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내 : '루이즈 디살보'의 시점
나-루이즈디살보는 어느날 남편 어니로부터 다른 여자가 있다는 고백을 듣는다.
그 어느날이란게 이제 아이가 태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때이다.
나는 육아의 고단함으로 후줄근하고, 가정경제는 일년에 3,000달러로 버티는 극빈시절이다.
결혼전의 나는 바람의 여자였다.
무엇에도 거칠것이 없는 자유의 여자였다.
결혼전 나는 성해방의 혁명이라도 일으킬것 처럼 모든 남자들을 거느리고 살았다.
이게 남편 어니가 나에게 매혹을 느낀 이유다.
2. 남편 : '어니'의 시점
아내 루이즈는 결혼하면서 갑자기 딴 사람으로 변했다.
세상의 모든 관습이나 규약에 맞짱드던 여자가 갑자기 조신한 가정주부가 되었다.
더이상 내 가슴을 뜨겁게 불태우던 그 여자가 아니다.
내가 사랑하던 여자는 없어지고, 뜬금없이 나에게 한없이 의타적인 여자가 떡하니 앞에 있다.
한마디로 황당하다.
우연히 같이 근무하던 간호사가 내게 다가온다.
나는 실망스런 결혼생활을 의사-매력적인 젊은 간호사의 관계로 탈출해 보자고 덤벼든다.
인간의 신체를 헝겊조각처럼 다루는 나는 심신이 피폐하다.
그게 내가 그 간호사와의 친밀감 넘치는 관계에 너무도 쉽게 끌려간 원인이다.
의사인 내게 그건 언제든 개연성이 있는 탈출구였다.
3. 타협
아내 루이즈는 결혼의 위기를 자신을 들여다 보는 성찰의 기회로 바꾼다.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게 무엇인지 질문한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게 누구에게도 의타적이지 않은 독립적인 자아라는걸 확인하다.
결혼전 자신의 욕망을 다시 찾는다.
그녀는 남편 어니와의 관계를 언제든 깰 수 있는 임의적인 관계로 설정한다.
독립적 자아를 위해 그녀는 보류했던 공부도 다시 시작하고, 차근차근 자신만의 꿈을 성취하기 위한 삶을 회복한다.
남편 어니와 아내 루이즈는 항상 긴장된 갈등과 타협의 관계로 새로운 결혼생활을 시작한다.
서로의 반쪽이 아니라 완벽하게 독립적인 두 자아의 만남이라는 전제를 수용한다.
각자가 가진 독립적 영역이 있고, 그것을 서로 존중한다.
루이즈는 불륜을 호주머니 속의 라이터처럼 곁에 둔다.
마음이 땡기면 바로 꺼내서 불을 붙일수 있도록 적극적인 선택사항의 하나로 사용한다.
불륜이 삶의 방식이 되었다.
그런 방식으로 36년간의 결혼생활을 성공적으로 만든다.
그 이야기가 아내 루이즈의 1인칭 시점으로 쓰여졌다.
4. 잘 꾸민 과장
영어에는 우리말 불륜에 해당하는 표현은 없다.
굳이 만들자면 윤리적인 이라는 ethic에 부정 접두어를 붙여서 non(un, ab, il ---)ethic이라고 표현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실제영어에서 전혀 사용되지 않는 단어들이다.
이 책의 원제는 'adultry'이다.
이걸 번역본에서는 '불륜'이라고 해석했다.
adult가 본래 '성인'이라는 뜻이니, adultry는 '성인들의'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형용사다.
이게 한영 사전에서는 흔히 '타락한'이라고 번역한다.
순수한이라는 'pure' 'innocent'의 반댓말로 사용한다.
adultry의 논리적 반댓말은 childish가 되어야 한다.
생활언어 맥락에서 childish는 '약간 어벙한' '물정모르는' 또는 '속이기 쉬운' 정도로 쓰인다.
명확히 '어른의'에 해당하는 'adult'가 '타락한 또는 불륜의'라고 쓰이면서 언어들간에 논리적 불일치가 발생했다.
언어의 사용에 왜곡과 뒤틀림이 발생한 거다.
이유는 가족제도나 기독교의 성에 대한 억압이 언어사용에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성에 대해서 부정적인 억압적 힘이 '어른의'라는 말이 '타락한' 또는 '불륜의'의 뜻으로 사용되는 변화 과정에 끼어들었다.
더욱 재밌는 것은 원제가 단순히 'adultry'인데, 번역판의 제목에서는 '불륜, 오리발 그리고 니체'라고 했다.
이건 지나친 과장이다.
실제로 책에는 니체에 관한 이야기는 단 한줄도 없다.
물론, 책을 기획할 때 한국시장에 친화적이 되도록 지적 꾸밈이 작동했을거다.
그렇게 이해해도 제목 번역에 과장이 심하다.
그래서 괜히 낚였다,라는 허당한 심리가 생긴다.
그럼에도 휼륭한 책인건 분명하다.
루이스의 너무 너무 솔직하고 용감한 자기고백은 놀랍고도 신선하다.
아마 한국의 어떤 작가가 루이스처럼 자신을 있는 그대로 까발겼다면 살아남기 힘들지 않았을까?
돌팔매 무덤에 갇혀서 매장당했을 개연성이 높다.
그게 번역을 통해서만 이런 책이 세상에 나오는 이유일까?
그런점에서 공지영의 성공은 한국사회의 견고한 윤리체제에 대한 균열의 결과이자 또한 원인이다.
혹시라도 결혼을 원한다면 또는 지리멸렬한 결혼생활에 변화를 원한다면 이 책은 휼륭한 지침서다.
결혼을 사랑하는 관계의 끝장이 아니라, 독립된 자아의 동반성장 정도로 이해한다면 이 책만큼 좋은 지침서는 없다.
번역체 글이 그렇듯이 앞 부분의 잘 안 읽히는 부분을 통과하면 뒤로 가면서 술술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