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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대기

영어 해체

나는 대한민국 영어 교사다.
동일한 내용의 글을 지금 이 블로그에만 세번째 쓴다.

머리를 깍으러 미용실에 갔다.
아는 학교 선생님이 스트-레이트 파마중이다.
인사를 하고 기다리다가 심심해서, 무슨과목이었죠?
국어요!
몇일전에 영어-국어 선생님들 모여서 영어몰입교육 관련 성명서 낸거 아세요?
네-에.

읍내 중심가 미용실은 깍사님들이 다 아줌마 학부형들이다.
학생들도 몇 명 있다.
분위기가 확 쏠리는게 느켜진다.

영어교육에 대한 민감도가 그만큼 높다.
현실이 달아 올랐을 때 두드려 패야한다.

하고 싶은 말은 영어를 해체하잔 거다.

왜 영어를 배우는가?
당연히 삶을 보다 풍부하게하기 위해서다.
좀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이질적 타자의 세계들과 접촉할 기회를 풍부하게 가지자는 거다.
그걸 통해서 삶을 풍부하게 하자는 거다.
단순하게 말해서 영어는 삶의 수단이고, 도구다.

그런데 이게 거꾸로 섰다.
영어가 목표가 되었고, 삶은 영어를 위한 노예가 되었다.
영어가 주인이고,  삶은 그걸 잘 모시는것에 온통 목숨을 걸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잘못된 목표를 설정했기 때문이다.

어떤 표준화된 영어를 절대적인 영어로 설정하고, 그것을 무조건 따르자고 목표를 설정한거다.
어떤 특정한 영어가 절대화 되면서 영어가 현실에서 사람을 억압하는 우상으로 등장한거다.
영어가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우리 삶에 받아들여진게 아니다.
삶을 평가하고 재단하고 규정짓는 척도로서 역전된 현상이 발생해 버린거다.

언어는 인간들이 서로 소통하기 위한 도구다.
일차적 목표는 소통이다.
그게 되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제일 쉽게 구현하는 사람들이 용감한 사람들이다.
결코 우상화된 영어에 주눅들지 않는다.
맘대로 영어를 부린다.
자기 머리를 가리키며 'steam?'이라고 말하면서 외국인과 재미있게 노는 사람도 있고, 'december'를 'twelve month'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모두 다 충분히 알아 듣고 같이 즐긴다.
이런게 쌓이고, 자신감이 붙으면 추상적 개념의 소통도 가능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어를 입시에서 배제해야 한다.
영어를 입시에 적용하는한, 학교에서 자유롭게 영어를 가르칠 수 없다.
교사도 학생도 따라야할 절대적 우상으로서 표준화된 영어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사교육 시장에 쏟아 붓는 엄청난 낭비도 결코 잡을 수 없다.

이세상에 다양한 영어가 있다.
Singlish(Singapore English), Jangnlish(Japanese English), Canadian English, Irish English, Indian English, Austrailian English, American English, English Englsih 등 헤아릴 수가 없다.

한국인들은 당연히 Konglish를 쓸 자유와 권리가 있다.
왜 한국인이 어떤 표준화된 영어, American English에 목을 메고 살아야 하냐?

지금처럼 영어능력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어떤 사람의 평가척도로 사용되는 현실도 바로 잡아야 한다.
영어 정말 잘하는 인도, 필리핀, 아프리카 같은 나라들 정말 못산다.
영어가 공용어인 이들 나라들에 가보면 개나 소나 왠만큼 다 영어한다.
전세계적으로 영어 제일 못하기로 소문난 한국 일본이 이들 영어 공용어 국가들 보다 100배는 잘산다.
인간을 경제적 자본재로 보는 시각에도 불만이지만, 백번 양보해서 그걸 인정한다 해도 영어와 국가 경쟁력과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
영어 잘해서 국가 경쟁력 생긴다면 그냥 한국어 없애고, 영어 공용화하면 되는 것 아니냐?

영어를 위해서도 Konglish가 필요하다.
Oxford 영어 사전에 나오는 pansori(판소리), chaebol(재벌), ondol(온돌), kimchi(김치), hanbok(한복)과 같은 콩글리시(Konglish) 표현들이 바로 Korean English다.
한국어가 영어의 어휘를 더 풍성하게 한 것이며, 이는 세계에 있는 여러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된장국이라는 것을 Konglsih가 아닌 영어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나?

물론 영어가 가진 기본적인 어법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그것을 절대화해서도 안된다.

현실에서 정말로 필요한 것은 지금보다 영어의 과장된 위세를 1/100로 약화시키는 거다.
그래야 학교현장에서도 영어수업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그래야 Konglsih도 더욱 풍성해진다.
그래야 English도 더욱 풍성해진다.
그래야 미친영어광풍도 잡을 수 있다.

그래야 사람들이 영어에 치여서 삶이 병드는 걸 방지할 수 있다.
자꾸 동일한 말을 반복하는것도 지친다.
제발 더이상 이런말 반복할 필요없는 상황이 되었으면 좋겠다.

cf) 이 글은 프레시안에 실린 제이슨 토머스라는 원어민 선생님의 글과 서울대 영어교육과 이병민 교수의 글에 기대어 썼다. 이 기사는 프레시안에 실린 지금까지의 영어교육에 대한 총론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거에 접속하는 통로가 되지 않을까!하는 기대로 이 글을 썼다.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80219153555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802191403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