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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동양고전 독법 : 강의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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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 순자, 유가와 법가 사이

1. 유가의 정통에서 벗어나 이단아가 되다.


순자의 하늘에 대한 생각(순자의 천론)은 그냥 물리적 천이다.
인간과 하늘 사이에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
천리, 천명, 천성 같은 것들은 허구라고 선언한다.
순자는 천명론이 아니라 천론을 말할 뿐이다.
천명이란게 없고, 그저 물리적 하늘만이 존재한다는 거다.

'별이 떨어지고 나무가 울면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여 이 무슨일인가 한다. 이것은 천지와 음양의 변화이며 드물게 나타나는 사물의 변화일 뿐이다. 괴상하다고 할 수는 있지만 두려울 것은 없다. --- 천론'

이렇게 되니 천리를 따라 인의예지 4단이 어쩌고하는 정통 유가의 논리적 기반이 소멸해 버린다.
결과로 순자는 후대에 유가의 정통에서 배척 받아 이단으로 자리매김 된다.
 
도덕적 근원으로서 천리를 제거하자, 순자에게 남은 것은 날것으로서 세상과 인간이다.
세상과 인간을 어떻게 다룰것인가가 순자의 문제설정이다.
당연한 논리적 수순이 교육이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순자는 여기서 예를 제시한다.
인간에게 선단善端은 없지만 인간은 인仁·의義·법法·정正을 알 수 있는 지知와, 그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cf) 맹자는 선단善端으로 부터 인의예지 라는 4단을 이끌어 내는 논리적 비약을 통하여 이론구성을 한다.
순자는 이런 논리적 비약을 자제하려고 애쓴다.
엄정하게 좀더 자연과학적 진실을 추구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예의 내용을 구성 하면서, 칸트의 오성의 형식과 같은 형이상학적 비약을 하지 않을수 없는 국면에 부딪힌것 같다.
맹자로 일정부분 회귀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맹자를 상당부분 극복한건 확실해 보인다.


순자에게 예란 현실세계 속에서 올바른 것이라고 규명된 분별적 지식이다.
이런 예란 가르쳐서 길러져야 하는 것이다.
이걸 좀더 밀고 나가면 예의 자리에 법을 대입할 수 있다.

순자에게 예란 인간들 사이에서 마땅히 따라할 것으로 규정된 법이 된다.
예법을 길러 인간의 본성을 순화시킬 수 있다는거다.

대부분의 유가들이 치인治人에 앞서서 수기修己를  앞세운다.
순자는 치인治人이라는 사회적 환경을 더욱 중요시한다.
순자가 정통유가에 비해서 현실적인 사회제도론자라는것이 확연하다.

결국 순자의 문하에서 공부한 '이사'와 '한비자'는 순자의 '예'를 '법'으로 치환한다.
그게 법가사상이다.
순자는 유가와 법가를 잇는 다리의 역할을 한 셈이다.

cf) 유가와 결정적으로 갈라지는 순자의 자연과학적 천론은 당시의 천문학 발전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자연과학적 이해의 발달이 순자가 신비주의적 천명론을 털어낸 계기라는거다.

cf) 순자의 예론은 봉건적 제후들을 밀어내고 새롭게 등장하는 관료나 지주계급을 대변한다고 말한다.
순자는 춘추전국시대 이전 주나라의 중심계급이었던 봉건제후들이 춘추전국 시대 분쟁의 뿌리라고 인식하는 것 같다.
순자의 문제설정은 철기의 보급과 함께 급격한 생산력 발전으로 등장한 지주계급과 관료계급을 뒷 받침하는 것이 역사발전의 방향이라고 인식한다고 보아야 한다.


10장 : 법가와 천하통일

한비자는 법가를 사상적으로 완성했다.
이사는 법가사상을 현실속에서 구현하여 진나라의 천하통일을 이루었다.
둘 다 순자 문하에서 동문수학 했다.

말이 어눌했던 한비자는 이사의 모함에 빠져 죽었다.
달변가였던 이사는 자신이 만든 법에 의해서 허리가 잘리는 처형을 당했다.

이사에 의한 진나라의 천하통일로 춘추전국 시대가 정리된다.
춘추전국시대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를 놓고 벌어진 사상투쟁은 결국 법가의 유효성이 최종적으로 입증되었다.
법가가 실현한 법치를 통한 천하통일은 강력한 중앙집권적 권력을 기반으로한 관료제사회였다.

법가들은 이런 강력한 중앙집권적 권력기구가 백성들의 고통을 해결하는 길이라고 보았다.
춘추전국 시대가 만들어내는 모든 전쟁의 최종적 피해자는 결국 보통의 백성일 수 밖에 없다.
법가들은 이런 전쟁의 뿌리가 봉건적 제후시스템에 있다고 보았다.
이걸 해소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가체제와 관료사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법가사상의 진보성은 법에 대한 한비자의 인식에서도 드러난다.
법이 성문화 되어야 한다.
전국적으로 공포된 공지법이어야 한다.
전국적인 법의 통일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함으로서 법의 예외지대를 삭제해 버렸다.

법가의 사상은 법의 공개성, 공정성, 개혁성으로 제후나 군주의 임의적 권력을 법에 귀속시키는 진보성이 있다
.

법가의 진정성에 대한 일화

당계공堂谿公이 한비자에게 충고합니다.
“오기吳起와 상앙商鞅 두 사람은 그 언설이 옳고 그 공로 또한 대단히 컸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오기는 사지가 찢겨 죽었고 상앙은 수레에 매여 찢어져 죽었습니다. 지금 선생이 몸을 온전히 하고 이름을 보전하는 길을 버리고 위태로운 길을 걷고 있는 것이 걱정됩니다.”

이 충고에 대한 한비자의 대답이 그의 인간적 면모를 엿보게 합니다. 동시에 법가 사상의 진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한비자의 답변은 그 요지가 다음과 같습니다.

“제가 선왕의 가르침을 버리고 (위험하게도) 법술을 세우고 법도를 만들고자 하는 까닭은 이것이 백성들을 이롭게 하고 모든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지럽고 몽매한 임금(亂主暗上)의 박해를 꺼리지 않고 백성들의 이익을 생각하는 것이 바로 지혜로운 처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한 몸의 화복禍福을 생각하여 백성들의 이익을 돌보지 않는 것은 탐욕스럽고 천박한 행동입니다. 선생께서 저를 사랑하여 하시는 말씀이지만 실제로 그것은 저를 크게 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cf) 책을 덮으며 신영복을 최대한 간명하게 해석하기
 
신영복은 법가가 시대적 문제설정에서 제일 유효하다고 본다.
춘추전국 시대를 통털어 임금을 죽인것이 36번, 나라를 멸망시킨게 52번이던 시대를 정리하는 방법론으로서 법가가 제일 유효했다는 거다.
신영복은 어떤 사상을 그 시대와의 대비속에서만 해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걸 넘어서 초월적인 지위를 갖는 사상이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는 거다.
법가의 사상도 춘추전국시대를 정리하는 사상으로서만 유효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진나라의 통일이 안정되고 황제라는 중앙집중 권력과 위계적 계급사회의 출현은 유가의 천명론 같은 위계적 논리를 요구한다고 본다.
유가의 득세는 법가를 통하지 않으면 불가능했다고 보아야 한다.
역사는 인문은 삶은 아이러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