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근무하던 학교의 교직원수가 14명이던 초미니학교였다.
지금은 교직원이 거의 100명 가까이 되는 지나치게 큰 학교다.
이 학교로 옮긴지 거의 한달이 다 지났다.
전의 학교와 다른 점이 많다.
당연히 좋은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좋은 점은 내 유별난 라이프스타일로 인한 마찰이 전학교에 비해서 훨씬 적다는 점이다.
전 학교에서는 워낙 교직원 수가 적다보니 직원들간의 접촉면이 굉장이 크고 강렬하다.
좀 과장해서 다른 교사나 직원들의 숨소리 변화까지도 감지된다.
당연히 나 같은 이질적 존재가 엄청 불편했을께 분명하다.
나라는 존재가 세속적 기준에 따르자면 조용히 있어도 봐줄까 말까 할 정도다.
근데 거꾸로 칼을 빼들고 설쳐댔다.
이것 저것 닥치는대로 엄청 가르치려고 들이대니 기가 막혔을거다.
여러 수준에서 여러 선생님들과 가치관의 대립이 있었다.
사안에 따라 피아가 서로 겹치는 난장판 비슷한 이합 집산이 이루어 졌다.
거의 매일 세속적 가치들을 두고 안 부딪힌 날이 없었다.
내일 모래면 정년퇴직할 할아버지 선생님도 가르치려 들었고,
자기 나름으로 모범적으로 교직 생활했다는 선생들도 전부 진부한 꼰대로 몰아부쳤다.
지금도 그들이 진부한 꼰대로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마찰중 하나는 격렬하게 폭발해서 송사로 번졌다.
내가 사건의 직접 당사자가 아니었음에도 필사적으로 그사건에 매달렸다.
개인적으로 퇴로를 막아 놓고 부딪혔다.
다행이 좋은게 좋은것 아니냐는 현실적 타협을 물리치고 끝까지 원칙을 지켜준 직접 당사자의 용기 덕택에 사건이 꽃놀이 패 비슷하게 전개되었다.
이런 갈등의 배후에 있었던 가장 큰 가치관의 대립은 체벌에 관한 입장 차이였다.
이런저런 합의과정도 없이 무식하게 어떤 종류의 체벌도 용납되어서는 안된다고 밀어 부쳤다.
학교규정도 고치고, 학생들에게 공표도 했다.
촌놈에게 완장 채워주니, 마치 계몽군주처럼 설쳐댔다.
내 나름으로는 학교를 개혁해보자고 진지하게 덤벼 들었다.
문제는 체벌에 대한 통제력이 사라지자 외부적 질서 부여체계가 무너진 모습이 나타났다.
폭력이라는 형태로 교사와 학생간, 학생과 학생간 질서체계가 있었다.
그게 무너지니 권력공백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이 빈틈을 힘이 센 학생이 파고 들었다.
초중등학교 시절 운동부를 하면서 일상적으로 폭력에 노출된 학생이었다.
폭력행위에 대한 심리적 금지 장치가 전혀 없는 학생이었다.
한 인간이 우주 전체라는 걸, 이 아이을 보면서 절실하게 깨달았다.
이 아이의 폭력적 행위 습관에는 과거의 경험과 가정의 양육 태도와 이 아이가 속해있는 사회의 모든 것들이 결합되어 있었다
일반 학생들도 안정된 질서에 대한 요구가 암묵적인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선후배간의 안정된 질서라는 것에 대한 현실적 요구들이 있었다.
그게 폭력에 의한것이든 아니든 개의치 않는 분위기였다.
안정된 질서가 더욱 중요하다는 일종의 관성적으로 길들여진 습관적 흐름이 있었다.
학교 현장에서 체벌 하나만 없앨려도 학교 전체의 질서체계와 사회전체의 질서체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는걸 알게 되었다.
모든 분야에서 소통 방식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확립되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무조건 체벌을 없애 놓아 버리니 당연히 부작용이 나타날 수 밖에 없다.
너무 가볍게 문제에 접근했단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이런 저런 부작용을 근거로 체벌 없는 학교라는 리더쉽을 흔드는 흐름들이 나타났다.
다행이 그런 부작용들은 통제 범위내에 있었다.
작은학교라는 장점이 그걸 가능하게 했다.
상담기관도 동원하고,
봉사활동 기관도 활용하고,
내부적인 역량들도 동원했다.
조금씩 체벌이 사라진 빈 공간을 학생과 교사간의 대화를 통한 질서확립의 시도들이 생겨났다.
선후배간의 묵시적인 억압적 경계들도 많이 무너졌다.
그냥 같이 어울려 놀고, 장난치는 모습이 새롭게 나타났다.
확실히 변화의 단초가 만들어진건 분명해 보였다.
선생님들에게 체벌에 대한 심리적 감시장치 비슷한게 작동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학생들도 조금씩 체벌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많은 갈등이 있었고, 우여곡절을 거쳤다.
일방적인 판단인지는 모르지만 체벌 없는 학교가 굴러가기 시작하는것 처럼 느껴졌다.
학교를 옮겨 큰 학교로 오니 모든 상황이 변했다.
학생들 사이에서 폭력 현상도 매우 일상적이다.
교사가 학생들을 적절히 통제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폭력적 체벌도 일상화 되어 있다.
폭력에 길들여진 학생들은 교사들의 체벌 없는 학생지도를 일종의 빈틈으로 인식한다.
학교생활에서 느끼는 억압을 그 빈틈으로 해소하고자 한다.
학생들을 폭력적으로 체벌하는 선생님들의 학생지도에 관한 진정성도 이해가 된다.
임시 방편적으로라도 그게 효과적으로 기능하는게 눈에 빤이 보인다.
그렇지만 다른 방법은 없을까?
어디서 부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모르겠다.
현실을 인정하고 그 흐름을 따라 그냥 가자니 비굴한것 같고,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자니 힘도 없고, 대안도 잘 안보인다.
좀 기달리면서 지켜보면 무슨 길이 보일까?
지금은 교직원이 거의 100명 가까이 되는 지나치게 큰 학교다.
이 학교로 옮긴지 거의 한달이 다 지났다.
전의 학교와 다른 점이 많다.
당연히 좋은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좋은 점은 내 유별난 라이프스타일로 인한 마찰이 전학교에 비해서 훨씬 적다는 점이다.
전 학교에서는 워낙 교직원 수가 적다보니 직원들간의 접촉면이 굉장이 크고 강렬하다.
좀 과장해서 다른 교사나 직원들의 숨소리 변화까지도 감지된다.
당연히 나 같은 이질적 존재가 엄청 불편했을께 분명하다.
나라는 존재가 세속적 기준에 따르자면 조용히 있어도 봐줄까 말까 할 정도다.
근데 거꾸로 칼을 빼들고 설쳐댔다.
이것 저것 닥치는대로 엄청 가르치려고 들이대니 기가 막혔을거다.
여러 수준에서 여러 선생님들과 가치관의 대립이 있었다.
사안에 따라 피아가 서로 겹치는 난장판 비슷한 이합 집산이 이루어 졌다.
거의 매일 세속적 가치들을 두고 안 부딪힌 날이 없었다.
내일 모래면 정년퇴직할 할아버지 선생님도 가르치려 들었고,
자기 나름으로 모범적으로 교직 생활했다는 선생들도 전부 진부한 꼰대로 몰아부쳤다.
지금도 그들이 진부한 꼰대로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마찰중 하나는 격렬하게 폭발해서 송사로 번졌다.
내가 사건의 직접 당사자가 아니었음에도 필사적으로 그사건에 매달렸다.
개인적으로 퇴로를 막아 놓고 부딪혔다.
다행이 좋은게 좋은것 아니냐는 현실적 타협을 물리치고 끝까지 원칙을 지켜준 직접 당사자의 용기 덕택에 사건이 꽃놀이 패 비슷하게 전개되었다.
이런 갈등의 배후에 있었던 가장 큰 가치관의 대립은 체벌에 관한 입장 차이였다.
이런저런 합의과정도 없이 무식하게 어떤 종류의 체벌도 용납되어서는 안된다고 밀어 부쳤다.
학교규정도 고치고, 학생들에게 공표도 했다.
촌놈에게 완장 채워주니, 마치 계몽군주처럼 설쳐댔다.
내 나름으로는 학교를 개혁해보자고 진지하게 덤벼 들었다.
문제는 체벌에 대한 통제력이 사라지자 외부적 질서 부여체계가 무너진 모습이 나타났다.
폭력이라는 형태로 교사와 학생간, 학생과 학생간 질서체계가 있었다.
그게 무너지니 권력공백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이 빈틈을 힘이 센 학생이 파고 들었다.
초중등학교 시절 운동부를 하면서 일상적으로 폭력에 노출된 학생이었다.
폭력행위에 대한 심리적 금지 장치가 전혀 없는 학생이었다.
한 인간이 우주 전체라는 걸, 이 아이을 보면서 절실하게 깨달았다.
이 아이의 폭력적 행위 습관에는 과거의 경험과 가정의 양육 태도와 이 아이가 속해있는 사회의 모든 것들이 결합되어 있었다
일반 학생들도 안정된 질서에 대한 요구가 암묵적인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선후배간의 안정된 질서라는 것에 대한 현실적 요구들이 있었다.
그게 폭력에 의한것이든 아니든 개의치 않는 분위기였다.
안정된 질서가 더욱 중요하다는 일종의 관성적으로 길들여진 습관적 흐름이 있었다.
학교 현장에서 체벌 하나만 없앨려도 학교 전체의 질서체계와 사회전체의 질서체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는걸 알게 되었다.
모든 분야에서 소통 방식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확립되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무조건 체벌을 없애 놓아 버리니 당연히 부작용이 나타날 수 밖에 없다.
너무 가볍게 문제에 접근했단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이런 저런 부작용을 근거로 체벌 없는 학교라는 리더쉽을 흔드는 흐름들이 나타났다.
다행이 그런 부작용들은 통제 범위내에 있었다.
작은학교라는 장점이 그걸 가능하게 했다.
상담기관도 동원하고,
봉사활동 기관도 활용하고,
내부적인 역량들도 동원했다.
조금씩 체벌이 사라진 빈 공간을 학생과 교사간의 대화를 통한 질서확립의 시도들이 생겨났다.
선후배간의 묵시적인 억압적 경계들도 많이 무너졌다.
그냥 같이 어울려 놀고, 장난치는 모습이 새롭게 나타났다.
확실히 변화의 단초가 만들어진건 분명해 보였다.
선생님들에게 체벌에 대한 심리적 감시장치 비슷한게 작동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학생들도 조금씩 체벌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많은 갈등이 있었고, 우여곡절을 거쳤다.
일방적인 판단인지는 모르지만 체벌 없는 학교가 굴러가기 시작하는것 처럼 느껴졌다.
학교를 옮겨 큰 학교로 오니 모든 상황이 변했다.
학생들 사이에서 폭력 현상도 매우 일상적이다.
교사가 학생들을 적절히 통제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폭력적 체벌도 일상화 되어 있다.
폭력에 길들여진 학생들은 교사들의 체벌 없는 학생지도를 일종의 빈틈으로 인식한다.
학교생활에서 느끼는 억압을 그 빈틈으로 해소하고자 한다.
학생들을 폭력적으로 체벌하는 선생님들의 학생지도에 관한 진정성도 이해가 된다.
임시 방편적으로라도 그게 효과적으로 기능하는게 눈에 빤이 보인다.
그렇지만 다른 방법은 없을까?
어디서 부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모르겠다.
현실을 인정하고 그 흐름을 따라 그냥 가자니 비굴한것 같고,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자니 힘도 없고, 대안도 잘 안보인다.
좀 기달리면서 지켜보면 무슨 길이 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