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예쁜 여자들이 쓴 책에 꽂힌다.
일종의 관음증과 같은 태도가 작동할까?
그러면 어쩌랴!
그게 재미있고, 내 생각을 풍성하게 해주는데.
예전에 페미니즘 강의를 두학기 연속으로 들었다.
모두 여대쪽과 쪼인트로 개설된 강좌였다.
한마디로 물이 좋았다.
강사도 여자 였는데, 미국에서 학위 마치고 갓 들어온 싱싱한 아줌마였다.
대학원 강의라 거의 20대 후반의 남녀들이 구성원이었다.
90년대 초반의 페미니즘이란게 뭐 별것이 있겠는가?
단순하게 자유주의 페미니즘, 사회주의 페미니즘, 성정치학 등의 이론을 나열한게 전부였다.
가부장적 체제의 기득권을 주렁주렁 걸친 사람들이 벌이는 페미니즘 논쟁은 한마디로 가증스러웠다.
뒤돌아 보면, 이론만 풍성하고 남자건 여자건 생활은 가부장제에 철저히 속박된 그런 모습이었다.
껍닥과 속이 완전히 표리부동한 그런 말의 진수성찬이었다.
나도 그런 전형적인 부류중의 하나였다.
가부장의 생활을 덕지덕지 걸치고 페미니즘으로 논문을 써서 허접한 학회지에 발표도하고 그랬으니 말해 무엇하랴?
지금 그걸 읽어보면 쪽 팔려서 얼굴이 뜨뜻해진다.
그럼에도 그게 내가 페미니즘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진 이유다.
그렇고 보니 관음증은 아니네.
아니 관음증이 나에게 애초에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했나?
얼치기지만, 당시에 공부했던 페미니즘은 내가 세상을 들여다 보는 조금 다른 시선을 준게 분명하다.
위선적이었지만, 그점에 대해서는 그때의 공부가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목수정의 이번 책을 읽으면서 페미니즘이 말로서가 아니라 일상으로서 세상에 자리잡았음을 느꼈다.
비록 그게 여전히 소수의 생활양식이겠지만, 어쨓든 세상은 그렇게 바뀐다.
정희진이 날카로운 이론가라면 목수정은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양수겹장을 하는것 같다.
너무 현란하게 배경지식을 들이대서 좀 난삽하기도 하다.
그게 지적 허영심에 찌든 나 같은 마초 아저씨들을 설득하는데 효과적이기는 하다.
독후감 쓸려고 시작했는데 자랑질 비슷한 개인사만 잔뜩 늘어 놓았다.
'야성의 사랑학'을 한마디로 정리하라면 관습이나 제도 같은 현실의 규제장치에 주눅들지 말고 살라는 말이다.
야성이란 본능을 말하고, 사랑이란 삶이라고 다시 번역해도 좋다.
제도가 강제하는 노예의 삶이 아니라 순수하게 본능적 직관에 충실한 삶을 살라는 거다.
근데 그게 어디 쉬운가?
보통 내공으로 되나?
또 다시 김영민식으로 정리할 수 밖에 없다.
공부를 통해서 좋은 몸을 만들고 이드거니 몸으로 내파하는 거다.
아이고 이 놈의 김영민은 언제 털어내나?
이론 과잉인 글에서 뒷부분의 실천 팁이 내게는 차라리 신선했다.
기억을 위해서 제목만 정리하자면.
야성을 일깨우는 아홉가지 방법
1. 피부아래 잠든 촉각 일깨우기
2. 지구에 발자국으로 입 맞추기
3. 억압을 배설하기, 눈물, 웃음, 때론 구토
4. 꽃 속에 깃든 우주를 만나기
5. 낯선 사람에게 말 건네기
6. '퍽' 소리가 나게 매일 포옹하기
7. 아름다운 것에 대해 주저 없이 열광하기
8.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9. 사랑을 원한다면 오로지, 그 하나에 집중할 것
정리 결벽증을 동원해서 이걸 내 언어로 단칼에 번역하면 '니 삶을 사랑하라'이다
정리 해놓고 보니 내 언어가 아니네!
니체의 '운명애(Amor Fati)'네!
아이고 이 놈의 현학질은 언제까지 따라 올라나!
아뭏든, 다 소용없고 오직 니 인생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다는 말이다.
조국이고, 민주화고, 자식이고, 나발이고 니 인생이 제일 중요하니 오직 그것에 열중하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