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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경치

가사노동과 노망

1. 김치 담기
사람들이 별쭝맞다고 흉 볼수 있겠다.
오랫동안 해 보고 싶었던 일중의 하나가 김치 담그기다.

몇년전에 시장에서 고추를 사 두었다.
텃밭에 배추도 수십포기 잘 길렀다.

고추는 꼭지를 제거하고 깨끗하게 닦아 두었다가 빻아야 한다.
그걸 차일피일 미루다가 해를 넘겼다.
다음 해 여름에 벌레가 생겼다.
할 수 없이 햇빛에 내어 말렸다.
그걸 방앗간에 가서 빠 달랬더니, 그냥 버리란다.
게으름을 들킨것 같아 창피해서 얼굴이 뜨뜻해졌다.

더운 바람을 맛고 자란 배추는 쓴맛이 있다.
그에 비해서 가을 찬 바람을 쐰 배추는 달달한 맛이 난다.
이런 달달한 배추를 보통 김장용 배추로 사용한다.
깜냥으로, 김장을 위해서 때를 맞추어 배추를 심었다.
그것도 역시 제때 간수하지 못했다.
겨우내내 신선한 야채대용으로 노지에 그대로 둔채 배추를 뽑아 먹었다.
그러다, 다음해 봄에 배추에서 고동이 나왔다.
고동이 나오면 베린거다.
그래도 아까워서 몇포기 뽑아 씻어서 소금물에 담갔다.
몇일이 지나도 숨이 안죽고 다라이에서 배추가 파릇하게 둥둥 헤엄치고 다녔다.
누군가에게 물으니 소금물이 아니라, 그냥 소금을 쳐야 한단다.
할 수 없이 그것도 그냥 버렸다.

결국, 김치 담그기는 실패했다.

그 뒤로는 다시 시도하지 않는다.
김치 담그기가 그냥 되는게 아니다.
엄청 많은 노동력과 정성이 필요하단걸 이제 잘 안다.
 
2. 마늘 빻기
이건 좀 잘 한다.
잘하는 이유는 시간과 정성이 그리 많이 안들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마늘 사다가 씻어서 절구통에 넣고 빠사서 두고두고 쓰면 된다.

3. 장(된장, 고추장, 간장) 만들기
오랫동안 생각했다.
생각만했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언젠가 내 손으로 꼭 만들고 싶다.

4. 세탁하기
세탁기로 돌릴 옷과 세탁소에 맞겨야하는 것을 분류하는게 가장 중요하다.
분류만 잘 하면 그 다음은 별 어려움이 없다.
그냥 세탁기 돌리기만 잘하면 된다.
기계 돌리는 번거롬만 감수하면 된다.
일주일에 최소한 한번은 돌려야 한다.
그걸 반복적으로 게으름 부리지 않고 하는게 중요하다.

5. 다림질
한두번이라도 세탁소에 맞겨지는 옷은 다림질의 틀이 잡혀있다.
그걸 스텐드형 스팀기로 한두번 쐬어주면 주름이 말끔히 정리된다.
구겨진 옷들도 스팀만 쐬어주면 반듯하게 된다.
문제는 스탠드형 스팀다림기가 북데기가 커서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가격도 쫌 나간다.
술먹고 헤롱헤롱한 상태에서 이걸 질렀는데, 술먹고 저지른 일중에서 유일하게 잘한 짓이다.
자랑할게 없으니 별걸 다 자랑한다.ㅋㅋㅋ.

6. 청소하기
이게 제일 어렵다.
그냥 더럽게 막 산다.
그러다가 술먹고 잔뜩 취한날, 정색하고 달려들어 해 치운다.
따뜻할 때는 최소한 일주일에 한번 정도 그런게 된다.
추운 날씨에는 한달에 한번도 어렵다.
돼지우리 비슷할 때 쯤에야 겨우 몸이 움직여 진다.

7. 음식 만들기
하루에 보통 두끼니를 식당에서 해결한다.
해결해야할 끼니는 아침인데, 그냥 아무렇게나 두어 숫갈 우적거리면 된다.
근데 술먹은 다음날 아침은 좀 복잡하다.
아무래도 따뜻한 식사를 해야한다.
급할때는 작은 냄비에 밥과 물을 붓고, 냅다 끓여 먹는게 쉽고 편하다.
음식이 잘 상하는 여름에는 이게 아침해장으로 좋은 방법이다.
요즘처럼 쌀쌀한 계절에는 아무 국이나 한솥 가득 끓여 놓고 필요할 때마다 뎁히면 된다.
국은 왠만큼 간만 되면 무얼 넣든 먹을만하다.
내가 생각하기에 제일 만들기 편한 음식이 국이다.
무조건 간만 적당히 만들어서 끓이면 된다.

8. 일상의 힘으로서 반복
별 시덥잖은 한심한 이런 얘기를 주절거리는 이유는, 시덥잖은 이런것들이 소중하다는걸 알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사소하고 작은 일상이 얼마나 중요하고 결정적인지 옛날 보다는 훨씬 잘 안다.
옛날에는 크고 거창한 것들에 맘을 빼았겨 살았다.
물론 그런게 지금도 여전하다는걸 안다.
그럼에도 일상이 잘 안챙겨 진다.
이유는 잘 안다.
다, 그놈의 웬수 같은 술 때문이다.
몸베리고, 돈 날리고 술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는 글러버렸다.

어제 모처럼 장을 봐서 국을 끓이고, 마늘을 빠수면서 좀더 소소한 일상을 잘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다짐이 며칠이나 갈까?
안 봐도, 비디오다.
결국, 술먹고 노는 일과 일상을 잘 챙기겠다는 마음 사이를 왔다리 갔다리하면서 세월이 간다.
나이와 함께 삶의 어지러움이 더 많아졌다.
이런걸 노망이라고 하나!
그래도 할 수 없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