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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권력과 욕망을 말하다



도서관에서 다른 책을 찾다가 이 책을 들고 왔다.
근대이성을 건축에서는 어떻게 설명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아마도 지적 허영심이 동기였을 거다.

서너쪽을 넘기다가 그냥 방 구석에 처박아 두었다.
방바닥에 굴러 다니는 책을 반납할려고 챙기다가 책표지 뒷면에 있는 저자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저자의 사진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꾸역꾸역 다 읽었다.
책 편집자의 의도에 완벽하게 낚였다는 고백이다.

건축이란게 이런식으로 인간의 욕망을 조작하는 힘이 있다.

공간의 분할과 축성으로서 건축은 권력의 구현 방식을 말한다.
공간을 잘 읽어라 그러면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 수 있다.
공간을 잘 읽어라 그러면 그 공간이 당신에게 무얼 욕망하도록 조작하는지 알 수 있다.
이게 이 책의 종합적 요약이다.
건축에 관한 기본 교양을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저자는 그 이상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판옵티콘과 같은 권력의 도구로서 건축을 뛰어넘을 수 있는 대안적 공간은 무엇일까?
인간들의 자유롭고 민주적 소통을 위한 건축은 무엇일까?
자연과 소통하는 건축은 무엇일까?
여자니까! 하다못해(?) 여성적 건축은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과 그에 대한 나름의 치열한 고민의 결과 같은게 없다.

그런 질문이 없는 평이한 교과서 같은 책 구성이 좀 불만이다.
궁리가 부족한 궁리를 탓해야 하나, 아니면 저자를 탓해야 하나?

예쁜 여자한테 낚였는데, 알고 보니 그냥 예쁘기만 했다.
뭐, 그런 말이다.

그건 그거고, 저자가 교생선생님의 한마디 때문에 건축에 매달려 살고 있다는 말에는 쫌 서늘했다.
윤영아 예쁜 건물 많이 지어라!
그러면서 퐁피두센터 같은 장소들을 기억하게 했단다.
그게 그녀가 돌고 돌아 건축과 결혼한 이유다.
 
나도 아이들 가슴에 이런식으로 불을 싸질르고 싶은데, 애들 대가리만 보면 꼭 꼰대같은 잔소리만 주저리 주저리 늘어 놓는다.
그게 싫은데도 그러고 있는 나를 발견할때면, 갑자기 모든걸 내 팽개치고 싶다.
요즘 그런 욕망이 더욱 깊다.
따땃한 아프리카 같은 곳에 가서 실컷 자전거나 타면서 빈둥거리며 놀고 싶다.
나는 천상 한량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