지 않으려, 불도 못 켜고 조심스레 옷을 벗는 어머니를 상상했지만, 어머니는 발로 나를 툭툭 차며 외쳤다. "야! 자냐?" 나는 이불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미쳤어? 택시기사가 무슨 음주운전이야?"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싱긋 웃더니 이불 위로 이내 고꾸라졌다. 어머니는 말아쥔 주먹처럼 몸을 아주 작게 모았다. 나는 어머니에게 이불을 덮어줄까 하다가 그냥 그대로 놔두었다. 얼마 후 어머니는 추웠는지, 스스로 이불 안으로 기어들어왔다.-----P.27
그러나 나는 문득, 아버지가 그동안 언제나 눈부신 땡볕 아래서 뛰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랫동안 나는, 어버지에게 야광 반바지도 입혀 드리고, 밑창이 말랑말랑한 운동화도 신겨 드리고, 바람이 잘 통하는 셔츠도 입혀드리고, 달리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상상했다. 그런데 그중 썬글라스를 쒸워드릴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는게 이상하게 여겨졌다. -----. 그리하여 나의 커다란 두손이, 아버지의 얼굴에 썬글라스를 쒸 운다. 그것은 아버지에게 썩 잘 어울린다. 그리고 이젠, 아마 더 잘 뛰실 수 있을 것이다. P.29
이야기 어디에도 프로이드식의 초자아에 고통 받는 흔적이 없다.
통속적인 코드라면, 신파가 흘러 넘쳐야하는데 오히려 즐겁다.
생명을 키우는 여성성은 또는 젊다는 것은 일종의 혁명이다.
그래서 체제의 기득권자인 남자들은 젊다는 것과 빛나는 여성성을 어떡하든 규제해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기득권 체제는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