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읽기-영화보기

한창훈의 소설가 론

소설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게 공장생활을 하던 이십대 중반이었다. 직업에 대해 궁리를 할 수 밖에 없는 때이기도 하거니와 회사에 취업할 능력도, 마음도 없었던 나는 투자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세상에 대한 태도로서 소설가를 선택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소설을 어떻게 쓰는지를 전혀 몰랐다. 문학을 배운적도, 국어 공부라도 열심히 했던 기억마저 없었기 때문이다. 책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사춘기 시절의 무협지와 대중 소설을 빼버리면 현저히 줄어드는 독서 목록도 문제고 글이라는 것을 써서 장려상 쪼가리 하나 받아보지 못했던, 수상경력 전혀 없음,도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그래야 했다.
방구석에 틀어박힌 채 눈에서 형형한 광채 내뿜으며, 독한 줄담배 뿜어대며, 미친 듯 써대다가 북북 찢으며 아니야, 이따위가 아니야, 이렇게 울부짖어야 했다. 새벽에는 피를 토하는 지경에 이르러 쓰러지고 정신력 하나로 소생하여 다시 머리카락 쥐어뜯으며 펜을 집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한 줄 써놓고 허리 비틀고 그 한 줄 지우고 머리를 긁고, 누구 술병 들고 놀러오는 놈 하나 없나, 문이나 자꾸 열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도 큰 충격이었다.역시 문학에 소질이 없나보다 이런 생각만 자꾸 들었다.
어떻게 소설을 써야하지? 답은 바로 나왔다.
잘 쓰거나 열심히 쓰거나.
무엇을 써야 하지? 이것도 마찬가지.
좋은 것을 쓰거나 감동적인 것을 쓰거나.
그럼됐다.
좋고 감동적인 것을 열심히, 잘 쓰면 되겠구나.
그러나 나는 쓰지 못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어떤 말로 써야하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

-
-
상황을 담담하게 전달하는 언어. ---. 언어는 냉정하게 정돈된 거라야 한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
내가 선생께 배운 것은 글 쓰는 기교가 아니라 삶을 궁리하는 방법이었다.
-
-
-
영민하지도 않고 재주도 없었던 탓에 한 사십 먹어서 괜찮은 소설집 하나 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던 나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숙제가 마음에 들었다. 소설이든 삶이든 궁리하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할 대상 아니던가.
(한창훈 향연 p.123-126)

cf) 재주도 없었고 능력도 없었다는 말에 위안은 되는데, 한창훈의 놀랍고 부러운 점은 살아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없는 용기다. 아마도 한창훈의 비범함을 꼽자면 그것은 모두 그의 용기로 돌려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