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어 가는 세기말의 우울이 만연한 시절이었던 1998년 선생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젊었던 우리를 불태우던 깃발들도 여기저기 버려진 채로 굴러다니고, 길 잃은 젊은 우리들은 허둥허둥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이 세속의 표준화된 요구들에 굴복했습니다. 아무런 비판적 성찰도 없이 누군가는 승진이라는 분명한 표식을 향해서 달려갔고, 누군가는 그저 생존이라는 막연한 바람에 몸을 맡겼습니다.
그럼에도 선생님은 의연하게 그리고 단정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흐트러짐 없이 그저 좋은 선생으로 그리고 동료 교사로 항상 굳건하게 계셨습니다. 누군가 그런 선생님의 모습이 로버트레드포드처럼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항상 잘 갖춘 매무새 그리고 단정한 생활이 당대의 가장 모던한 인물의 아이콘인 레드포드를 상기시켰을 겁니다.
그럼에도 알 수 없었던 것은, 세기말의 퇴폐에 편승하여 얄팍한 냉소로 현실에서 도피만 하던 무기력한 후배들에 대한 배려였습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뻔뻔하게 과거의 언어들을 깨끗하게 지우고 세속의 요구에 편승하여 승진을 향해서 달려갈 후안무치함도 없었고, 그렇다고 무너져 버린 길을 포기하고 또 다른 길을 뚫어 낼만한 힘도 용기도 지혜도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들 대부분은 냉소의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서 세기말의 퇴폐를 안주삼아 하루하루를 겨우 겨우 버텨냈지요. 냉소로 위장한 패배의 모습이 너무도 분명했지요.
그런 후배들을 선생님은 항상 따뜻하게 안아주었습니다. 선생님 주변에는 항상 그런 후배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런 후배들을 안아서 다독여 주었습니다. 아마도 그 시절을 겨우겨우 버티게 한 성실함이나 진실한 무언가가 우리들에게 있었다면 그건 온전히 선생님에게 빚진 것 이라는 걸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겁니다. 같이 근무했던 여선생님이 빈틈하나 없이 단정한 선생님을 제일 존경한다고 말 할 때, 같은 남자로서 마음속에 질투심이 일렁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렇게 우리들의 버팀목이었고 역할 모델이었던 선생님을 20여년이 훌쩍 지난 작년에 같은 1학년 교무실에서 만났습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했지요.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습니다.
선생님은 항상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존경의 대상이었으면서도, 세속적 승진으로 부터 초연한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하셨습니다. 학교현장에서 그런 선배 하나 만나는 게 흔하고 쉬운 일이 아님을 이제 잘 압니다. 그런 점에서 선생님은 후배들을 위하여 하나의 휼륭한 모범을 살아내셨습니다. 세속적 성공이라는 채움 대신에, 흔들림 없는 충실성으로 평교사라는 비움의 삶을 채워(비워)내는 일이 범상한 일이 아님을 잘 앎니다. 평생을 사심 없이 평교사로 당당하게 살아주신 점에 대해서 감사드립니다.
어느 시대나 선생질이란 눈먼 아버지 오이디푸스와, 그의 손을 잡고 사막을 떠돌았던 안티고네의 운명이라고 합니다. 아버지 오이디푸스가 현실의 윤리와 규범을 지켜야 한다는 상징체계로서 선생질이라면, 그 아버지의 예정된 불가피한 패배를 보듬는 딸로서 안티고네의 행위는 현실을 뛰어넘는 새로운 윤리와 규범의 지평을 만들어내야 하는 선생질의 또 다른 이면이겠지요. 현실의 윤리와 규범을 재생산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뛰어넘는 새로운 대안적 윤리와 규범에 대한 상상력을 잃지 않아야 하는 선생질이라는 직무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선생질이란 현실의 지킴과 현실의 타파라는 서루 상충하는 분열증적 갈등을 운명으로 선택한 삶이겠지요. 그 길을 선생님은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으면서 살아내려 애쓰시면서, 몸과 마음이 닳도록 40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18세기의 계몽조차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대한민국의 학교 현장이라는 현실을 받아서, 그걸 이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걸 깨뜨리고 새로운 근대적 합리성의 세계를 써 내려가야 하는 일의 고난을 잘 이겨내셨습니다. 구태한 봉건성과 일본 제국주의의 군사문화로 찌든 학교현장을 최소한의 민주적 합리성만이라도 갖춘 현실로 만드는 일의 노고를 마다하지 않은 시간들을 살아 내셨습니다. 그러한 길의 한 모퉁이에서 선생님과 함께 했던 시간들에 감사드립니다. 98년 ‘교육희망’ 신문 하나도 마음대로 배포할 수 없던 시절, 불법노동조합 전교조라는 조직을 현장에서 든든하게 지켜주시던 선생님의 노고를 지금도 가슴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하루하루의 교직생활이 희망 없이 버텨내야하는 일이 되어버린 시대에, 그래도 선생님이 끝까지 버텨내 주어서, 없는 희망을 다시 부여잡으려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선생으로서 지켜야 할 규범과 성실과 착함이라는 틀로부터 자유로우셔도 됩니다. 누구보다도 선생님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짐들은 후배들에게 맡기시고, 보다 자유롭게 꿈꾸시고, 지금보다 오래 그리고 멀리 외출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