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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영화보기

찰리와 초콜렛공장



'찰리와 초콜렛공장' 영문판 책을 읽기로 했다.

중학생 정도면 편하게 읽을수 있는 버젼이 있단다.
매주 금요일 마다 여럿이 함께 강독하고, 토론하기로 했다.

학교 근처 편의점에 갔다가 우연히 '찰리와 초콜렛 공장' DVD가 눈에 들어왔다.

최근에 본 몇편의 영화중 비교적 흥미로웠다.
이 영화가 나에게 준 영감은 할리우드 영화의 편집증적 가족주의다.

할리우드는 언제나 해피엔드와 가족주의를 적당히 짬뽕해서 편안하게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전에는 이런 정형화된 결말이 할리우드의 단순한 상업주의적 코드라고 생각했다.
그런 스토리말고 다른 식으로 말할 수는 없나?라고 의문을 가지곤 했다.
관객을 확보해야하는 할리우드만의 안전한 이야기 구성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을 바꾸었다.
할리우드가 가족주의에 메달리는 것은 미국사회의 어떤 병적 징후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니뎊이 주연한 웡카의 결말은 미국사회의 가족주의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결론 외부의 웡카는 프로이드적 아버지에 저항하는 이질적 존재다.
할리우드의 전형성에 대립하여 성공한 것 처럼 존재하는 캐릭터다.

어린시절 웡카는 고른 치아발달을 위해 기괴한 기계장치들을 머리에 쓰고 있다.
그런 기계장치들은 치괴의사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초자아적 장치들을 대변한다.

웡카의 아버지는 고른 치아발달에 나쁘다는 이유로 그에게 달콤한 것들을 금지시킨다.
달콤한 것들에 대한 금지는 아버지의 명령이다.
아버지의 명령은 현실의 윤리와 규범을 대변한다.
웡카가 초콜릿을 금지 당했다는 것은 현실의 범주를 절대 넘어서지 말라는 금지선이다.
웡카의 머리에 쒸어진 치아교정기계는 아버지의 금지를 상징한다.

웡카가 초콜릿을 욕망한다는 것은 아버지로 대변되는 현실적 규제장치들을 넘어선다는 거다.
달콤한 초콜릿을 맛 본다는건 금단의 영역을 침범하는 행위다.
초콜릿이라는 금단의 과일을 먹음으로서 웡카는 아버지라는 신의 계율을 어겼다.

웡카에게 남은 건 아버지의 보호라는 에덴의 저편에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그건 현실의 규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세계여야 한다.




그게 웡카의 초콜릿 공장이다.
웡카의 초콜릿 공장이 몽환적인건 그게 새로운 신세계여야하기 때문이다.
웡카의 초콜릿 공장이 현실로 부터 완전히 독립해서 존재야하는건 그 때문이다.



웡카는 신세계를 만들었다.
웡카가 아버지로부터 완벽하게 독립했다는 증거다.

치아교정기계에 의해서 억지로 만들어진 형상의 웡카는 초콜릿을 먹으면서 기계적 장치로 부터 벗어난 매끈한 웡카로 다시 태어난다.

성인 웡카와 웡카의 초콜렛 공장은 아버지로 부터 독립한 순수한 새로운 세계다.

아버지로 부터의 혁명을 완벽하게 성공시킨 이 지점 어느 부분인가에서 웡카는 벽에 부딪힌다.
웡카는 행복하지 않다.
무언가 결핍을 느낀다.
외롭다.

스토리를 비틀어 웡카를 다시 아버지와 화해시킨다.
웡카는 거기서 만족한 행복을 느낀다.

웡카를 아버지와 화해시키는 건 찰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찰리는 가난하다.
가난하지만 튼튼한 가족의 결속자로서 기능한다.
그게 찰리가 웡카보다 행복한 이유다.
모든걸 다 가졌지만 행복하지않은 웡카.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지만 가족이 있어서 행복한 찰리라는 대립구도다.

당연히 웡카는 찰리에게 항복한다.
그가 가진 모든것을 찰리에게 물려준다.
그리고 웡카는 아버지와 화해한다.
비로소 웡카는 행복하다.

돌아온 탕자로 웡카의 반역을 끝 맺었다.
아버지에 대한 반역과, 화해라는 간극이 롤러코스터 타듯이 현기증이 난다.
할리우드의 가족주의와 해피엔드를 이처럼 선명하게 보여주는 영화도 드물다.

웡카를 아버지와 화해시키지 않으면 안되는 미국의 정신적 상흔이 무엇일까?
다시 신으로 복귀하지 않으면 안되는 공허감의 근거가 무엇일까?

cf) 미국은 9.11의 충격을 보수의 강화로 돌파하고자 했다.
그것이 두번에 걸친 부시정권의 집권으로 나타났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서사적 결말은 그런 미국의 몸부림처럼 보였다.

웡카의 아버지와의 화해가 공허하게 느켜진다.
오히려 화해 이전의 웡카가 훨씬 역동적이고 신선하다.

웡카의 화해는 9.11에 대한 실패한 처방 처럼 느켜진다.
이 영화의 제작 년도가 2005년이다.
미국이 9.11 충격의 혼란에서 벗어나 무언가 새로운 모색을 구체화한 시점이다.
웡카가 아버지와 화해함으로서 행복하다는 결말은, 부시정권의 두번에 걸친 집권의 상징이다.

그게 실패했다면 2008년 말 미국은 새로운 모색을 선택할거다.
미국이 어떤 선택을하게 될지 궁금하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다시 찍는다면 어떤 스토리가 있을까?