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에 따르면 한국에는 시인이 지나치게 많다.
당연히 시도 너무 많이 쓰여지고, 읽힌다.
내 편협한 주관적 판단도 장정일의 이런 불평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오랜 세월동안 한국에서 쓰여지는 시란 감정의 과잉과 게으름이다.
귀족적 취향을 반영하는 멋진 대상에 자기 주체를 이입한다.
그걸 몇줄의 그럴듯한 문장으로 다듬는다.
그런 몇개의 문장으로, 혹은 단하나의 문장으로 세상을 단칼에 제단한다.
주체의 이입과정에는 감정이 넘치고, 한문장으로 제단된 세상에는 세상이 없다.
그냥 텅빈 세상에 대한 커다란 깨달음만이 사치스럽게 남는다.
이게 내가 아는 쓰레기 같은 허접한 '시' 나부랭이다.
세속적 유효성이라는 면에서 이런 헐렁한 글들은 오히려 세상을 어지럽게만 한다.
분진의 세상에는 차라리 현실에 대한 촘촘한 문장들이 더 필요하다.
세상을 미력하게나마 바꾸는 것은 꾸밈없이 사실에 충실한 산문들이다.
숨겨진 현실을 드러내고 폭로하고 까발기고 고발하는 산문들이 우리 사회에는 더 필요하다.
이게 시인이 너무 많고, 시집이 너무 많이 팔린다고 불평하는 장정일의 타박이다.
젊은시절 주변에 시를 쓰는 사람들이 많았다.
같이 어울려 놀면서도, 항상 느그들의 그 게으름이 싫다고 문질러대곤 했다.
평론가적인 그 한가로움에 짜증질이 났다.
몇일전 해남 녹우당에 갔다가 그런 무리들을 만났다.
하릴없이 감정만 넘쳐나던 그 장면이 불편해서 한쪽 구석에서 담배만 연신 뻑뻑댔다.
내게 쓸모없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대단히 쓸모있는 것일 수 있다.
쓸모가 없어야 크게 쓸모 있다는 '군자불기' 같은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니다.
그러나, 윤두서의 그림을 보러 다시 가본 녹우당 유물전시관은 분노를 치밀게한다.
거기에 100억을 쏟아 부었다니, 기가 막혔다.
게으르고 감정만 넘쳐나는, 현실에 무딘 그런일에 쏟아 부은 그 돈이 아까웠다.
차라리 그 돈으로 지역사회에 묻혀있는 산문들의 역사를 살려보면 어쨌을까?라고 생각했다.
발굴하고 찾아보면, 현실을 충실하게 기록한 재미있고 진실한 산문들이 많이 남아있을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차라리 김남주나 고정희 같은 지역출신 시인들은 어떤가?
시대와 불화하면서 치열하고 고단하게 살아낸 그 이야기들은 아직도 풍부하게 살아있다.
윤선도의 사치스런 감수성은 현실을 감춘다.
그러나 김남주나 고정희의 뀅한 문장들은 거짓없이 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걸 정리해서 그들에 관한 이야기 박물관 하나라도 제대로 만드는게 훨씬 필요한 일이다.
돈을 제대로 쓰기로 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것 같다.
윤선도의 귀족적 감수성이 아니라.
견뎌내면서, 현실에 두 눈을 부릅뜬 감수성이 그나마 사치인 문장을 거짓없이 진실되게 한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 문장들이 최소한 공적인 돈이 쓰여야 할 올바른 장소다.
그게 사람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넘쳐나는 돈이 아깝다.
이 가을에 나는 - 김 남 주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다
오라에 묶여 손목이 사슬에 묶여
또 다른 감옥으로 압송되어 가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번에는
전주옥일까 대구옥일까 아니면 대전옥일까
나를 태운 압송차가
낯익은 거리 산과 강을 끼고
들판 가운데를 달린다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내려
따가운 햇살 등에 받으며 저만큼에서
고추를 따고 있는 어머니의 밭으로 가고 싶다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내려
숫돌에 낫을 갈아 벼를 베는 아버지의 논으로 가고 싶다
아 내리고 싶다 나도 여기서 차에서 내려
아이들이 염소에게 뿔싸움을 시키고 있는
저 방죽가로 가고 싶다
가서 나도 그들과 함께 일하고 놀고 싶다
이 허리 이 손목에서 사슬 풀고 오라 풀고
발목이 시리도록 들길을 걷고 싶다
가다가 숨이 차면 아픈 다리 쉬었다 가고
가다가 목이 마르면 샘물에 갈증을 적시고
가다가 가다가 배라도 고프면
하늘로 웃자란 하얀 무를 뽑아 먹고
날 저물어 지치면 귀소의 새를 따라
나도 집으로 가고 싶다
나의 집으로
그러나 나를 태운 압송차는 멈춰 주지를 않는다
강을 건너 내를 끼고 땅거미가 내린 산기슭을 달린다
강 건너 마을에는 저녁밥을 짓고 있는가
연기가 하얗게 피어오르고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다
이 가을에 나는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다
cf) 그 돈으로 차라리 이런 story musem 열댓개 만드는게 훨씬 필요한 일 아닐까?
(google에서 검색한 Beatles' story musem)
cf) 삐딱하게 시비거는 버릇이 다시 도졌다.
할말 없으면, 나는 진지하고 엄숙한 모드로 바뀌면서, 남에게 괜히 시비건다.
그건 현실이 재미 없다는 내 본능적 반응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