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글들을 한겨레신문에 실린 짧은 서평들을 통해서 주로 접했다.
그가 쓴 시집이나 소설들 또는 십여권이나 출판됐다는 독서일기 한권도 읽어 본게 없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집어든 이 책을 그자리에서 뚝딱 읽었다.
소설도 아니고 뭣도 아닌 자유로운 서술형식이 재미있다.
도저히 문어체로 사용할 수 없는 시정의 언어인 '데끼리' 같은 말들을 무거운 역사소설에 사용하는 용기도 대단하다.
본인은 사마천의 사기를 소설의 씨줄로하고 김용옥 마키아벨리 프로이드 등을 날줄로 삼았다는데, 정작 보이는건 김용옥과 마키아벨리다.
아는 만큼 보이니, 아는게 그것이라는 말이다.
책의 전체적 내용은 장정일의 자학이다.
현실을 주물거릴 물리력을 거세당한 문사는 말만 많다는 나(진시황의 태자)는 어쩌면 장정일 본인일 것이다.
무엇이 장정일로 하여금 이런 자학을하게 했을까?
점점 암울해져가는 현실에 대한 그의 절망적 잡답-비웃음-냉소가 이 소설에는 가득하다.
그걸로 이 책은 나 같은 문약한 사람들을 위로한다.
cf) 장정일은 1997년에 '네게 거짓말을 해봐'라는 소설이 포로노그라피라는 이유로 필화사건을 겪는다. 이 소설은 1999년에 초판이 나왔다. 그러니 이 소설은 장정일이 치졸한 한국사회의 이지메를 겪는 한가운데서 쓰여졌다. 그가 진시황의 세자로 태어나, 변방을 맴돌다 무력하게 사라진 '부소'의 불행에서 자신의 절망을 위로 받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중국에서 온 편지'의 발신자는 '부소'이고 수신자는 '장정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