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을 줄타고 윤리로 날아간건 좋은데 사랑이 너무 무겁다]
도덕과 윤리의 사이 - 거리
사는곳 가까이 유명한 사찰이 있다.
쉬는 날 심심하면 그곳에 놀러가곤 했다.
어느 봄날엔가 낮선 경치가 잡혔다.
늙수그레한 할아버지 둘이 다정하게 꼭 손을 잡고 걷고 있었다.
다정한 연인들의 풍경이었다.
순간적으로, 당혹스러워서 지나치기가 저어했다.
망설이다가, 자전거의 속도감에 의존해서 획 지나갔다.
지나치기 전에는 도덕이 나를 사로잡았고.
지나친 후에는 윤리를 깨달았다.
할아버지 한 분은 앞을 못보는 분이었고.
다른 할아버지는 그를 부축하여 산책을 안내하고 있었다.
도덕이란 시대가 만들어 놓은 관념의 뭉치들이다.
시대가 만든 것이니 당연히 시대의 두께를 벗어나지 못한다.
근대 이전에는 동성애가 여러 잡다한 성애들과 혼재해 있었다.
그리이스 시대에는 미소년들과의 남색이 보편적 성취향이었다.
할아버지들의 다정한 풍경은 근대적 도덕률에 대한 도전이다.
장애에 대한 도움의 손길은 시대의 도덕적 두께를 훌쩍 뛰어넘는 풍경이다.
니체가 근대사회의 도덕이란 주류체제를 보호하려는 엉큼한 속임수라고 파악했고.
(더욱 근본적으로는 노예적인 심리에 기반한 약자들의 강자들에 대한 억압책이라고 보았다)
스피노자가 윤리를 삶의 자유라고 말하는 이유를 알것 같다.
도덕이란 늪 같은 시간의 분진 속에서 산란되는 순간의 무지개이고.
윤리란 늪 같은 시간 속의 분진 속를 헤치고 나온 결절한 삶, 그 자체다.
도덕과 윤리의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그러나 건너기 위해 노력해야할 깊은 심연이 있다.
예전에는 몰랐었다.
윤리는 도덕에서 가장 멀리 있다.
[브로크백 마운틴 : 화면빨이 끝내준다. 사랑이 도덕을 넘어 윤리로 달리지 못하고, 말에서 추락해린다.]
'그러나 숙부의 침실에는 가지 마세요. 정조가 없더라도 있는 척은 하세요.(but go not to my uncle's bed : Assume a virtue, if you have it not).'([햄릿]3막중, 햄릿의 대사) / '동무론' p. 184. 재인용.
햄릿은 어머니에게 윤리를 요구함으로, 어머니를 도덕적 타락으로 부터 건져 올리려고 했다.
그러나 햄릿의 윤리는 도덕의 수준으로 추락하고 만다.
햄릿이 요구한 윤리는 여전히 시대의 자장, 어머니의 자장속에서 운동한다.
체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체계 내부에서 별무 소용없이 순환한다.
햄릿은 어머니로 부터 독립해야 했다.
그 안에서 햄릿이 어머니에게 힘주어 말하면 말할수록, 햄릿의 윤리는 도덕으로 타락한다.
力說이 逆說이 되는 쳇바퀴를 벗어날 수 없다.
어머니를 구원하기 위해서 어머니에 무관심해야 했다.
'있으면서 없는 척하기'
'알면서도 모른체하기'
좀더 나가면 '없으면서 있는 척하기'가 해결책 이었다.
그 할아버지들이 동성애자들이었다 해도.
그들은 세속에서 새로운 삶을 창출한 윤리가들이다.
햄릿이 세속의 두께를 그냥 묵묵히 받아들였다면,
체계를 벗어나 다른 시도를 했더라면,
주어진 현실을 살짝만이라도 비켜가는 유머를 만들줄 알았더라면,
그러면 햄릿이 아니겠지!
cf) 남자가 나이를 먹으면 형이상학적이 된다고 한다.
좀더 투박하고 거칠게 말하면 좆을 잃은 남자는 형이상학적 보수주의자가 된다고 말한다.
생명력이 약동하는 젊은이들은 언제나 체제전복적이다.
나이 먹은 파리한 노인들이란 언제나 현실을 지키기에 급급한 완고한 독재자가 되는게 세상의 이치다.
완고함을 지키는건 폭력이다.
대번에, 보수단체들의 집회에 가보면 이말을 확인할 수 있다.
젊은 천재 아벨라르두스는 '유명론'으로 중세를 뿌리로 부터 흔들었다.
그의 연인은 그 보다 더 젊고 현실주의자였다.
18살 총명한 제자였던 그의 연인 엘로이즈로 인하여 거세를 당하고 그는 엄숙한 형이상학-신학으로 되돌아갔다.
나는 파리한 노인이 되고 있는걸까?
내 글이 자꾸 형이상학적이 되고 있다.
김영민의 진지함에 완전히 감염되었다.
너무 귀가 얇아서, 또 획 넘어갔다.
아이고 이 놈의 가벼움이란! ㅎㅎㅎ.
도서관에 처박혀 있는게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