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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과 웃음


< 구글에서 검색한 '빛의 춤'이라는 제목의 이미지.>

<춤은 몸의 해방이다.
춤은 세속의 일상적 규제, 규율, 억압을 거부하는 자유다.
적극적으로 서술하자면, 춤은 자유를 낳는다.>
 

 포겔프라이-중력의정신에 맞서

인간이 나는 법을 익힐려면 제일 먼저 중력의 영을 털어내야 한다.
중력의 영이란 인간을 현실에 붙잡아 두는 힘인 상식 관습 규칙 등이다.
이건 다른 말로 표현하면 현실의 대지이다.
타조가 아무리 빨리 달려도 날 수 없는 것은 타조가 대지에 고개를 박고 달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새로운 긍정을 보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중력의 영으로 부터 탈주할 때 고개를 들고 새로운 창조가 보여주는 높은 하늘과 구름을 보아야 한다.
즐거움으로 비상했을 때만 하늘은 구름 한점 없는 순진무구한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때만이 인간과 하늘은 함께 미소짓는 친구가 될 것이다.

무겁고 진지한 사고만이 사태를 깊이 인식하는 것이라 믿는 자들은 무게와 깊이를 혼동하고 있다.
그들은 사랑조차 망쳐 놓는다.
사랑에 무거운 저울추를 달아 두고 진정한 사랑이라 우기지만, 그때 사랑은 구속으로 변질된다.
심각한 인간들이여 생각해 보라.
그대들이 가벼워지면 안되는 이유가 있는지를, 그리고 그대들이 결국 얻고자 하는게 웃음인지 울음인지를!

 


<
구글에서 검색한 '춤'이라는 제목의 이미지>
< 춤이 자유라는건, 춤으로 표현되는 선의 비정형성일거다>


댄서의 웃음과 코미디언의 춤을 배워라

니체는 위버맨쉬로 가기 위해서 먼저 익혀야하는 것은 춤과 웃음이라고 생각했다.
투덜거림 불평 슬픔 고통과 같은 부정적 정서로는 환한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금욕주의의 단 하나의 적은 코미디언이다.
추악한 현실은 웃음거리가 되었을 때 되돌아오지 않고, 환하게 웃는 자만이 그 현실을 가볍게 넘어설 수 있다.

'위대한 책들은 추악한 현실, 혐오스러운 현실을 다룰 때조차  기쁨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지배적 코드가 난처함에 빠졌을 때 웃지 않을 수 없다.'

 

<구글에서 검색한 웃음의 이미지>
<웃음이 가진 힘은, 그 순간적인 초월성일거다.
가운데 빗의 산란 이미지는 왼쪽과 오른쪽 이미지 사이의 거리를 초월적으로 매개하는것 처럼 보인다.
현실이라는 단단한 체계나 논리를 웃음은 순간적으로 무장해제시킨다.
그런점에서 웃음은 현실을 변화시키는 최종적 확인이고, 변화를 승인하는 마지막 징후다>
  

사자, 오버멘쉬 그리고 디오니소스(춤의 신, 웃음의 신)

춤과 웃음의 위계 : 너는 해야한다(사자)-나는 의욕한다(차라투스트라)-나는 존재한다(디오니소스)

차라투스트라의 웃음과 춤에는 위버맨쉬를 향한 의욕이 들어 있다.
하지만 그 자체로 위버맨쉬인 디오니소스는 어떤 특별한 의욕도 갖지 않는다.
디오니소스는 그 자체로 모든것을 긍정하기 때문에 그 스스로 웃음과 춤으로 존재한다.

cf) 이 글은 고병권이 쓴 '니체의 위험한 책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중 <춤추고 웃는 법을 배워라>에 기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