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쓴 여행기를 읽어보니 어께에 너무 힘이 들어갔다.
요즘 또 우울증이 도졌나 보다.
아니면 마음속에 쌓아두었던 불편함을 누군가에게 쏟아붇고 싶었나보다.
몇년전 심하게 40대 사춘기를 치루던시절 인도를 여행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가 독일을 가자고해서, 그러자고 했다.
근데 상황이 변해서 독일에 갈 수 없단다.
인도에 가잔다.
별로 인도를 가고 싶지 않았는데, 달리 다른 계획도 없었다.
그를 따라서 털래털래 인도를 갔다.
내가 원래 좀 줏대가 없다.
상황에 이리 휙, 저리 휙 휩쓸리기를 좋아한다.
너무 가벼워서 사람들이 내 정체성을 파악하고 나면, 나는 벌써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것 때문에 나에게 상처 받은 사람들 많이 있다.
나이를 먹으면서 무게감 같은게 더욱 불편해진다.
무게있는 사람들 보면 답답해지고, 그의 허구를 까발리고 싶어 근질거린다.
상식적으로 보면 못된 습성일거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세상은 무게있는 그도 필요하고, 가벼운 나도 필요하다.
이게 가벼운 내 변명의 근거다.
델리공항에 내리니 인도특유의 냄새가 확 풍겨왔다.
사람들 말로는 카레냄새란다.
서양사람들이 인천공항에 내리면 마늘 냄새가 날까?
같이 비행기 타고온 대학생들과 패거리를 만들어 택시를 타고 댈리역 앞 외국인거리로 갔다.
가는 도중 기겁을 했다.
댈리는 인구 10억의 인도 수도다.
이런 도시의 거리, 그것도 가장 좋을 수 밖에 없는 국제공항에서 댈리역 앞 까지의 거리가 말 그대로 난장 판이었다.
승용차, 뻐스, 리어카, 소, 마차, 자전거 등 탈것이란 탈것은 모두함께 도로에 뒤엉켜 삑삑 빵빵 덜컹 덜컹 흐르고 있었다.
탈것들의 강물 흐름이라는 말로 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아뿔사 이제 죽었구나,라고 생각했다.
( 정말로 더럽다. 소 개 원숭이 사람 다 함께 섞여산다. 육식을 안하니 동물천국이라고 해야할까)
인도 가기 전부터 인도에는 사기꾼들 많으니 조심하라는 정보를 귀가 아프게 들었다.
잔뜩 쫄은 상태로 빠하르간즈라는 댈리역앞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숙소로 갔다.
무슨 호텔이라고 쓰여 있는데 가보니 우라나라 여인숙 보다 후졌다.
다른 곳을 알아보니 모두다 비슷비슷했다.
호텔이 그렇게 후질수도 있다는걸 인도에 와서 알았다.
상식적 관념이 깨지는 순간 이었다.
우리 돈으로 5000원 정도 주고, 천장에서 빈대 떨어질 것 같은 호텔에서 잤다.
전세계적으로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가이드북이 '론니 플래닛'이다.
원래 여행이란게 그렇기는 하지만 가이드북 너무 의존하면 진짜로 재미있는 우연들을 만날 수 없다.
여행이란 이질적 우연과 마주하기 위한 작위적 액션이다.
이질적인 것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단단한 고정관념을 깨는게 여행의 진짜 의미 아닌가?
그런점에서 여행사가 안내하는 패키지여행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차라리 집에서 여행기 책을 읽는게 더 효과적이다.
아뭏든 담날부터 현실에 부딪혀 보기로했다.
댈리역앞에 가니 여행사들이 수십개가 있었다.
두어군데 들러보니 틀림없는 사기꾼들이었다.
그럴듯하게 사무실차려 놓고, 오피셜 퍼블릭 거버먼트 같은 단어들로 포장을해서 외국인들 등쳐 먹는 여행사들이었다.
( 완전 카오스의 델리역 앞 풍경. 하룻밤 자고나면 코구멍이 굴뚝처럼 시커매질 정도로 매연이 심함)
그 와중에 배가 고파 댈리역 앞 노상 포장마차에서 식사를 했다.
맛도 그럴듯했고, 양도 푸짐했다.
거의 모든 인도 음식은 밀가루를 평평하게 밀어서 탄두리라는 화덕에 구워낸 난이라는 것에, 밥과 카레를 싸서 손으로 먹는다.
반찬은 거의 없다.
그런 음식인데 10루피를 줬다.
우리 돈으로 200-250원 사이 어디쯤 될거다.
10억에 가까운 대부분의 인도 사람들이 하루 1000원 이하로 생활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가 얼마나 잘 사는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부유하게 사는지 인도를 가보고 알았다.
점점 어깨에 힘이들어간다.
어쩔 수 없다.
진지하게 말해야할 그 무엇이 내 안에 있나 보다.
댈리역 앞 여행사들을 포기하고 빠하르간즈 거리 안으로 들어와서 여기저기 알아 보니 목적지 맥그로드간즈로 가는 사설버스가 있었다.
예약한 사람들이 대부분 집채만한 배낭을 맨 배낭 여행객이었다.
사기 당하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확인하고 표를 구했다.
이른 저녁에 출발했다.
밤새 울퉁 불퉁 꼬불 꼬불한 길을 달리는 버스에 시달렸다.
늦은 아침녁에야 맥그로드에 도착했다.
승객은 대부분 서양놈들이었다.
특이한 것은 이스라엘 젊은 놈들이 많았다.
그중 작고 당차게 생긴 이스라엘 여학생하고 계속 행로가 겹치는 우연이 발생했다.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감이 있어서 정치적 질문을 해봤더니 별로 대답하고 싶어하지 않는 눈치였다.
적당한 선에서 서로듣기 좋은 칭찬만 나누었다.
나중에 맥그로드에서 혼자 밥먹다가, 마찬가지로 혼자 밥먹는 건장한 이스라엘 여자애와 긴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녀는 이스라엘에서 군대를 제대하고 인도여행에 나섰단다.
그중 생각나는 대화
인도에 왜 그렇게 이스라엘 여행객들이 많냐?
돈이 적게든다.
너희들 부자들 아니냐?
별로다.
군대 생활 어땠냐?
말하고 싶지 않다.
언제까지 여행할거냐?
군대생활로 번 돈 다 떨어질때까지.
그때 나는 그녀에게서 상처 비슷한걸 봤다.
그걸 치유하고 싶어 그렇게 많은 이스라엘 젊은이들이 인도 거리의 여행자로 나왔던거다.
1. 맥그로드 간즈
( 2000m 정도의 고도에 벌집처럼 모여 산다)
맥그로드 간즈는 중국 국경에 가까운 인도 북부다.
히말라야 산자락의 어디쯤일거다.
이곳에 티벳 임시정부가 있다.
주민들도 대부분 티벳사람들이다.
중국정권의 티벳 무력합병에 저항해서 히말라야을 넘어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이다.
티벳이 중앙아시아 국가이니, 우리와 혈통이 같은 몽고 반점을 가진 사람들이다.
외모도 골격이 좀 크고 뚱뚱한 중국인과 확연히 다르다.
가난으로 꾀지지 한게 우리나라의 엣날 사진첩에 나오는 사람들하고 꼭 같다.
고미숙이 쓴 '열하일기---'에 보면 청나라가 티벳(토번)을 상황제국가로 모시는게 나온다.
조선의 사신단이 오자, 청나라 황제가 상황제인 토번의 황제를 먼저 알현하고 오라고 요구한다.
청나라에 토번 황제의 궁이 따로 있고, 거기에 토번의 황제가 기거하고 있는걸로 나온다.
물론 인접국가와 무력 충돌을 막아 보자는 외교적 수사겠지만, 그만큼 티벳이 강성한 국가였음을 반증한다.
이런 티벳이 중국에 합병당하면서 인도에 망명정부를 세웠다.
망명정부 청사를 가보았다.
우리나라 왠만큼 큰 학교 정도의 건물에 보건부 교육부 국방부 같은 부서들이 모두 있었다.
그날이 일요일이어서 건물만 둘러 보고 왔다.
( 달라이라마. 항상 웃는 얼굴과 장난치기 좋아하는 걸로 유명하다.)
재미있는 것은 티벳이 신정일치 체제다.
달라이 라마가 티벳 임시정부의 최고수반이다.
티벳의 수도 라살라궁에서 몰래 빠져나와 히말라야를 넘은 그는 이곳으로 왔다.
실제로 히말라야를 넘은건 그가 아니라 티벳 불교다.
이걸 계기로 티벳 불교가 서구세계에 소개 되기 시작했고, 서구세계의 주류 불교가 되었다.
달라이 라마가 일년에 몇차례씩 직접 의식을 집전한다는 사원에 가보았다.
티벳사람들과 서양사람들이 엉켜서 발디딜틈이 없었다.
( 남걀사원. 달라이가 있을때는 사람들로 미어 터진단다.)
이런 달라이에게 새로운 고민이 생겼단다.
달라이의 평화적 독립운동 노선에 젊은이들이 반항하기 시작했단다.
무장봉기를 하자는 주장이 조금씩 힘을 얻고 있단다.
참 고민스럽겠다.
그래도 그는 웃을거라는걸 나는 안다.
언제 어떤 사진에서나 그는 웃고 있다.
이게 그의 진짜 힘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우석훈 블로그에 갔었다.
파리 10대학 학생들 활동을 찍어 놓은 사진들이 게시되어 있다.
충격 먹었다.
사르코지를 엎어버리자는 정치적 선동이 모두 코미디나 성적욕망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어깨에 힘 빼고, 웃으면서 가볍게 살자.
오래전부터 잡았지만 자꾸 잊어버리는 화두다.
Tip : 대부분의 인도 음식은 고기가 안들어간다. 더욱이 힌두교에서는 돼지고기를 금기시한다. 맥그로드에 티벳승려들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이 있다. 웨이터도, 프론트도, 주방도 다 승려다. 이런 파격만으로도 재미있는데, 여기에 가면 돼지고기 요리를 판다. 돼지고기 수요가 없으니 값도 엄청싸다. 돼지고기 요리 먹고 싶으면 ---- ㅎㅎㅎ. 빼갈도 판다. 물어보면 금방 찿을 수 있다.
훈빠질 다시 시작 :
요즘 또 우울증이 도졌나 보다.
아니면 마음속에 쌓아두었던 불편함을 누군가에게 쏟아붇고 싶었나보다.
몇년전 심하게 40대 사춘기를 치루던시절 인도를 여행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가 독일을 가자고해서, 그러자고 했다.
근데 상황이 변해서 독일에 갈 수 없단다.
인도에 가잔다.
별로 인도를 가고 싶지 않았는데, 달리 다른 계획도 없었다.
그를 따라서 털래털래 인도를 갔다.
내가 원래 좀 줏대가 없다.
상황에 이리 휙, 저리 휙 휩쓸리기를 좋아한다.
너무 가벼워서 사람들이 내 정체성을 파악하고 나면, 나는 벌써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것 때문에 나에게 상처 받은 사람들 많이 있다.
나이를 먹으면서 무게감 같은게 더욱 불편해진다.
무게있는 사람들 보면 답답해지고, 그의 허구를 까발리고 싶어 근질거린다.
상식적으로 보면 못된 습성일거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세상은 무게있는 그도 필요하고, 가벼운 나도 필요하다.
이게 가벼운 내 변명의 근거다.
델리공항에 내리니 인도특유의 냄새가 확 풍겨왔다.
사람들 말로는 카레냄새란다.
서양사람들이 인천공항에 내리면 마늘 냄새가 날까?
같이 비행기 타고온 대학생들과 패거리를 만들어 택시를 타고 댈리역 앞 외국인거리로 갔다.
가는 도중 기겁을 했다.
댈리는 인구 10억의 인도 수도다.
이런 도시의 거리, 그것도 가장 좋을 수 밖에 없는 국제공항에서 댈리역 앞 까지의 거리가 말 그대로 난장 판이었다.
승용차, 뻐스, 리어카, 소, 마차, 자전거 등 탈것이란 탈것은 모두함께 도로에 뒤엉켜 삑삑 빵빵 덜컹 덜컹 흐르고 있었다.
탈것들의 강물 흐름이라는 말로 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아뿔사 이제 죽었구나,라고 생각했다.
( 정말로 더럽다. 소 개 원숭이 사람 다 함께 섞여산다. 육식을 안하니 동물천국이라고 해야할까)
인도 가기 전부터 인도에는 사기꾼들 많으니 조심하라는 정보를 귀가 아프게 들었다.
잔뜩 쫄은 상태로 빠하르간즈라는 댈리역앞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숙소로 갔다.
무슨 호텔이라고 쓰여 있는데 가보니 우라나라 여인숙 보다 후졌다.
다른 곳을 알아보니 모두다 비슷비슷했다.
호텔이 그렇게 후질수도 있다는걸 인도에 와서 알았다.
상식적 관념이 깨지는 순간 이었다.
우리 돈으로 5000원 정도 주고, 천장에서 빈대 떨어질 것 같은 호텔에서 잤다.
전세계적으로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가이드북이 '론니 플래닛'이다.
원래 여행이란게 그렇기는 하지만 가이드북 너무 의존하면 진짜로 재미있는 우연들을 만날 수 없다.
여행이란 이질적 우연과 마주하기 위한 작위적 액션이다.
이질적인 것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단단한 고정관념을 깨는게 여행의 진짜 의미 아닌가?
그런점에서 여행사가 안내하는 패키지여행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차라리 집에서 여행기 책을 읽는게 더 효과적이다.
아뭏든 담날부터 현실에 부딪혀 보기로했다.
댈리역앞에 가니 여행사들이 수십개가 있었다.
두어군데 들러보니 틀림없는 사기꾼들이었다.
그럴듯하게 사무실차려 놓고, 오피셜 퍼블릭 거버먼트 같은 단어들로 포장을해서 외국인들 등쳐 먹는 여행사들이었다.
( 완전 카오스의 델리역 앞 풍경. 하룻밤 자고나면 코구멍이 굴뚝처럼 시커매질 정도로 매연이 심함)
그 와중에 배가 고파 댈리역 앞 노상 포장마차에서 식사를 했다.
맛도 그럴듯했고, 양도 푸짐했다.
거의 모든 인도 음식은 밀가루를 평평하게 밀어서 탄두리라는 화덕에 구워낸 난이라는 것에, 밥과 카레를 싸서 손으로 먹는다.
반찬은 거의 없다.
그런 음식인데 10루피를 줬다.
우리 돈으로 200-250원 사이 어디쯤 될거다.
10억에 가까운 대부분의 인도 사람들이 하루 1000원 이하로 생활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가 얼마나 잘 사는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부유하게 사는지 인도를 가보고 알았다.
점점 어깨에 힘이들어간다.
어쩔 수 없다.
진지하게 말해야할 그 무엇이 내 안에 있나 보다.
댈리역 앞 여행사들을 포기하고 빠하르간즈 거리 안으로 들어와서 여기저기 알아 보니 목적지 맥그로드간즈로 가는 사설버스가 있었다.
예약한 사람들이 대부분 집채만한 배낭을 맨 배낭 여행객이었다.
사기 당하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확인하고 표를 구했다.
이른 저녁에 출발했다.
밤새 울퉁 불퉁 꼬불 꼬불한 길을 달리는 버스에 시달렸다.
늦은 아침녁에야 맥그로드에 도착했다.
승객은 대부분 서양놈들이었다.
특이한 것은 이스라엘 젊은 놈들이 많았다.
그중 작고 당차게 생긴 이스라엘 여학생하고 계속 행로가 겹치는 우연이 발생했다.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감이 있어서 정치적 질문을 해봤더니 별로 대답하고 싶어하지 않는 눈치였다.
적당한 선에서 서로듣기 좋은 칭찬만 나누었다.
나중에 맥그로드에서 혼자 밥먹다가, 마찬가지로 혼자 밥먹는 건장한 이스라엘 여자애와 긴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녀는 이스라엘에서 군대를 제대하고 인도여행에 나섰단다.
그중 생각나는 대화
인도에 왜 그렇게 이스라엘 여행객들이 많냐?
돈이 적게든다.
너희들 부자들 아니냐?
별로다.
군대 생활 어땠냐?
말하고 싶지 않다.
언제까지 여행할거냐?
군대생활로 번 돈 다 떨어질때까지.
그때 나는 그녀에게서 상처 비슷한걸 봤다.
그걸 치유하고 싶어 그렇게 많은 이스라엘 젊은이들이 인도 거리의 여행자로 나왔던거다.
1. 맥그로드 간즈
( 2000m 정도의 고도에 벌집처럼 모여 산다)
맥그로드 간즈는 중국 국경에 가까운 인도 북부다.
히말라야 산자락의 어디쯤일거다.
이곳에 티벳 임시정부가 있다.
주민들도 대부분 티벳사람들이다.
중국정권의 티벳 무력합병에 저항해서 히말라야을 넘어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이다.
티벳이 중앙아시아 국가이니, 우리와 혈통이 같은 몽고 반점을 가진 사람들이다.
외모도 골격이 좀 크고 뚱뚱한 중국인과 확연히 다르다.
가난으로 꾀지지 한게 우리나라의 엣날 사진첩에 나오는 사람들하고 꼭 같다.
고미숙이 쓴 '열하일기---'에 보면 청나라가 티벳(토번)을 상황제국가로 모시는게 나온다.
조선의 사신단이 오자, 청나라 황제가 상황제인 토번의 황제를 먼저 알현하고 오라고 요구한다.
청나라에 토번 황제의 궁이 따로 있고, 거기에 토번의 황제가 기거하고 있는걸로 나온다.
물론 인접국가와 무력 충돌을 막아 보자는 외교적 수사겠지만, 그만큼 티벳이 강성한 국가였음을 반증한다.
이런 티벳이 중국에 합병당하면서 인도에 망명정부를 세웠다.
망명정부 청사를 가보았다.
우리나라 왠만큼 큰 학교 정도의 건물에 보건부 교육부 국방부 같은 부서들이 모두 있었다.
그날이 일요일이어서 건물만 둘러 보고 왔다.
( 달라이라마. 항상 웃는 얼굴과 장난치기 좋아하는 걸로 유명하다.)
재미있는 것은 티벳이 신정일치 체제다.
달라이 라마가 티벳 임시정부의 최고수반이다.
티벳의 수도 라살라궁에서 몰래 빠져나와 히말라야를 넘은 그는 이곳으로 왔다.
실제로 히말라야를 넘은건 그가 아니라 티벳 불교다.
이걸 계기로 티벳 불교가 서구세계에 소개 되기 시작했고, 서구세계의 주류 불교가 되었다.
달라이 라마가 일년에 몇차례씩 직접 의식을 집전한다는 사원에 가보았다.
티벳사람들과 서양사람들이 엉켜서 발디딜틈이 없었다.
( 남걀사원. 달라이가 있을때는 사람들로 미어 터진단다.)
이런 달라이에게 새로운 고민이 생겼단다.
달라이의 평화적 독립운동 노선에 젊은이들이 반항하기 시작했단다.
무장봉기를 하자는 주장이 조금씩 힘을 얻고 있단다.
참 고민스럽겠다.
그래도 그는 웃을거라는걸 나는 안다.
언제 어떤 사진에서나 그는 웃고 있다.
이게 그의 진짜 힘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우석훈 블로그에 갔었다.
파리 10대학 학생들 활동을 찍어 놓은 사진들이 게시되어 있다.
충격 먹었다.
사르코지를 엎어버리자는 정치적 선동이 모두 코미디나 성적욕망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어깨에 힘 빼고, 웃으면서 가볍게 살자.
오래전부터 잡았지만 자꾸 잊어버리는 화두다.
Tip : 대부분의 인도 음식은 고기가 안들어간다. 더욱이 힌두교에서는 돼지고기를 금기시한다. 맥그로드에 티벳승려들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이 있다. 웨이터도, 프론트도, 주방도 다 승려다. 이런 파격만으로도 재미있는데, 여기에 가면 돼지고기 요리를 판다. 돼지고기 수요가 없으니 값도 엄청싸다. 돼지고기 요리 먹고 싶으면 ---- ㅎㅎㅎ. 빼갈도 판다. 물어보면 금방 찿을 수 있다.
훈빠질 다시 시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