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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경치

2011년 정리 : 꽝꽝

꽝연수

올해 내가 가르친 학생중에 연수라는 여학생이 있다.
20여년이 넘는 내 교직생활에서 미모가 제일 두드러진 학생이다.
세속의 언어를 빌려 뻥을 까자면, 형광등 100 x 100 정도로 자체 발광한다.
이목구비가 어찌나 섬세한지 만화에서 금방 뛰어나온 모습이다.
근데 수업을 5분만 진행하면 확 깬다.
말귀도 더디고, 수업에 대한 집중력도 전혀 없다.
그래서 붙여준 별명이 '꽝'연수 다.
그래도 이 아이는 맹한 표정으로 헤헤거린다.
'꽝'은 삭제하고 오직 '예쁘다'는 말에만 집중한다.
비난을 했는데, 상대가 그걸 칭찬으로 받아들이면 대책이 안선다.
그럴때, 뒷통수를 '꽝'하고 얻어맞는 기분이 든다.
한마디로 표리가 일치하지 않아서 쫌 당혹스런 아인데, 그래도 항상 긍정적이고 낙천적이고 명랑해서 좋다.


꽝만수

작년에 제일 속을 많이 썩였다.
나는 학년초에 '어떤 경우에도 체벌이 없습니다'라고 선언한다.
실업계 학생들은 초-중학교 과정에서 체벌에 인이 박혀있다.
칭찬한번 들어 본적도 없고, 자신을 제대로 긍정하는 체험 한번도 없다.
오직 알고 있는 경험이란 자신이 찌질하고 못나고 바보라는 비난뿐이다.
만수는 여기에 가족해체라는 고민까지 있으니,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감정상태였다.
언제나 수업을 방해했고, 네가 어디까지 견디나?보자고 매시간 마다 시험을 걸었다.
그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여러번 꼬꾸라진 경험이 있다.
그래서 만수에게는 애정보다는 진절머리가 나는 감정이 더 강하다.
근데 이 아이가 가슴벅차게 다가오는 사건이 '꽝'하고 터졌다.
사건이란 어떤 경험을 전후로 세상이 다르게 변화되는 질적 변곡점을 말한다. 
만수가 학교 축제 무대에서 밴드를 거느리고 '비와 당신'이라는 노래를 부르는데 그게 기가 막혔다.
어찌나 감동적인지 꼭 안아주고 싶었다.
괜히 콧등이 시큰해졌다.
'살다보니 이런 경험도 다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꽝'하고 터진 사건에 충격을 받아 만수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지난 연말 '비와 당신'이 내 애창곡의 하나가 되었다.

http://www.youtube.com/watch?v=JyjdGgoNkVU&feature=related

두사례를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은 2011년은 어느 해보다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자랑이다.
괜히 내 행복을 자랑질하고 싶은 기분이 들어서 쓴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