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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먹기 또는 놀기

인도 2

2. 라다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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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날리 지역은 침옆수가 울창하다)

맥그로드에서 마날리로 왔다.
마날리는 인도 최북부 라다크지역에 있는 레라는 도시로가는 경유지다.
맥그로드에서 마날리까지 오는데도 12시간 이상을 야간에 버스로 이동해야 했다.
마날리에 도착해서 레로 가는 버스편을 수소문했다.
이번에는 사설 버스가 아니고 히마찰 주정부에서 운영하는 공용버스였다.
라다크로의 여행은 인도의 한여름 4달 정도만 가능하다.
나머지 기간은 접근이 불가능하다.
히말리아의 추운날씨가 모든 대지를 꽁꽁 얼어붙게하고, 그 위를 눈으로 덮는다.

가이드북에 따르면 마날리에서 머물면서 고도 적응을 해야한다고 나와있다.
맥그로드도 히말라야의 어느 자락이고, 마날리도 마찬가지다.
모두 최소 2000m가 넘는 지역들이다.
이미 높은 고도에 적응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차편이 수소문 되자마자 라다크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찦차들도 많이 이용한다.
공용버스가 제일 저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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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날리에서 레로 들어가는 입구 초엽의 경치. 로탕패스정상 까지 비슷한 풍경이 계속된다. 로탕패스를 넘으면서 사막지형으로 조금씩 바뀐다. 로탕패스 비슷한 5000m 고갯마루를 두개째 넘으면 완전한 사막지형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다국적 배낭 여행단 버스가 출발했다.
레까지 도착하는데 2-3일 걸린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가 보다 했다.
마날리를 벗어나서 얼마지나지도 않아 버스는 나사 모양으로 돌면서 고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신이 빛어낸 경치도, 신의 처소임에 분명한 만년설로 뒤 덮인 깊은 비경도 시간이 지나면서 신비함을 더해갔다.
고도 6000m 고개에서 처음으로 휴식을 취했다.
숨쉬기가 조금 힘들었지만 버틸만했다.
놀라운 것은 그곳을 자전거로 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해가질녁 버스가 더이상 진행할 수 없단다.
산사태로 예정했던 중간 기착지에 도달할 수 없다고 오던길을 버스가 되돌아갔다.
어는 깊은 산골 호텔 앞마당 텐트에 사람들을 부려놓았다.
여기저기 투털대기 시작했다.
밤새 추위에 오돌오돌 떨면서 그 텐트안에서 해가 뜨길기다렸다.
담날 다시 출발했다.
겨우 겨우 버스가 앞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햇빛이 쨍쟁한 한낮에 4000m 고도의 어느 아름다운 평원에서 버스가 드디어 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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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막이 시작되기 직전의 고원 평야)

너무 아름다고 평화로운 풍경의 한가운데 버스가 퍼질러 자빠졌다.
앞좌석의 참하고 예쁘게 생긴 프랑스 아가씨하고 잠깐 그 평원을 산책했다.
기분이 좋았다.
이런 우연한 사고도 참 재밌구나,라고 흥얼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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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점점 사막지형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근데 갑자기 같이 동행한 파트너가 헤롱거리기 시작했다.
고산증 증세가 나타난거다.
같이 동행한 한국인 아저씨와 내가 서둘러 그를 버스 밖으로 댈고 나와 돌보았다.
증세가 갈수록 심해졌다.
이제는 외국인들도 개나 소나 다 나서서 상황이 심각하다고 걱정하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에도 위험했다.
설마 죽지는 않겠지,라고 속으로 위안을하기에 바빴다.

그때 구원의 손길이 닿았다.
가까운 군 부대에서 찦차가 왔고, 그를 후송할 수 있었다.
그를 산소마스크를 씌우고 두어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안정되었다.

그때 그 군인중 한놈과 나눈 대화
인도군인 : 너 몇살이냐?
나 : 46살 먹었다. 너는 몇살이냐?
인 : 23이다. 제(고산증으로 헤메고 있는 그)는 몇살이냐?
나 : 41살이다.
인 : 너 지금 거짓말하고 있지?
나 : 민증까보까!
인 : 믿을 수가 없는데!
나 : 너 제한테 관심있구나?
인 : 버벅 버벅 ---

하였튼 이 군인들이 친절하게 도와주고, 먹을것도 주고, 바로 아래에 호텔이있으니 그곳에 가서 기다리면 버스일행이 댈러 올거라고, 모든 상황을 정리해주었다.
너무 고마워서 나중에 한국에 오면 감사의 표시로 뭔가 보내준다고 주소를 달라니, 그곳은 여름에만 설치하는 임시부대란다.
어디에 있을지 모른단다.
혹시 니네 나라에서 외국인들 만나면 친절하게 대해주면 되는것 아니냐고 군바리 답지 않은 말로 내 속좁음을 무참하게 했다.
그의 친절을 깊이 고맙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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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업중인 도로. 무시로 이런 상황에 부딪힌다. 여러번 경험하면 그런가보다 한다. 그냥 쉬엄쉬엄 놀다가 가야한다. 좀 논다고 세상이 망하는게 아닌란걸 익혀야 인도에서 살 수 있다)

부대 아래로 조금 내려오니 호텔이라는 입간판이 여러개 있었다.
호텔은 없고 텐트 서너동이 횅한 벌판에 늘어서 있었다.
그중 그래도 제일 나아 보이는 텐트로 갔다.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가장 저렴하고 기막힌호텔, 4개월 짜리 가설 몽골식텐트호텔이다.
텐트 안에서 모든 일상을 다 처리한다.
텐트의 천장 한가운데가 뻥 뚤려있어서 여기로 공기가 순환하는 시스템이다.
이제는 그를 돌보는라고 지친 내가 고산증이 느껴졌다.
텐트에서 제일 따뜻해보이는 장소에 무조건 몸을 밀어넣고 쉬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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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형적인 라다크의 풍경. 이런 황무지 어딘가에 풀이 숨어있고, 사람들은 그걸 찾아서 양떼를 몰고간다. 자연의 미세한 변화에 대한 감응력이 뛰어날 수 밖에 없다.)

눈을 떠보니 이미 사위는 깜깜했다.
그때서야 길이 복구됐는지 버스의 일행들이 텐트로 밀어닥쳤다.
좁은 텐트안에서 수십명이 볶닥거리며 자야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낮에는 쨍쟁한 햇빛으로 기온이 높이 올라가지만, 밤만되면 추워지는 기후때문에 바람이 덜 들이치는 자리를 차지할려고 소란이 벌어졌다.
새옹지마라는 역설이 따로 없었다.
바로 옆구리에 출발할때부터 눈이 맞았던 프랑스여자를 끼고, 다른 옆에는 그를 끼고 편안하게 깊이 골아 떨어졌다.(제발 돌맹이 고만 던져라! ㅎㅎㅎ.)

죽을 고비 비슷한 이런 저런 우여곡절을 거쳐 사나흘만에 겨우 레에 도착했다.

레의 고도가 4000m다.
일년중 단 4개월만 농작물 경작이 가능하다.
레는 인간이 사는 지구상에서 가장 척박한 환경이다.
이거에 주목한 인류학자들이 그들의 삶을 조사했다.
결과는 당연히 자원을 가장 적게쓰면서도 가장 행복하게 사는 삶의 원형이 드러났다.
환경운동가들이 이런 삶의 방식을 보존해야한다고 떠들어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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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 )

서구적 삶의 방식에 회의감을 느키던 수 많은 서구의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다.
다른 삶을 보고 싶었고, 그게 가능한지 배우고 싶었을거다.
역설이 벌어졌다.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로 나름의 행복한 삶을 꾸려가던 레의 사람들에게 문화적 충격이 왔다.
저렇게 사는게 행복한 삶이구나!
자기의 삶이 자꾸 누추하고, 비참하게 느켜졌다.
레의 문화와 가치관은 급속도로 서구적 가치관에 잠식당했다.

레에 도착해보니 온통 유럽놈들 천지였다.
거리마다 집집마다 유럽놈들이 차고 넘쳤다.
거기에 나도 한몪 거들고 나선걸 이제야 깨닫는다.
레에 대한 초보적 지식도 없이 친구따라 강남간 결과다.

그러거나 말거나 레는 어차피 외부의 문화적 충격에 따른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낼거다.
그게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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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의 뒷골목 풍경)

어느날 레의 식당에 밥먹으로 간다.
이곳의 메뉴는 어려웠던 시절 우리가 즐겨먹던 수제비 비슷한 음식이 주종이다.
밥을 먹고 주인과 대화를 나눈다.
나이와 호구조사를 마치고.
행복하냐?
안행복하다.
뭐하고싶냐?
일본이나 유럽같은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
학교는 어디까지 댕겼냐?
댈리에서 유명한 대학나왔다.
다른 직장구할 수 없냐?
인도에서 티벳족은 사회적 성공에 일정한 한계가 있다.

Tip : 레의 원주민들의 삶의 방식이란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의 삶의 방식과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원주민들의 모습이 그렇고, 깊은 뒷골목에서 마주쳤던 그들의 웃음이나 표정이 그걸 직관적으로 느키게 해 주었다. 막걸리 비슷한 전통술을 파는곳이 있다기에 물어물어 찾아가 먹어보니, 진짜로 그냥 막걸리 였다. 중앙아시아가 한국 문화의 뿌리라는 것은 이 지역을 조금만 느켜봐도 금방 알 수 있을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