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는 선언인데!
나이가 먹으니 친구가 괴롭네.
세속적으로는 나이를 먹을수록 친구가 정밀해진다는게 상식이겠지.
원래 성정이 괴팍해서 그런지 친구가 괴롭네.
성정이 괴팍하다는 것은 살아온 삶의 습관이 그렇다는 거겠지.
어떤 인간의 정체성이란 그가 살아온 습관의 흔적이겠지.
내가 살아온 습관중의 어느 부분인가 범상하지 않다면.
친구로서 살아온 자네도 그렇겠지.
친구란 동일성으로 묵인 친밀성이니.
그걸 누구보다도 잘 이해해줄 거라 생각하네.
뜨거운 여름을 식혀주는 서늘한 그늘이고.
서늘한 가을을 쬐어주는 따뜻한 햇살이고.
추운 겨울을 덮여주는 포근한 훈풍이고.
바람 많은 봄날을 막아주는 투명한 유리창이었던 모든걸 고맙게 생각하네.
아무리 힘을 다해서 짜도.
세속은 역설의 구멍이 숭숭한 헐거운 채인것 같네.
그 숭숭한 구멍속으로 단단한 알갱이들이 미끄러 빠져나가듯이.
무성한 넝쿨로 서로를 묶었던 끈들이 스르르 풀리는걸 나도 어찌할 수가 없네.
알면서 모르는척 한번 살아보세.
친구라는 끈으로 서로를 묶기에는 나이를 너무 먹었네.
아직도, 세속적으로는 충분히 나이를 먹지 못했네(^^).
서로 조금씩 다른 삶의 무늬를 빗고.
그러다가 또 만나고.
살아보니.
삶이란, 길이 사람을 잃고.
사람이 살아가는 길을 잃게 되데.
잃어버린 길 위에서 다시 길을 찿고.
찿은 길위에서 다시 길을 잃어버리는 걸 어찌하겠는가.
길을 잃지 않는다면 좋겠지만.
그건 아무런 무뉘가 없고.
그렇다고 무작정 헤멜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할 수 없이 서로 다른 무뉘를 그릴 수 밖에 없네.
그게 길을 잃고, 길이 사람을 잃은 세속을 살아가는 방편일것 같네.
cf) 이 글은 김영민의 '동무론'에 기대고 있다.
일상의 경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