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자를 무서워하다.
예전에 이준익 감독이 인터뷰에서 '여자가 무섭다'라고 말하는걸 읽었다.
이준익 감독이 지금까지 만든 영화들이 남자들만의 이야기였다.
<황산벌>, <왕의 남자>, <라디오스타>,<즐거운 인생>.
그가 만든 모든 영화는 남자들만의 마초적인 끈끈한 친구 관계를 다룬다.
예외적인 황산벌에서조차 계백과 김유신은 서로 대립하는 둘만의 밀도있는 교감을 한다.
그가 만든 영화의 이런 성향 때문에 누군가가 그에게 혹시 동성애자 아니냐고 질문을 했고.
그에 대한 대답이 '여자가 무섭다'는 응답이었다.
어떤 대상이 무섭다는 것은 대상에 대한 무지가 근본적인 정서다.
이준익의 대답을 바꾸면 '여자에 대해서 모른다'라는 말이다.
2. 무식함에 도전하다
그런 점에서 이준익의 이번 영화 '님은 먼 곳에'는 용감한 도전의 산물이다.
잘 알지 못하는 무서운 여자를 본격적으로 탐색해 보자고 덤벼 들었다.
결론은 그가 여자를 모른다는 거다.
덧붙여 그의 친구들도 여자를 진짜로 모른다는 거다.
(이준익의 공부론 : 공부할 필요 없다. 단지 공부 많이한 친구들을 가까이하기만 하면 된다)
이준익 영화의 상업적 성공코드는 상식을 경계로 넘실거리는 대중의 감수성과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런점에서 이준익의 여자에 대한 이해는 한국사회의 평균적인 여자에 대한 이해를 반영한다.
그가 영화속에서 만들어낸 여자는 한국사회의 여자 또는 인간에 대한 이미지다.
조금 번역하자면, 한국사회의 인간관계에 대한 해석이다.
사회관계에 대한 해석이다.
친구관계에 대한 해석이다.
조금 더 많이 해석하자면, 한국사회에 대한 해석이다.
3. 그냥 쉬운길로 가다
이준익이 만든 '순이'는 여자이기 보다는 차라리 친구에 가깝다.
앞서의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친구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가부장적 사회속에서 어떻게 여자가 탄생하는지!
여자들은 어떻게 성역할을 내면화하는지!
여자들은 그런 과정에서 어떤 갈등을 치루는지!
그런 성역할에 대한 거부는 어떤 사회적 처벌을 감수해야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많은 경계의 이탈자들이 있는지!
그 이탈자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우리가 누리는 일상의 자유가 그들에게 얼마나 많이 빚을 지고 있는지!
경계의 너머에 어떤 유쾌함이 있는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질문들을 그는 하나도 물고 늘어지지 않는다.
그가 관심있는 것은 오직 하나다.
우리는 고단한 인생을 살고 있고, 그 고단함을 친구가 버티게 해준다는 것이다.
4. 반복되는 귀환
영화를 보면서 축축하게 눈물로 스스로를 위로해야만 술판이 끝나곤 했던 대학시절이 자꾸 연상되었다.
그 시절 우리는 혁명을 핑계 삼아 술먹고,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마지막에는 눈물로 서로의 누추한 젊음을 위로해야만 하루가 정리되는 삶을 살았다.
그런 퇴행이나 고착적 감성은 성장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준익은 자기연민에 허우적 거리며 젊음을 소비해야만 했던 그 시절 우리들의 자화상 같다는 생각을 했다.
더구나 이준익이 그리는 친구는 틈이 없다.
사이와 틈이 없는 동일성을 지향하는 친구다.
우리가 남이가! 와 같은 동일성을 지향하기 때문에 거칠고 유아적이다.
너와 나 사이를 억지로 메꾸려 떼를 쓰는 듯하다.
유치한 감정을 남발한다.
마치 10대 청소년들의 이야기 같다.
새삼스럽게 그런 유아적 감정을 자극하려 애쓰는 영화가 불편하다.
그런 감수성을 추구하면서 살아온 내 자신의 과거에 대한 불편한 발견을 그의 영화는 자꾸 자극한다.
그래서 그런지 치밀하지 못한 허접한 영상들도 눈에 자꾸 거슬렸다.
이번 영화는 지금까지 그가 만들어 낸 캐릭터들을 모두 피터팬 컴플렉스의 포로들로 귀환시킨다.
더 이상 이준익표 친구영화는 안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