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영화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존재가 참을 수 없도록 가볍다니? 처음 이 문장을 어딘가에서 보았을 때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었다. 이런 참을 수 없도록 가벼운 놈들은 이 엄중하고 진지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려고 저러나 연민이 들었다. 이런 놈들은 사회적 진정성과 도덕과 윤리를 파괴하는 해충과 같은 참을 수 없이 한심한 놈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참을 수 없는 긴 세월 50이 가까운 지금 이 말이 참을 수 없을 만큼 내 피부에 간지럽다. 밀란쿠테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오랫 동안 잃고 살았던 문학적 감수성을 새롭게 자극 받았었다. 여자들에게 끈임 없이 흔들리는 토마스. 섹스가 주는 각기 다른 사람들에 대한 느낌만을 추구하는 그에게, 어느날 진지한 그리고 무거운 테레사가 왔다. 그녀는 오직 사랑의 진정성을 추구하는 순수하고 착한 여자다.
여자에 대한 호기심만이 목적인 토마스에게 테레사는 어떤 사회적 도덕이나 관습이다. 그가 그녀의 여리고 여린 순수함과 진실함을 견더내지 못한다면 그는 파멸할 것이고, 그가 테레사의 그것들을 무시한다면 그는 부패할 것이다. 파멸하거나 부패하는 것이 토마스에게 주어진 선택지다. 인간은 대부분 이런 선택지에서 예외 없이 부패하는 걸 선택한다. 자기가 부패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도 못하면서 무게 있고 진지하게 그렇게 산다. 그것이 내가 아는 인간이다.
테레사의 여리고 순수한 사랑에 대한 진정성과, 토마스의 섹스를 통한 인간의 깊은 내면에 대한 접촉욕망인 호기심에 대한 사랑은 서로 충돌한다. 그래서 테레사는 토마스에게 너는 강하고 나는 약하다고 말한다. 책을 읽을 때는 이 말이 전혀 읽혀지지 않았는데 영화로 보면서 이 말이 선명하게 내 마음속에 들어왔다. 테레사는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훨씬 강한 존재는 테레사다. 그녀는 순수함과 진실함으로 무장한 완고한 현실이다. 날마다 다른 여자와 섹스하고 오는 토마스를 그녀는 참을 수 없고, 토마스는 그녀의 새하얀 마음에 번진, 상처 받아서 선명한 핏 자국을 견딜 수 없다.
결국 그는 어찌 어찌 유전하다가 호기심을 포기하고 그녀를 따라 시골구석에 처박혀 사는 삶을 택한다. 결국 테레사가 강했고, 토마스가 약했다. 결국 토마스는 시골생활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사고로 죽게되고, 그때서야 테레사는 자기가 토마스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걸 깨닫는다. 자기의 여린 순수함과 진실함이 그를 헤쳤다는 걸 안다.
여기 까지는 단지 토마스와 테레사의 사랑에만 초점을 맞춘 생각이다. 영화판에 부제로 붙은 ‘A Lover's Story. 프라하 봄’이 명시하듯 이들의 관계는 냉전시기 소련의 억압적 사회체제 속에 존재한다. 가볍고도 가벼운 토마스는 무겁고 진지한 체제와 불화한다. 체제에 순응시키려는 자들은 항상 엄숙하고 진지하다. 그들은 생명이 없으므로 유연성이 없고, 강고하지만 결국 허무하다. 그들은 자기가 아닌 외부의 그 무엇에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실현하고자 애쓴다.
그런 그들과 비교해서 영화 속 토마스는 부드럽고 아름답다. 그의 몸짓과 분위기가 남자인 내게 내가 욕망하는 여자처럼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끈임 없이 부유하면서 체제와 화해하지 않고 끝까지 버텨내는 힘은 그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기 때문이다(생물학적인 의미가 아니라 사회적인 의미의 성정체성에서 여성임/ sex로서가 아니라 gender로서 여성임) . 영화 속 그는 내가 아는 어떤 여자보다도 매력적인 그런 여자였다. 긴 손가락, 가느다란 선, 풍성한 머리카락은 영화를 보는 내내 그가 내게 여자처럼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흔들리는 토마스가 체제와 불화하는 것은 그가 자신의 생물학적 욕망과 본성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그가 사회적 관습이나 도덕에 충실했더라면, 이루고자 하는 그 무엇이 자신에 대한 충실이 아니라 외부적인 그 무엇이라면 그도 결국 천박한 현실에 영합해야 했을 것이다. 그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기 때문에 체제에 길들여지지 않고 끝까지 저항 할 수 있지 않았을까 ?
이런 참을 수 없이 무거운 의문이 영화를 보고나서 한참이나 머리를 짓눌렀다. 참을 수 없이 오랜 세월을 살아온 네게 세상은 참을 수 없이 가볍게 보였고, 그게 새로운 진실로 보였다. 세상은 가볍고 그래서 아름답다. 내 피부를 새롭게 간질이는 말이다. 남자가 갱년기를 넘기면 여자가 된다는데 그게 사실인거 같다.
cf)토마스는 남성이다. 그에게서 보여지는 여성적 외모와 풍부한 여성성 때문에 그를 계속 여성이라고 언급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