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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영화보기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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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놈놈 세명이 나온다.
정우성은 좋은 놈,
이병헌은 나쁜 놈,
송강호는 이상한 놈이다.
그러나 스토리가 엉성해서 또는 뛰어나서 셋 다 이상한 놈이다.

사실과 다르다는 걸 이상하다고 한다.
사실이란 그 시대가 명령하는 해석속에만 존재한다.
사실은 언제나 시대적 해석체계와 일치된 형태로만 존재한다.
그러므로 사실은 억압과 강제의 산물이다.

이 명화의 미덕은 사실을 뒤집어 놓는데 있다.
역사적 텍스트로서 이 영화는 한국 근대의 도입부분을 완전하게 날조한다.
사실에 쒸어진 억압을 풀어 자유롭게 한다.

최근의 한국영화들이 19세기 초반의 경성을 소재로 사용한다.
이 영화도 한국영화의 그런 흐름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오히려 무대를 좁은 경성에서 허허한 만주로 끌고간다.

1. 이상한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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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한 사실로 일본제국주의 시절 만주는 독립운동의 활동무대다.
일본 제국주의의 폭압이 주요한 풍경이어야 한다.
그 내부에서 폭압을 뚫고 나오는 저항이 내밀하게 그려져야한다.

영화가 제시하는 역사적 억압의 족쇄가 풀린 자유로운 사실은 서부 영화의 장면들이다.
미국이 서부로 서부로 진출하면서 새롭게 개발된 금광주변의 급조된 마을들을 만주의 풍경이라고 우긴다.
어떤 장면들은 중동지방의 사막을 횡단하는 대상들을 닮았다.
거짓을 아무런 꺼리낌 없이 발설하는 뻔뻔함이 대단하다.

2. 이상한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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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실로서 그 시대 만주의 조선인들은 순정하게 독립운동에 헌신해야 한다.
삶의 목표가 일본 제국주의로 부터의 독립이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감수하는 거룩한 사람들이다.
이것이 사실이다.

영화는 이런 사실을 뒤집는다.

정우성은 독립운동을 언제든 돈과 바꿔먹을 수 있다.
이병헌은 최고로 강한 놈이 되는것에 목숨을 걸었다.
송강호는 오직 잘먹고 잘사는 것에만 의미를 부여한다.

3. 이상한 액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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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극장으로 보면 한여름 최고 성수기를 겨냥하고 있다.
불록버스터를 지향하고 있음을 노골적으로 발설한다.
광고도 엄청 때린다.
모든 멀티플렉스 극장마다 스크린 두셋을 차지하고 있다.
대사도 거의 없고 액션만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인과적 사건의 맥락에는 아예 관심이 없는듯하다.
그저 볼거리를 재미있고 풍성하게 제공할테니 그것에 만족하라는 태도다.

정우성은 서부영화에 등장하는 건맨이다.
이병헌은 권총으로 춤을 추고, 칼로 그림을 그리는 서늘한 킬러다.
송강호는 전쟁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막돼먹은 독일장교다.

정우성의 서부극 액션은 클린트이스트우드 보다 더 멋지고, 더 서부 사나이 같다.
이병헌의 액션은 홍콩 누아르 영화처럼 비정하다.
송강호의 액션은 오토바이를 타고 전쟁터를 누빈다.

4. 이상한 놈 : 이상한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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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가 잘 짜여진 엔딩을 기대했다간 낭패본다.
사실로서 영화는 사건을 차곡차곡 쌓아서 여운이 길게 남는 엔딩을 만든다.
관객들은 그런 서술구조를 따라가면서 축적한 감정이 결론으로 해소되는 느낌을 즐긴다.
이 영화는 그런 결말을 에누리없이 저버린다.
이상한 놈 송강호가 최고라고 조악하게 결론 내린다.
사건들을 헐겁게 이어 붙이니 짜임새 있는 결론이 불가능하다.
시간이 됐으니 영화를 끝내겠다,는 태도가 확연하다.
아무리 시간 죽이기용 불록버스터를 겨냥했다고 해도, 맥락의 짜임새가 너무 헐겁다.

5. 이상한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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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그래도 좋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블록버스터 영화가 일제시대-한국근대화의 초기를 이렇게 자유롭게 그릴 수 있게된 현실을 생각해 보았다.
영화가 호출하는 시기는 한국근대 100년의 역사를 규정한 시기다.
조선이 무너지고 모든 사람들은 중심을 잃었다.
그 빈자리를 민족이 파고 들었다.
그러나 현실로서 민족은 부재한다.
부재한 민족국가는 모든 지식인들에게 해결해야할 절대적 가치였다.
그걸 부여잡지 않으면 현실이 공중분해된다.
부재한 민족국가에 대한 통탄스러운 '한'의 정서가 현실을 구성하는 절대적 힘이었다.

한국사회 근대성을 결정지은 그런 엄중한 시절을 이 영화는 가지고 놀려고 애쓴다.
그런 역사적 사실을 철저히 무시해 버린다.
그리고 새롭게 거짓을 날조해 낸다.
날조된 새로운 사실은 블록버스터적 서사다.

상업적 시장을 지향하는 블록버스터가 이렇게 나오는건 어떤 변화의 징후라고 보인다.
08년 벽두 구정무렵의 극장가에 '라디오데이즈'와 '원스어폰어타임'이 걸렸다.
두 영화 모두 근대적 문제설정을 가볍게 뛰어넘어 가고 있었다.
블록버스터인 '놈놈놈'은 그걸 확정하고 있다.
한국 사회가 민족국가실현이라는 무의식의 컴플렉스로 부터 벗어나고 있다.
근대적 문제설정으로부터 자유로운 이미지들이 대중에게 무차별적으로 살포된다는 것은 커다란 변화다.

이상한 이미지들은 이상한 사고를 자극한다.
그게 어떤 방향일지 궁금하다.

cf) 근데 '모던보이'는 언제 세상에 나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