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향연'에서 몇대목 슬프거나 재미있거나 쓸쓸한 대목을 옮겨 적는다.
잊지 않기 위해서.
기다리면 올것은 온다. 견디느냐 못 견디느냐의 차이뿐이다.
이틀 뒤 다시 이천 원을 구해 형을 찾아갔다.
그날 밤 나는 이루어진 사랑의 진부함에 대해 이야기 했다. 여자가 떠나고 나자 찾아온 자유와 또 다른 연애에 대한 가능성, 천이백 통의 편지를 받은 여자가 결혼을 한 것은 사실이나 우체부하고 그만 눈이 맞아버렸다는 것을 그는 들었다. 시내버스 타고 갈 때 그냥 보내 버릴 것을 , 내가 미쳤지, 날마다 후회하는 친구, 산맥을 넘고 지옥을 다녀온들, 어떤 지랄을 해도 성공한 사랑은 월급봉투와 싸움과 아이들 울음 소리의 일상으로 바뀌게 마련이며, 그래서 다들 혼자였을 때가 그리워 땅을 친다고 했고 그는 들었다.
얼마 뒤 나는 다시집을 떠나게 되었고 여동생도 대학생이 되어 먼곳으로 갔다. 그리고 그도 오래도록 보이지 않았다.(행방을 알 수 없는 한사람에 대하여). p.70.
우리는 슬슬 거쳐 온 직업을 대기 시작했다. 지방에 학생부군 밖에 쓸게 없는 사람은 현장 관록으로 버티는 법. 내가 포장마차를 대면 그는 중국집과 일식, 한식집을 댔다. 내가 4.5톤 복사트럭을 대면 그는 8톤 트럭을 댔다. 오오. 밀리는군. 내가 귀걸이 노점상을 대면 금은방을 댔다. 내가 현장 잡부를 대면 목수를 댔다. 거듭 밀리던 내가 회심의 일격으로 선원 경력과 푸른 바다를 대자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제과점, 구두닦이, 유리공장, 사탕공장, 광케이블공사, 건강보조식품 수금, 출판사, 술집 지배인, 또 일일이 적기 귀찮을 정도로 수많은 직업을 한꺼번에 몰아 들이댔다.
막판 소나기 펀치에 나는 휘청거렸고 그는 소주 잔 그러잡고 고개 들어 내려다보았다. 이겼다는 표정 뒤로 노란 은행잎이 무리지어 흩 날렸다. 내가 서른 하나, 형이 서른다섯, 그동안 각자 해오던 면병수행面甁修行을 같이 시작한 게 그즈음이었다.(시인 유용주에 대한 이야기. 지평산을 향하여 걷는 사람아). p.104.
사과는 쪼개 동서남북으로 던지고 소주는 컵 가득 따라 묘 앞에 놓았다.
"영감님. 이제 내년에는 내가 올 수 있을지 못 올지 모르겠소. 혹 내가 못와도 섭섭해하지 마시오."
하더니 목소리 낮춰 뭐라고 한 마디 더 했다. 조용한 곳이라 내 귀에도 들어왔다.
"우리 야(나를 지칭함), 소설 등단 좀 하게 해주시오."
나는 웃으며 등단이라는 말을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다.
"누가 그러더라. 소설은 등단이라는 것을 해야 한다고."
그것은 이미 했으니 걱정 말라고 하자 할머니는 바로 뒤를 달았다.
"그것은 다 했다요. 어쨌든 성공하게 해주시오."
손자가 공무원도, 회사원이나 흔한 가게 사장님도 아닌, 작가라는 이상한 직업을 가진 탓에 무엇을 빌어줄까 혼동되었을 것이다. 할머니에게 있어 나는 등단이라는 것을 하기는 한 모양인데 성공하지 못한 존재였다.
내려오는 길에 열매 무성하게 달린 동백나무를 발견했다. 털고 주워담고 쪼개어 씨 꺼내고 하는 바람에 우리의 귀가는 한참 늦어졌다.(외할머니). p.223.
잊지 않기 위해서.
기다리면 올것은 온다. 견디느냐 못 견디느냐의 차이뿐이다.
이틀 뒤 다시 이천 원을 구해 형을 찾아갔다.
그날 밤 나는 이루어진 사랑의 진부함에 대해 이야기 했다. 여자가 떠나고 나자 찾아온 자유와 또 다른 연애에 대한 가능성, 천이백 통의 편지를 받은 여자가 결혼을 한 것은 사실이나 우체부하고 그만 눈이 맞아버렸다는 것을 그는 들었다. 시내버스 타고 갈 때 그냥 보내 버릴 것을 , 내가 미쳤지, 날마다 후회하는 친구, 산맥을 넘고 지옥을 다녀온들, 어떤 지랄을 해도 성공한 사랑은 월급봉투와 싸움과 아이들 울음 소리의 일상으로 바뀌게 마련이며, 그래서 다들 혼자였을 때가 그리워 땅을 친다고 했고 그는 들었다.
얼마 뒤 나는 다시집을 떠나게 되었고 여동생도 대학생이 되어 먼곳으로 갔다. 그리고 그도 오래도록 보이지 않았다.(행방을 알 수 없는 한사람에 대하여). p.70.
우리는 슬슬 거쳐 온 직업을 대기 시작했다. 지방에 학생부군 밖에 쓸게 없는 사람은 현장 관록으로 버티는 법. 내가 포장마차를 대면 그는 중국집과 일식, 한식집을 댔다. 내가 4.5톤 복사트럭을 대면 그는 8톤 트럭을 댔다. 오오. 밀리는군. 내가 귀걸이 노점상을 대면 금은방을 댔다. 내가 현장 잡부를 대면 목수를 댔다. 거듭 밀리던 내가 회심의 일격으로 선원 경력과 푸른 바다를 대자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제과점, 구두닦이, 유리공장, 사탕공장, 광케이블공사, 건강보조식품 수금, 출판사, 술집 지배인, 또 일일이 적기 귀찮을 정도로 수많은 직업을 한꺼번에 몰아 들이댔다.
막판 소나기 펀치에 나는 휘청거렸고 그는 소주 잔 그러잡고 고개 들어 내려다보았다. 이겼다는 표정 뒤로 노란 은행잎이 무리지어 흩 날렸다. 내가 서른 하나, 형이 서른다섯, 그동안 각자 해오던 면병수행面甁修行을 같이 시작한 게 그즈음이었다.(시인 유용주에 대한 이야기. 지평산을 향하여 걷는 사람아). p.104.
사과는 쪼개 동서남북으로 던지고 소주는 컵 가득 따라 묘 앞에 놓았다.
"영감님. 이제 내년에는 내가 올 수 있을지 못 올지 모르겠소. 혹 내가 못와도 섭섭해하지 마시오."
하더니 목소리 낮춰 뭐라고 한 마디 더 했다. 조용한 곳이라 내 귀에도 들어왔다.
"우리 야(나를 지칭함), 소설 등단 좀 하게 해주시오."
나는 웃으며 등단이라는 말을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다.
"누가 그러더라. 소설은 등단이라는 것을 해야 한다고."
그것은 이미 했으니 걱정 말라고 하자 할머니는 바로 뒤를 달았다.
"그것은 다 했다요. 어쨌든 성공하게 해주시오."
손자가 공무원도, 회사원이나 흔한 가게 사장님도 아닌, 작가라는 이상한 직업을 가진 탓에 무엇을 빌어줄까 혼동되었을 것이다. 할머니에게 있어 나는 등단이라는 것을 하기는 한 모양인데 성공하지 못한 존재였다.
내려오는 길에 열매 무성하게 달린 동백나무를 발견했다. 털고 주워담고 쪼개어 씨 꺼내고 하는 바람에 우리의 귀가는 한참 늦어졌다.(외할머니). p.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