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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먹기 또는 놀기

인도 3

3. 스리나가르

레이 있으면서 스리나가르라로 가기로 했다.
레의 고도에 적응하기도 힘들었다.
버스에 같이 동행했던 유럽놈 몇명은 고도를 버티지 못하고 도착하자 마자 탈출을 시도한다.
하얗게 질려서 거리에서 마주치면 어떻게하면 빨리 빠져나갈 수 있는지 묻곤한다.
당시 레는 고립되어 있었다.
예외적인 여름 호우로 접근로가 막혀있었다.
지구 기후변화는 극한지역에서 부터 민감하게 신호를 보내기 시작하는것 같다.

마날리 쪽에서 레로 넘어오면서 안건데 레는 고도만 높을뿐 아니라,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의 도시다.
마날리 쪽이 추운지방의 침엽수림이 울창한 지역이다.
레쪽으로 진행할수록 녹색이 점점 옅어지다가, 중간을 넘어서면 풀한포기 찾기 힘든 사막지형으로 완전히 바뀐다.
사막 한가운데, 고도 4000m에 문명을 만들었으니, 가장 자연친화적인 문명일 수 밖에 없다.
자연과 단단히 결합하여 가장 자원을 적게쓰면서 생존하는 문명을 만든거다.

레를 떠나기로하고 차편을 알아 보니 바가지만 무수하게 돌아다닌다.
사기꾼 여행사들은 어떻게든 등쳐먹을 호기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밥이 되기는 싫었다.

멘땅에 헤딩하기로 작정했다.
스리나가르쪽, 호우로 다리가 끝긴데까지 택시를 타고 갔다.
거기서 임시로 가설된 통로를 걸어서 강을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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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풀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레에서 5시간 가까이 달린 풍경이다)

강 건너편에 돗대기 시장이 펼쳐져 있다.
멘땅에 헤딩하기로 레를 탈출한 사람들과, 그들을 실어 나르려는 차들이 즐비했다.
이탈리아놈3, 프랑스놈1, 한국놈2의 조가 편성되었다.
찦차 여행단 규모가 꾸려진거다.
땡볕에 서너시간 기다리니 스리나가르로 진행하는 찦차가 나타났다.
적당히 가격을 흥정하고 짐을 싣고 출발했다.
운전수 말이 마날리-레 구간 보다는 험하지 않을거란다.
고산증은 피할 수 있겠다는 안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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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스리나가르 중간 라마유르 곰파라는 곳인데, 불교사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 척박한곳에 인간이 문명을 이루고 산다는 것 자체가 인간이 얼마나 지독한 동물인지 보여 주는 것 같다)


밤새 달리다가 중간에 학교강당 같은 곳에 내려주고, 거기서 잠을 자란다.
배가 고파 근처 식당에 갔다.
국물이 있는 양고기 스프를 먹어 보았다.
우리나라 보신탕 맛과 동일했다.
유럽놈들은 아무런 맛을 못 느끼는 듯 했다.
중앙아시아는 우리와 닮은게 정말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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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리나가르에 접근할수록 녹색이 짙어진다)

다음날 해질녁 스리나가르에 도착했다.
찦차 여행단이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그게 돈도 절약할 수 있고, 위험한 상황에 덜 노출될 수 있을것 같았다.

스리나가르는 파키스탄 접경이다.
인도의 중국쪽 접경에서 서쪽으로 이동한거다.

시내에 나가보니 풍경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오래된 이슬람도시의 풍경이 펼쳐졌다.
중동지역의 어느 도시같았다.
길거리에 주욱 늘어선 인도군들의 풍경이, 비상계엄 상태의 한국 80년대 거리 같았다.

스리나가르는 인도 서쪽 최북단 캐시미르주의 수도다.
우리에게는 양모모직물 캐시미어로 잘 알려져있다.
스리나가르에 머무는 동안 보트하우스 주인으로 부터 캐시미어 양탄자를 사라는 압력을 매일 받았다.
한국 사람들이 엄청사간단다.
한국에 가서 팔면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다고 거의 강매수준으로 요구했다.
거절하느라고 혼났다.

스리나가르의 명소는 달이라는 호수다.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호수위에 샐 수 없는 보트하우스들이 있다.
이곳에 여행단이 공동으로 숙소를 잡았다.
이곳에 머물면서 밤에는 파티하고 낮에는 빈둥거리며 지냈다.
이슬람 지역이라 음주는 불법행위다.
주인에게 부탁해서 몰래구입한다.
밤에 주인과 함께 시카라라는 쪽배를 타고 고요한 호수에 나간다.
호수에 대고 뭐라고 지껄이면 다른 시카라가 와서 술을 건네준다.
그 고요한 호수위의 음향이 환상적이다.
마치 고요한 노랫소리도 같다.
존재하지 않는 존재의 웅얼거림 같은 신비함이 있다.

파티 대화의 한장면
이탈이아3 : 월드컵에서 우승했으니, 지네 축구가 최강이라고 우긴다.
프랑스1 : 쪽수에서 이탈리아에 밀리니 일단 그렇다고 인정한다. 그러면서 이탈리아 리그가 돈으로 승부를 조작한걸 지적하며 빈정댄다.
이탈리아3 :  지들끼리 내분이 발생한다. 각기 응원하는 구단이 다르니 프랑스놈의 계획이 잘 먹힌거다. 서로 상대팀을 헐 뜯는다.
한국 2 : 축구에 관한한 별 할 말이 없다. 대화주제를 좀 바꿀려고 시도한다. 나이 먹은 꼰대기질을 버릴 수 없다. 니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게 뭐라고 생각하냐?
다국적 제약회사에 근무하는, 돈 많이 버는 이탈리안 뉴요커인 놈 : 나에게 없는것! 깔끔한 외모만큼이나 세속적인 욕심이 많다.
날라리 스타일의 이탈리아 여자 : 음식. 프랑스 놈에게 필이 꽂혀있다. 분위기를 껄렁하게 만들려고 애쓰고 있다.
자신의 정체를 밝히기를 거부하는 꽁지머리 스타일의 마테라치 같은 이탈리아 놈 : 건강, 가족, 사랑. 이놈은 뭔가 뒤에 한자락을 깔아놓고 있다. 불어에 능통한걸 보면 복잡한 놈임이 틀림없다.
시를 쓴다는 프랑스 놈 : 평화. 달라이라마에게 뻑이 가 있다. 너무 순수하고 깨끗하다. 인도 땅을 1년계획으로 돌아다니는 중이란다. 시를 쓰기에는 좀 범생이 기질이 있어서 어려울 것 같다.

겨우 화제를 돌려 놓지만 얼마안가 결국 화제는 축구로 돌아간다.
하여간 유럽놈들은 축구에 해가뜨고, 축구에 해가진다.

이슬람사원 모스크에 갔다.
마호멧이 있는 방향을 향해 열심히 절하는 젊은이가 있다.
사원 잔디 밭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꽉끼는 청바지가 잘 어울린다.
여느 서구 젊은이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 건장하고 잘생긴 이슬람청년과의 대화
이놈의 눈이 이글이글 불탄다.
나는 잔뜩 쫄아있다.

테러리스트 : 어디서 왔냐?
나 : 한국
테 : 네가 테러리스트로 보이냐?
나 : 아니
테 : 나는 정말로 착하고 선량한 젊은이다. 미국놈들은 이런 나 같이 선량하고 착한 이슬람교도들을 모두 테러리스트라고 한다. 분통이 터져지 않을 수 있냐?
나 : 네말이 맞다. 너 참 착하게 생겼다.
테 : 미국놈들 정말 나쁜 놈들이다.
나 : 네말이 맞다. 미국놈들 정말 나쁘다.
테 : 클린턴은 그래도 착한 미국인이다. 부쉬가 진짜로 나쁜 미국놈이다.
나 : 네말이 맞다. 부쉬는 진짜로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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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군에 항의 시위를 하는 중인 이슬람교도들. 정치적 운동이 현실을 개선시키지 못하면 무장투쟁에 대한 요구가 점점 세를 얻지 않을까?  )

당시의 느낌으로는 이 청년이 탈레반의 전사가 되어 아프카니스탄 산악지역에 총을들고 살고 있을것 같다.
현실이 개선되지 않으면 대부분의 무슬림 젊은이들이 이 청년의 행로를 따를것이다.

중학교에 다니고 공부 잘해서 아버지의 기대를 잔뜩 받고 있다는 보트하우스 주인 아들과의 대화.
나 : 카쉬미르가 인도로부터 독립하기를 원하냐?
중학생 : 당연하지요
나 : 그럼 파키스탄에 편입하기를 원하냐?
중 : 그건 아니에요. 카시미르가 파키스탄과는 또 다르거든요. 그냥 카시미르 사람들은 카시미르 자체로 독립하기를 원해요.
나 : 여기서 날마다 어슬렁거리는 등빨 좋은 네형은 뭐하냐?
중 : 그형 학교근처에도 못 가봤어요. 그냥 놀아요. 아버지도 사실상 문맹이에요. 카시미르분쟁이 생긴 이래로 경제가 수십년째 빈사상태래요. 그래서 대부분 끼니를 때우고 사는데 급급해요. 저는 그런중에 행운이지요.

어느날 시내 관광에 나섰다가 갑자기 총성이 들리고 사람들이 무질서하게 흩어지는 광경을 목격한다.
혼비백산해서 달 호수로 급하게 돌아와서 다행이라고 안도하면서 숨을 죽인다.
'론니 플래닛'이 절대로 스리나가르에 가지 말라는 이유를 좀 수긍할것 같다.
좀 지나면 슬금슬금 심심해진다.
시카라를 불러 달호수에서의 뱃놀이를 한다.
탐크루즈처럼 생긴 젊은 놈이 시카라의 노를 젓고, 이 세상 누구 보다도 행복한 기분을 만끽한다.
위험속에 기회가 있다는 속담을 속으로 중얼거린다.
나 : 너 잘 생겼다. 하루에 얼마나 버냐?
탐쿠루즈 : 5000원. 그것도 요즈음에만 잠깐. 그걸로 식구들 일년 먹고 산다.
나 : 서양 여자들이 너 유혹하지 않더냐?
탐 : 탐크루즈 닮았다고 하면서 막 유혹하는 여자들 많다. 근데 서양여자는 남자가 힘떨어지면 차버린다고 하더라. 그래서 무서워한다.
나 : 오늘 낮에 발생한 시내에서의 총성에 대해서 말해줄 수 있냐?
탐 : 여기 젊은이들은 1000루피(25000원)면 기꺼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다. 어차피 현실은 힘들고, 인도에 맞서 싸운다는 명분도 있다. 테러조직들이 돈을 주고 테러지원자를 모집한다고 들었다.

(스리나가르)"겨울은 어떻게 나라고"
로이터|기사입력 2005-12-14 21:47 |최종수정2005-12-14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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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나가르=로이터/뉴시스】
카슈미르 지방의 무슬림 여성이 14일(현지시간) 이 지역에서 발생한 인도군과 이슬람 분리주의 운동단체간의 총격전으로 부서진 집을 보며 울음을 터트리고 있다. 이날 카슈미르의 굴라다지에서는 인도군과 이슬람 무장단체간 총격전이 발생, 무장단체 소속원 6명이 사망했다.


스리나가르가 인도의 무력지배로 부터 자유롭게 되기를 기원한다.
일정의 마직막날 밤 파티를하고 스리나가르 여행단이 해산했다.
전쟁의 땅 스리나가르를 떠나 댈리로 왔다.
댈리에서 스리나가르에 갔었다고 인도인들에게 말하니, 기절초풍한다.
너 죽었다 살아난 줄 알라고 호들갑을 떤다.

스리나가르가 위험하긴 하지만, 거기서 죽을 확률은 1/10000도 안된다.
오히려 복잡한 델리 길거리에서 교통사고로 다칠 확률이 더 많다고 해야 한다.
사람들은 터무니 없이 공포의 대상을 만들고 그걸 회피할려고 기를 쓰면서 산다.
그게 그의 삶을 죽이는 길이고, 그 대상을 죽이는 길이다.
사람들은 서로 죽이는 길을 간다.
그러면서 불안에 대한 공포가 해소되었다고 안심한다.
그 만큼 변화에 대한 능력이 없다.

댈리공항에서 화물수속 업무를 보던 정말로 예쁜 직원이 있었다.
그녀에게 내가 인도에서 본 최고로 매력적인 여자라고 칭찬해주었다.
얼굴이 빨개지면서 당황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조금더 수작을 걸려고하는데 동행한 파트너가 또 낚시질하네,라는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에게 인도 여행을 할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맙게 생각한다.
당시의 내 감수성만으로는 절대로 인도여행을 하지 않았을거다.
당시의 내 감수성은 인도 같은 카오스의 세계를 받아들일 여지가 전혀 없었다.
인도여행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내 감수성이 많이 변했단걸 이 글을 쓰면서 새삼 깨닫는다.
왜 그녀가 인도를 가자고한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인도를 떠날 때는 이 더럽고 후지고 무질서하고 나태하고 끈적끈적하고 꾀지지한 인도 같은 곳은 다시 오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런 인도에 기회가 되면 다시 가보고 싶다.
시간과 돈이 허락한다면 그 프랑스 젊은놈처럼 서두르지 않고 빈둥거리며 떠돌고 싶다.

'바보는 방황을 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여행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