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하반기에 춘추전국이야기(공원국) 11권을 깡그리 읽어 치웠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 보다 스케일이 크다.
저자 공원국의 이야기를 꿰어 가는 안목도 재미있다.
시오노와는 또 다른 마초적 남성성이 물씬 풍긴다.
꼭, 영화 대부를 중국버젼으로 재서술 한 것 같다.
한권씩 사서 읽으니, 드라마 보는 것 같아서 얼른 얼른 읽어 나갈 수 있었다.
1권에 나오는 관중과 마지막 11권의 유방 캐릭터가 제일 마음에 든다.
포숙에게 생명을 얻었던 관중이, 끝내 포숙을 인정하지 않는 관중의 결말이, 삶이라는 것의 또는 세속이라는 것의 아니러니를 보여 준다.
포숙은 너무 깨끗해서, 큰 일을 맡길 수 없다는, 관중의 평가가 흥미롭다.
유방은 항우에게 연전연패 할 때 마다, 한신에게 달려가서, 징징거리며 한신이 애써 키운 군사들을 다 빼앗아 간다.
한신은 군말없이 자신의 전부를 다 내어준다.
그걸로 유방은 다시 재기한다.
그럼에도 유방은 항우에게 지속적으로 실패한다.
항우를 제압한 마지막 전투도 한신의 도움이 없었다면 또 패배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쉼 없는 실패의 연속에도 불구하고, 그는 거기서 다시 일어선다.
유방은 패배 속에 항상 최후의 승리에 대한 씨앗을 숨겨 놓는다.
그게 결국 발아해서 최후의 승자가 된다.
그에 비해서 항우는 항상 승리하면서, 최후의 패배를 위한 씨앗을 뿌리고 다닌다.
한신은 전쟁의 신이다.
무적의 전쟁기계다.
그럼에도 한신에게는 자기 시대를 통찰하는 역사를 읽는 눈이 없다.
잠깐이지만, 항상 그렇듯이 유방에게 생명의 동아줄을 던지면서, 자기 욕심에 휘둘렸다.
잠깐의 그런 욕심이, 결국, 한나라 통일제국 성립 후에 숙청을 당하는 운명의 빌미가 되었다.
아마도 그 욕심은, 한신의 자기한계가 노출한, 슬픈 필연이었을 것이다.
결국 한신이나 항우는 개별적인 전투의 현장에서는 누구 보다도 뛰어났지만, 자기 시대와의 최종적 전투의 의미는 알지 못했다.
반면에, 유방은 개별적 전투의 현장에서는 무능했지만, 전체 역사의 흐름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본능적으로 꿰차고 있었다.
석양이 지고 어둠이 내린 뒤에야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하늘로 날아 오른다.
헤겔의 말이다.
새로운 시대에 대한 인식은, 전시대가 저물고 난 다음에야 어둠과 혼돈 속에서 어렴풋하게 인식할 수 있다는 비유다.
미네르바는 전쟁과 의술과 지혜의 여신이고, 부엉이는 미네르바를 수행하는 지혜의 상징인데, 여기서는 헤겔 자신을 가리킨다.
이런식의 비유로 설명하자면, 유방도 춘추전국이라는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의 여명 같았던 진나라가 순식간에 해체되어 다시 짙은 어둠이 내린 암흑 속에서, 역사의 신이 슬쩍 비추어준 빛의 순간을 간취했다.
그게 전쟁의 신 한신이나, 모든 기득권력을 자신의 편으로 가졌던 귀족 항우,와 다른, 최초의 장기지속성이 있는 중국이라는 제국을 건설한 유방의 능력이다.
법가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최초의 중국 통일 국가 진나라의 문제가, 바로 그 복잡하고 비인간적인 법률 시스템에 있다고 인식한 유방의 판단은 어디서 왔을까?
아마도 그것에 의해서, 범법자로 내몰려야 했던, 그래서 불가피하게 진나라에 거꾸로 창을 겨누어야 했던, 자신의 처지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유방의 약법3장은 역사에 대한 순명이었고, 진나라의 통일 국가 군현체제는 거저 얻은 그러나 그것 없이는 통일국가 한나라의 성립이 불가능한 역사의 유산이었다.
cf) 나중에 시간나면(이런식의 어법은 대충 눙치겠다는 말이다), 한권 한권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내 나름으로 평가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